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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영사의 음식, 그리고 수행

浮萍草 2013. 5. 16. 07:00
    하늘 땅 물 바람 섞어 땀흘려 빚어낸 맛
    불영사 스님들은 직접 고추농사를 짓는다. 한 스님은 갓 출가해서 처음 지었던 고추농사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30여 대중 전통 승가생활 공양주 채공 등 스님 소임 노스님 봉양…‘공양배달’도 청정수 넘쳐나는 비옥한 땅 스님들 손맛 수행력 어우러져
    영사의 아침공양은 오전6시. ‘불영사표 흰죽’서 모락모락 피어난 김 때문인지 공양간엔 엄마젖내음 같은 훈기가 감돌았다. 후원 한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철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생김새는 영락없는 중국집 철가방인데, 예쁜 포장지로 표면을 감싸서 그럴듯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맑고 싱그러운 얼굴을 한 앳된 스님이 등장했다. ‘철가방 스님’이다. 스님은“거동이 불편하신 노스님 거처에 가져다 드리는 공양”이라고 말하곤 서둘러‘배달’을 나갔다. 후원에 남은 스님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시님께서 이맘때면 감기 드시는데 콩나물김치국 드시고 원기회복하시길…” ‘콩나물갱죽’으로 불리는 불영사표 봄철 감기약이다. 갓 캐낸 냉이까지 넣으면 향긋함이 입맛까지 돋운다. 기침감기로 입맛을 잃거나 목이 까칠거려 삼키기 어려울 때 국물 넉넉한 뜨거운 갱죽 한 그릇이 몸의 기운을 덥혀준다고 한다. 겨울감기에는 또다른 명약이 있다. 불영사를 둘러싼 천축산 정기가 깃든 능이국이다. 불영사 스님들이 가을에 능이를 넉넉하게 말려두는 이유다.
    김장을 하는 스님들. 불영사 김장날은 동네잔칫날. 농사짓는 어르신들 사찰 처사들도 김장운력에 동참한다

    불영사에는 10여명의 노스님들이 주석한다. 20여명이 넘는 대중 스님들이 이들 노스님을 봉양한다. 불영사 공양간에는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공양주 보살’이 없다. 10여명의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대중들의 먹거리를 챙긴다. 밥하는 ‘공양주 스님’과 국과 반찬을 만드는 갱두,채공 등 절집의 옛 전통방식대로 소임을 나눴다. 맛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진풍경은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공양간의 질서다. 공양을 마치고 약 10분만에 모든 뒷정리가 말끔하게 끝난다. 후원일이 전부가 아니기에 각자 처소로 돌아가 공부하고 수행해야 하는 스님들은 촌음을 아끼면서 특유의 내공으로 운력과 봉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슬쩍 공양간에 발을 들이면서 TV맛집에서 봤던 흔한 장면 하나를 흉내냈다. “불영사 비밀레시피가 있는 ‘극비 소스’라도 있나요?” 발그레한 얼굴로 소리내어 웃는 스님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불영사 레시피는 정성과 화합이죠.” 정성어린 음식을 공양하니 자연화합되고 화합하는 도량이기에 누구 하나도 음식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법. 아침에는 무조건 흰죽공양을 원칙으로 하는 불영사는 5~7일마다 잣죽과 콩죽을 내기도 한다. 반찬으로 나온 두부간장과 산초간장, 콩조림과 삶은 감자 토마토 등을 함께 섭취했더니 현대여성의 만성병 ‘변비’는 자연치유.
     
    ▲ (左) 감자를 캐는 스님들. 불영사에서 직접 농사해서 수확한 감자는 쪄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스님들의 영양식이다   
    ▲ (右) 배추를 나르는 행자. 청정한 물과 바람과 공기가 어우러져 지은 농사인 만큼 수확물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불영사 음식전통은 주지 일운스님의 음식철학과 수행관이 접목돼 형성됐다. 1991년 불영사에 온 일운스님은‘몸이 없이 마음이라는 것을 수행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여법한 마음그릇을 조성하기 위해 천축산 높은 계곡에서 물을 끌어오는‘물불사’부터 시행했다. “공양한다는 것은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닙니다. 시방일체 제불보살을 시작으로 미물에 이르기까지 그 마음을 평등히 하는 것입니다. 한방울의 물이 생명수가 되듯 그 물방울을 통해 내가 보리의 마음을 일으키는 것 역시 모두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법이죠. 불영사의 하늘과 땅,물과 바람 어느하나 빠짐없이 함께하는 생명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불영사 스님들이 꼽는 불영사의 최고 자랑거리는 무엇일까. 바로 ‘불편한 교통’이다. 고속철이 다니고 비행기로 전국을 누빌 수 있지만 불영사만은 서울서 최소 5시간을 감수해야 닿을 수 있다. 영화에 나왔던 강원도‘동막골’을 연상케 한다. 서출동유(西出東流)의 청정수가 넘쳐나는 비옥한 땅에서 청정하기로 유명한 비구니 스님들이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짓는데 맛은 논해서 무엇하랴. 봄철에 제일 맛깔스런‘불영사 김치 3선’은 얘기만 들어도 침이 꿀꺽 넘어간다. 산수유물을 우려내서 미나리와 노란콩,밤과 대추,석이버섯으로 맛을 낸 산수유백김치,보기에는 갓김치인데 미나리에 밤과 잣을 곁들인 미나리김치,매실진액으로 톡 쏘는 맛이 환상적인 쑥갓김치…. 스님들 손맛은 뒤로 밀어내고 스님을 닮은 불영사 신도들의 음식솜씨도 한몫한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 끝나고 여름 하안거 결제가 시작되면 불영사의 14개 신도단체가 매주 토요일 점심시간을 전후로 김치와 호박,양념장을 넣은 ‘소면국수’를 선보인다. 그런가하면 안거 때마다 선방 스님들 대중공양으로 올리는‘야채김밥’은 촉촉한 야채맛이 어우러져 스님들 인기를 한몸에 받는다고. 기도수행하기 위해 절에서 오래 머물면 기름진 세속음식을 멀리하는 바람에 자연히 다이어트가 된다고들 한다. 단언컨대, 불영사에 가면 살찔 각오부터 해야 한다. 스님들이 내준 음식 하나하나가 전부 다 ‘밥도둑들’이다.
     
