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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태왕비문은 고구리를 뛰어넘은 조선의 광복사 (6부)

浮萍草 2013. 6. 17. 22:46
    광개토호태왕비문은 한문식이 아닌 우리말 사뭉으로 해석해야
    ⑴ 관병(官兵)
    락 10년 조에‘官兵’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 말은 스스로 자국 군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적절하지 않으며 상국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를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면 누구의 지시나 청이 있었는가? 영락 9년 己亥년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호태왕에게 현장에 와 달라고 목숨 걸고 요청’(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潰滅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한 이후 다음 해부터 나오는 단어란 점에서 ‘신라의 요청에 의해 파견되었으므로 관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시속민(舊是屬民)을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이었다는 속국관에서 나온 ‘以奴客爲民’이라는 글자는 창강과 소앙의 석문에서는 없으므로 일본이 고구려를 높이고 신라 와의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만들어 넣은 글자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희의 석문에도 있는데, 일본인의 강요에 의해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호태왕은 ‘신라’를 정식 국가로 호칭했으며 신라의 요청에 의해 출병한 군대에 관병이라는 용어를 썼다면 신라를 천제국의 적자로 대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천제국을 고대 조선이나 그 이전의 조선민족의 나라라면 조선역사를 엿보게 하는 내용이다. ⑵ 천제국(天帝國)
    이 비문의 맨 앞에 호태왕의 선조인 추모왕을'천제지자'라고 했고 그가 엄리수에 도착하여 ‘我是皇天之子’라고 말을 했는데, 여기서 ‘皇’은 이곳을 ‘다스리는’의 의미를 가진 동사로 보아야 하므로 그 뜻은‘나는 이곳을 다스리는 천제의 아들이다’가 된다. 그 시대와 영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옛 우리 조선민족의 나라를 부르는 별칭을 ‘천제국’이라 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⑶ 조공(朝貢)과 토벌ㆍ정벌
    호태왕비문에는 조공을 하지 않으므로 징벌을 하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여기서의 ‘조공’은 중국에서 인식하듯 상국을 섬기는 개념이 아니라 형제국(友邦) 간에 평소의 우의를 유지하고 증명하는 거래관계, 즉 현재의 무역에 해당한다. 그래서 조공을 하면 형제관계로 인정하되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토벌하여 형제관계를 유지하고, 조공을 하지 않는 관계면 적으로 보고 정벌한다는 인식을 가졌었다. 영락 5년 대왕은 비려(碑麗)가 조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不貢) ‘토벌’을 했으며, 백제를 ‘토벌’하는 이유로서는 신라를 괴롭혔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이는 신라를 형제국의 맏형(적자 즉 과거 천제국의 후예=舊民)으로 인정하고 다른 형제국이 맏형인 신라를 괴롭히므로 신라를 도와주는 입장에서의 토벌이었다. 신라는 토벌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 즉 도와주는 대상이었다는 말이다. 특히 6년 병신년에 ‘백잔을 토벌하여 신라를 이롭게 했다(討利百殘)’는 기록이나 10년의 ‘가서 신라를 구했다(往求新羅)’ 등의 구절이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이렇게 백잔, 비려, 왜 등과 신라는 구분되는 대상이다. 비문에 나오는 ‘舊是屬民’은 권속과 구민으로서 권속은 고구려의 직계 일가친척이고 구민은 천제국 때부터 이 터를 지켜온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신라는 구민(舊民) 이고 백잔은 권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본 것이다. 당시에는 조선민들만 무덤을 만들어 고인을 모셨는데 구체적인 표현은 없으나 비문 전체를 이해하고 보면 호태왕이 정벌을 하러 갈 때 어딘가에 무덤이 있는지를 탐문하여 무덤 있는 지역이 있으면 달려가서 우리 동족임을 확인하고‘앞으로 우리와 형제국으로 지내겠느냐?’고 물어보고 동의하면 동족으로 받아들여 보호를 했으며 불인정하면 쫓아내어 ‘정벌’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속국관 때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정벌을 하고 구원을 하였는데 일본인들이 이런 우리 민족의 분열을 부추기기 위해 만든 것이 신라와 백잔은 옛날부터 고구려의 속국이었다는‘속국관’이며 단재를 위시한 우리 학자들도 같은 해석을 하기 때문에 수많은 오해와 갈등을 빚었다고 본다. 나아가 고대 조선의 삼한관경제에서 진한이 마한과 번한을 함께 다스리는 천제국(당시는 고대 조선)의 적자였는데 신라가 진한의 후예라고 하며, 조선의 유민이 세운 나라가 신라라는『삼국사기』의 기록을 보아도 고대 조선 시대의 통치권자(적자)였던 진한이 신라로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호태왕은 이를 알고 신라를 옛날 천제국의 적자로 대접하여 이를 괴롭히는 신라를 혼내주면서 천제국 당시의 규율을 바로세우기 위한 정ㆍ토벌을 하였으므로 고구려의 영광만을 위한 게 아니라 조선민족 국가를 되살리려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5) 사문에서는 부사 등 허사를 잘 봐야 한다
