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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범어사의 보물 ‘먹자 대성암’

浮萍草 2013. 6. 1. 11:17
    “동산스님은 생전에 석이버섯 즐겨 드셨다”
    범어사 산내암자 대성암 동산스님 49재 喪食 올려 지금도 큰절에 ‘별미공양’ 비구니 스님들 손맛 ‘일품’ 70~80년대 ‘먹자 대성암’ 불려
    범어사 대성암 감원 성공스님이 후원을 소개하고
    있다.공양간은 현대식으로 갖춰졌지만 가마솥과 수각
    등 옛모습을 그대로 살렸다.
    대 비구니계의 거장 만성스님이 수덕사에서 은사 만공스님의 49재를 마치고 걸망을 푼 곳은 범어사 산내 암자 대성암이다. 때는 1955년. 환갑이 다 된 만성스님은 대성암 입승을 맡으면서 납자들을 제접했다. 당시 큰절 범어사 조실 동산스님은 만성스님을 두고“혜안을 갖춘 비구니”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10여년이 흘렀을까. 동산스님이 열반에 들자 만성스님은 49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상식(喪食)을 차려 올렸다. “동산스님께서는 생전에 석이버섯을 즐겨 드셨대요. 깊은 산 바위에 서식하는 석이버섯은 채취도 어렵고 손질도 복잡한 식재료지만 기일마다 만성 노스님께서 정성껏 석이버섯을 올리셨다고 해요.” 현 대성암 감원 성공스님의 ‘증언’이다. 동산스님이 떠나고 10년만에 만성스님도 그 뒤를 따라갔다. 1972년께 성공스님이 머리를 깎으러 대성암에 왔을 때 만성스님은 이미 병석에 누워있었지만 스님의 전설같은 일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대성암의 산 역사가 됐다. 성공스님의 은사 자행스님의 사숙이었던 만성스님은 이불과 요 없이 살 정도로 검약했다. 대중에겐 관대했으나 자신에겐 엄격하고 매서워‘옹대작대기’라는 별호가 붙을 정도였다. 그런 만성스님에게도 예외는 있었다. 바로 “먹는 것만은 잘 먹자”라는 철칙이다. “만성스님이 견성암에서 공부했던 시절 예고없이 객승이 찾아오면 밥을 추가로 더 해야 할텐데 공교롭게도 대중들 공양구에서 밥 한술씩 떠서 객스님의 공양구를 채워줬다고 해요. 그 때 만성스님은 당신의 밥 한술 빼앗기기 싫어서 차례가 오기전에 재빨리 물을 부었답니다. …만성스님은 대성암에 계실적에도 늘 선객들 허기지면 공부에 장애가 된다면서 가난한 살림에도 손수 쌀밥을 지었다고….” 요즘말로 하면 음식의 퀄리티를 중시했던 만성스님은 음식을 담는 그릇이나 접시 따위에는 도통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성공스님은 만성스님이 병석에 있을 때 어느날 공양간 선반에 빈 깡통들이 죽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꺼내보았더니 깡통표면에 정갈한 붓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잡수신 후 빈 통을 돌려주시길 바랍니다.’ 큰절 스님들에게 음식을 전할 때 썼던 공양구였다. 만성스님에 이어 대성암의 두 번째 ‘전설’은 성공스님 은사 스님의 은사 정원노스님이다. 노스님은 손상좌에게 혼쭐을 내다가도 “노시님 OO 먹고 싶어요”라고만 하면 다 풀어줄 정도였다. 큰절 스님이라도 찾아오면 우선 빈 밥상부터 갖다놓고 방금 끓이고 무친 음식들을 하나씩 하나씩 ‘코스’로 내 놓는통에 스님들이 부른 배를 움켜쥐고 돌아갔다고 한다. 싱싱한 생미역을 구하려고 부산 앞바다에서 하룻밤 자고 사오는가하면 미역줄기 하나도 야들한 겉은 고추장에 찍어먹고 줄기 밑으로는 국과 찌개를 끓이는데 썼다. 레시피가 따로 없었다. 날마다 후원에서 혼잣말로 하는 말씀이 곧 레시피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10여년간 대성암에는 무려 74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살았다. 대중공양도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대성암 스님들은 큰절 비구 스님들에게도 최고의 영양식을 공양하며 살았다. “197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선방 대중공양문화가 없었죠. 당시 범어사 선방에선 처음으로 사중에서 대중공양비를 받았다며 반가운 마음에 대성암 비구니 스님들을 불렀어요. 저도 따라갔지요. 입승 스님이 30만원을 건네자 우리 노스님이 뭐가 드시고 싶냐고 물으셨죠. 그 때 입승 스님은 다소 흥분한 어조로 입맛을 다시면서 ‘식혜’를 해달라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죠. 식혜가 그렇게 귀한 음식이었나 하고….” 어리고 앳된 행자였던 당시 성공스님은‘비구 스님은 비구니에 비해 모든 생활요건이 탁월한데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제아무리 부잣집 궁궐같은 집에 살아도 가난한 시골집에서 엄마가 끓여준 맛깔스런 된장찌개 맛을 흉내 낼 수 없듯이. 대성암은 지금도 된장내음이 가득한 도량이다. 대성암만의 내력이 스며있는 ‘끝내주는 국물’이 압도적인 냉면은 요즘도 하안거 때 큰절 스님들 거처에‘배달’하면 인기다. 수수부침개와 만두 녹두전은 선방 별식으로 별미 중 별미. 매년 안거 때마다 대성암에 방부를 들인 수좌 스님들은 90일간 300끼니를 최상의 공양으로 내는 대중 스님들 덕분에 먹고 싶은 것 없이 정진에만 몰두한다. 찰밥에 구운 김, 잡채와 떡 미역국 이렇게만 차려도 진수성찬이 된다.
