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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딜레마… 여진정벌 戰果, 소통의 세종보다 독단적 세조가 더 거둬

浮萍草 2013. 10. 27. 18:20
    중대한 목표가 있다면 우아하지는 않더라도 세조 같은 추진력과 개척정신 배워야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
    종의 자식 중에서 가장 불만이 많았던 사람은 아마도 둘째 아들 수양대군일 것이다. 그는 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가장 하고 싶었고 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즉 정치로부터 멀리 비켜나야 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조의 자질이 세종에 비해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당대 최고 석학과 열띤 토론을 벌일 정도로 유학에 식견이 깊었으며 불교에 대한 이해도 상당했다. 무예 실력도 출중해서 '달리는 노루 아홉 마리 중 여섯 마리를 일거에 활을 쏘아 잡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문무악(文武樂)의 자질을 고루 갖춘 군주였다. 세종 역시 수양대군의 그런 능력과 열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나물이나 캐먹고 살았던' 백이숙제처럼 현실 정치에 관심을 끊으라는 의미로 재위 말년에 세종은 애초 진양대군이었던 그의 칭호를 수양대군으로 바꿨다. 실록을 보면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집권한 세조는 마치 부왕 세종을 향해 항의라도 하듯이 그리 길다고 말할 수 없는 재위 14년 동안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진관(鎭管) 체제'라고 하는 향토 방위 개념에 기초해 전국적 방위 체제를 수립했으며 대규모 사민 정책과 토지 개간으로 농업 생산력을 증대해 민생을 안정시켰다. 조선왕조 운영의 기틀이 된 종합 법전 '경국대전'을 편찬한 것도 그의 치적이다. "경들은 부왕(세종)의 이름으로 나를 얽어매려 하느냐?"
    세조는'세종처럼'국가를 경영하라고 강조하는 신하들에게 반발하며 자기 방식의 국정 운영을 고집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전위(傳位)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하려는 듯이 또 때론 부왕보다 자기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이려는 듯이 일에 몰입했다. 실제로 세조가 세종보다 더 잘한 일이 여럿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여진족 토벌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종과 세조 정부가 여진족 토벌을 진행하는 과정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세종 정부는 군신 간의 수직적 수평적 의사소통 구조가 활성화된 상태로 수십 차례 대책 회의를 열고 반대파까지 설득하며 여진 정벌을 추진했다. 이에 비해 세조는 거의 일방적인 왕의 결단과 지시를 중심으로 북정을 진행했다. 세종이 정벌 반대자 최윤덕을 한 달 동안이나 설득해 총사령관에 임명한 데 비해 세조는 북정을 반대하는 신숙주를 '지시하고 가르쳐서(指授)' 토벌을 감행하게 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정벌의 결과는 세종보다 세조가 훨씬 뛰어났다. 동일한 목표, 즉 건주 여진족의 추장 이만주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두 임금의 두 번째 토벌을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여실하다. 세종의 총사령관 이천 장군이 7800여명을 이끌고 겨우 적군 60여명을 죽이는 데 그친 반면 세조의 총사령관 강순 장군은 1만여명을 이끌고 가서 적군 280여명을 참살 했다. 결정적으로 이천 장군이 놓쳤던 이만주 부자를 강순 장군은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나는 실록의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곤혹스러웠다. 충분한 준비와 설득으로 일을 추진한 세종이 분명 더 나은 성과를 거둬야 하는데 결과는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세조의 독단적 국정 운영과 신하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면서'이건 아닌데'하며 고개를 저었던 나로서는 뜻밖의 결과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리더십 딜레마'라고 부를 수 있는 이 현상을 놓고 세조실록을 꼼꼼히 다시 읽는 뒤 나는 세조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개척 정신과 강한 추진력이다. 세조는 스스로를 "남이 하는 것은 하지 않고 반드시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자"라고 정의하였는데 그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가는 사람이었다. 1468년 9월에 세조가 재위 14년 만에 52세 나이로 사망했을 때 신하들은 그를'책운제권(策運制權)'즉 스스로 운명을 획책하여 권세를 제어한 군주로 평가했다. 세조는 "일이라는 것은 모두 세(勢) 흐름의 영향을 받는데 세란 것은 하늘의 뜻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 더욱 중하다. 어리석은 자는 하늘에 미루고 지혜로운 자는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살핀다"고 하였다.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길이 있다고 하여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간 사람이 세조였다. 그는 1차 토벌 때 명나라 관계를 고려해 망설이는 신숙주에게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용병(用兵)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은 머뭇거리면서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압박했다. 무언가 꼭 달성해야 하는 중대한 목표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조직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면 우아하지는 않더라도 수양대군의 책운제권 개척 정신을 배워 보면 어떨까.이때 중요한 것은 어떤 유혹과 도전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게 마음 중심을 굳게 잡는 일(守心)이다.
    Chosun Biz     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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