    비문의 맨 처음 시작하는 惟昔始朝鄒牟王之創基也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之’자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생각하옵건대 옛적에 시조 추모왕께옵서 나라 터를 창업하시니”라고 해석한다. 이것은 한문식 해석이다. 여기서 우리말 순서대로 해석하려면‘之’를 ‘그곳’이라는 대명사로 보아야 하며 그래서“옛적부터 시조 추모왕이 그곳(之)에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고 자연스런 우리 말로 해석된다. 따라서 비문은 처음부터 당시 고구려인들이 쓰던 사문 즉 사실문으로 시작되어 전체가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말을 하듯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문으로 읽어야 한다.
    사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덕중 발제자 © 편집부
    4. 결론
    나는 광개토호태왕의 비문을 연구하는 내내 내 앞에 소앙 선생의 서책과 광개토호태왕 탁본서가 있어서 어루만지고 뒤적이다 보면 어느 새 내가‘자랑할 만한 이유가 있는 한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루빨리 온 국민을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무기력이 죄송하게 생각되었다. 하나의 석비를 가지고 대륙참탈의 목적으로 활용하여 세계의 주도국으로 만든 일본 관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공작에 놀아나 나라를 망하게 한 우리의 조상들도 있었다는 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국사기보다 720여년이 앞선 우리 고대사의 매우 중요한 사료인 광개토호태왕비문은 고대조선의 글이며 고구려를 뛰어넘은 조선광복사다. 그런데도 광복 60년이 지나도 국사광복을 하지 못한 채 식민지사관의 틀 속에서 헤매고 있고 일본이 자신들의 목적에 활용하기 좋도록 변조하고 왜곡한 호태왕비문에 대해서는 재발견 130년이 지나도록 그들이 내놓은 석문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런 사실 자체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바로 우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지금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역사교과서와 역사부도에 5세기부터 200년간 한반도 남쪽을 경영한 것으로 가르치며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고 있다. 또한 중국은 근거가 아주 미약하여 공식적으로는 그게 아닌 것을 언급하면서도 고구려가 자기의 역사라면서 만리장성을 고구려의 남방까지 연장시키고 있을 정도로 우리를 우습게보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오늘부터라도 우리가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일본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 중국의 압박에도 밀리지 않아야 한다. 이제라도 우리가 정신을 차려서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알고 바로세우는 데 관민은 물론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한다면 이는 결코 어렵지 않다. 바야흐로 한류로 인해 세계가 우리 민족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고 호태왕비문 원본도 거의 찾아져 있으며 올바른 해석 방법도 밝혀져 있으므로 이제는 오직 바로 잡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도 콩글리쉬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사문이 있다. 따라서 한문으로 된 수많은 우리의 사료들을 우리식 글인 사문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기록뿐 아니라 민속과 문화재에서 고대 조선민의 글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그 동안 잊혀졌거나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분야를 찾는 것이 현재 우리의 과제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새로운 한류가 될 수도 있다. 오늘의 발표를 계기로 더 없이 귀한 우리의 문화재가 제대로 연구되어 귀한 하나됨의 정신을 가진 우리 민족의 앞날에 서광이 비치게 하는 데 조그마한 기여라도 된다면 나로서는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올해 출발한 새 정부가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를 바라며 어학계는 물론 사학계나 민속학계에서도 지금까지 보고가 되지 않았던 분야였음을 인 하고 새로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면서 보잘 것 없는 발표를 마친다.
    Greatcorea     김덕중 (사) 삼균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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