    지난 4월 범어사 보살계 수계산림 때 어른 스님들 위해 대성암 스님들이 차린 공양.

    오랜세월 선방에 다녔던 성공스님은“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전제하면서“공부할 때 공부의 성취감을 느끼면 배고픈 줄도 모르지만 공부한 것이 시원찮으면 허전한 느낌이 몸에선 허기로 올 때가 많았다”면서“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과일도 채소도 차(茶)도 제맛을 느끼기 어렵다”고 대중을 외호하는 주지 소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몰랐던 사실 하나. 이토록 대중공양의 전통과 문화 역사를 간직한 대성암은 1970~80년대 오죽했으면‘먹자 대성암’으로 불렸다고 한다. 대성암은 스님들의 수행도량이니 아침.저녁공양은 자칫 폐가 될 수 있다. 오전11시 점심때만 맞춰간다면 ‘먹자 대성암’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터. 단, 몸으로 때우든 지갑을 열든 밥값은 후박하게. ㆍ“올가을엔 약초소금 만들까”
    대성암은 2010년부터 가을마다 사찰요리전을 열고 있다. 2009년 큰절 범어사에서 ‘대성암의 맛깔스런 음식’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제안을 받고 엉겁결에 사찰음식들을 선보였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사찰요리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 작년 10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사찰요리전에는 대성암 감원 성공스님이 수십년간 담궈온 산야초차 180여가지와 10여종 장아찌와 각종 효소를 선보였다. 42년 전 출가시절부터 직접 차농사를 짓고 산야를 누비면서 약용식물을 체취해왔던 성공스님은 행자시설 손수 법제에 맞는 한약을 지어 노스님을 봉양 했었다. 제3회째 열리는 올가을 대성암 사찰요리전에는 “약초로 소금을 만들어볼까 궁리중”이라고 성공스님은 말했다. 1년에 김장 두 번 동김치 여름김치 ■ ‘네이버’에도 없는 대성암 ‘비밀레시피’
    대성암 스님들은 금정산에서 채취한 갖가지 산나물
    과 버섯 등으로 사찰음식을 만들어낸다.지난 4월8일
    대성암 공양간에서 봄나물을 손질하는 스님들.
    “대성암 김치찌개맛을 능가할 김치찌개는 없다.” 대성암이 내세운 보물1호는 고작 ‘김치찌개’다. 묵은 김치에 돼지고기나 참치 통조림만 넣어도 맛난 김치찌개가 되는데 무슨? 대성암 감원 성공스님에 따르면 참죽으로 알려진 가죽이 찌개맛의 비결이다. 가죽은 옛날 장아찌 재료로 많이 쓰였는데 요즘은 웬만한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다. 가죽으로 국물을 내서 대성암의 명품 묵은지로 찌개를 끓이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김치찌개가 탄생한다. 작년 말레이시아의 재력가들이 사업차 부산에 와서 범어사를 방문했을 때 대성암표 김치찌개로 공양을 대접 했는데, 반응이 엄청났다는 후문이다. 뭐니뭐니해도 김치찌개의 관건은 김치맛일텐데 놀라지 마시라, 대성암은 김장을 1년에 두 번 한다. 동김치와 여름김치를 나눠서 담근다. 겨울에는 1000여포기 넉넉하게 김장을 하고 여름에는 장마철이 지나고 나서 여름배추를 거둬서 열무김치 등 수백포기의 여름김장을 담근다. 시래기찌개 생미역국도 일품이다. 특히 시래기찌개에는 마지막에 재피가루를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 뒤 방아잎으로 끝맛을 낸다. 고사리,토란줄기 죽순과 표고 느타리 목이버섯 등을 골고루 넣은 채개장은 고기가 들어있는 육개장보다 훨씬 개운하다. 마지막에 숙주와 미나리를 넣고 한소큼 더 끓이면 금상첨화. 노스님들이나 질환이 있는 스님들에게 선보이는 완두콩죽과 토란탕도 약식 중 하나다. 대성암 비구니 스님들도 깐풍기와 떡볶이를 좋아한다. 우리들이야 중국집에서 깐풍기를 시켜먹거나 도처에 깔린 떡볶이집을 애용하지만 스님들은 다르다. 표고와 풋고추 피망과 마른고추 셀러리 등으로 맛깔스러운 표고깐풍기를 절에서 직접 한다. 살짝 튀긴 야채를 고추기름과 간장, 조청을 넣고 전분을 풀어넣으면 걸쭉한 표고깐풍기가 완성된다. 간장떡볶이는 젊은 비구니 스님들에게 인기다. 표고버섯과 목이버섯 등 갖은 버섯과 피망 당근과 같은 야채를 넣어 간장과 조청 참기름으로 간하면 스님들의 훌륭한 간식이 된다. 풋고추와 고추장 된장을 밀가루와 반죽한 고추장떡도 별미다. 오랜세월 이어져온 대성암 특유의 전통음식부터 현대식 응용요리까지 수백가지 사찰음식이 있지만 대성암 스님들은 그 흔한 레시피책 한 권 내지 않는다. 스님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옛 스승들의 음식철학과 스님들에 스며있는 손맛이 있는 한‘대성암 음식의 법맥’은 지금도 생동하고 있다.
    불교신문         하정은 기자 |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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