    ▲ (左) 불영사 주지 일운스님(오른쪽)은 수행자들의 음식철학을 세속인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영사에선 매년 10월
    사찰음식축제를 열어 불영사 음식을 선보인다.   ▲ (右) 불영사에서 빚은 메주. 유독 ‘아름다운’ 불영사 비구니 스님들이 빚어선지
    메주도 예쁘다.
    된장에도 다섯가지 德 있다던데… “조림간장만 잘해도 조미료 입맛 탈출” 불영사 장맛 따라가기 청국장 찜된장…‘다채’
    사람도 덕행(德行)이 쉽지 않거늘,된장에겐 덕이 다섯가지나 있다. “단심(丹心)은 다른 맛과 섞여도 제 맛을 잃지 않으며 항심(恒心)은 오래 두어도 변질되지 않고 불심(不心)은 기름진 냄새를 없애 주며,선심(善心)은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주며,화심(和心)은 어떤 음식과도 잘 조화된다는 의미입니다.” 불영사 주지 일운스님의 ‘된장법문’이다. 물표고버섯을 끓여넣고 두부와 풋고추로 맛을 낸 불영사 된장국밥은 막힌 속을 확 풀어주는 약석(藥石)이다. 흔히 유기농이니 자연산이니 음식재료를 고를 땐 까다롭다가도,간장과 같은 양념은 시중에 판매하는 것을 그대로 쓴다. 화합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려면 우선 조림간장 만들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스님들은 귀띔한다. 물엿 대신 단맛이 나는 과일을 듬뿍 넣기도 하고 산야초 등 약초를 넣어도 된다. 다시마와 표고버섯, 검은콩과 찹쌀, 집간장 등을 재료로 천연조림간장을 만들어 놓으면 겉절이나 무침, 조림 등에 쉽게 맛을 낼 수 있어 좋다. ‘불영사 청국장’도 유명하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8시간동안 콩을 삶은 뒤 소쿠리에 짚을 깔고 콩을 얹은 다음 참솔잎을 덮어두고 나흘간 콩을 띄우면 고소하고 담백한 청국장이 완성된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어우러진 ‘찜된장’은 노스님들이 좋아하는 별미다. 된장에 채수와 버섯과 풋고추만 있으면 된다. 호박잎의 쌈된장이 되기도 하고, 상추 열무와 함께 비벼먹어도 일품이다. 위장에 좋은 ‘산초간장’도 늦가을 허해진 기운을 회복하는 데 그만이다. 추석 전후로 열매를 맺는 산초는 위를 건강하게 하고 장을 정화시키는 효능이 있으며 식욕을 증진시킬 뿐아니라 냉증과 복통에도 효과적이다. 죽이나 누룽지에 곁들이거나 입맛이 떨어졌을 때 밥에 비벼먹기도 한다. 불영사 주지 일운스님은“위가 건강해야 마음이 편안하고 그래야 오장육부가 잘 가동해 심신이 편안해진다”면서 “육근을 청정하게 하고 음식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는 것도 중요한 수행”이라고 말했다. 불영사 음식맛의 원천은… 천축산의 하늘과 땅, 물과 바람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 다섯가지가 있다고 늘 생각합니다. 첫째는 깨끗한 공기,둘째는 깨끗한 물,셋째는 깨끗한 환경,넷째는 깨끗한 음식,다섯째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불영사는 이 다섯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하하.” 불영사 주지 일운스님은 맛깔스런 음식은 어느 하나의 조건에서 나올 순 없다고 말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수행자의 맑은 기운이 깃들면 무엇이든 맛나고 향기롭고 청정하지 않겠는가. 사계가 유난히 뚜렷한 불영사는“누구나 처음 오면 1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는데,이는 계절의 변화 때문”이라고 스님들은 말한다. 천축산을 끼고 있는 불영사계곡은 생태보호지역인데 요즘 보기 드문 꼬리진달래와 백리향을 비롯해 560여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또한 조류와 어류 포유류 등 200여가지 생명체들이 서식하고 있을 정도로 청정하다. 전국 어디서 오든지 거리가 만만치 않은 불영사에 해마다 열리는 가을음식축제에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이유다.
    불교신문 Vol 2904         하정은 기자 |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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