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케치여행

익산 미륵사지

浮萍草 2013. 6. 2. 07:00
    존재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거대한 희망을 그려본다
    따란 황톳빛 터가 펼쳐진 곳곳에는 볼록 올라온 흙더미만이 이곳에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없이 전해 주고 있었다. 거대한 폐사지는 적요의 깊이로 인한 짙은 공간감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오후의 이 감미로운 시간. 건물 가득한 사찰의 가람과는 전혀 다른 상념들이 떠오른다. 사라진 절터만큼 시간의 흔적에 대한 사색이 적당한 곳도 또 없다. 나는 사라진 미륵사의 경내를 천천히 걸었다. 미륵사는 7세기 백제 무왕 때를 전후하여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로 잘 알려진 선화공주와 무왕의 깊은 불심을 엿볼 수 있는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다. 세 개의 탑과 세 개의 금당을 가진 세 개의 절이 모여 하나의 절을 이룬 형식이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3원 1가람 형식의 독특한 모습이다. 이는 미륵삼존을 위해 창건되어 세 군데에 설법처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미륵은 현재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이을 미래의 부처이다. 미륵경전에 의하면 그 시기는 앞으로 56억7000만년 후라고 전해진다. 인간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시간. 하지만 한 해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내일이다. 훗날 미륵이 하생할 세계는 국토가 풍성하고 온갖 보배가 드러나며,사람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이 없고 서로 기뻐하며 사랑하는 세상이라고 하니 그때 지상은 바로 낙원이 되는 셈일까. 그 오랜 세월의 한 중간에 비록 미륵사는 잠깐 형체를 감추었지만 존재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를 남겨주고 있다. 이제 그 공허함 속에 마음 가득 커다란 희망을 그려 본다. 텅 비어 더욱 거대할 수 있고 더욱 무한할 수 있는 꿈들 그 꿈을 한 해가 시작하는 지금 미륵사의 경내에서 기분 좋게 꾸어본다.
     
    ▲ (左) 익산 미륵사지 석탑1993년에 복원된 동석탑은 높이가 30여 미터에 달해 과거 석탑의 웅장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기계로 자른 듯한 석재의 차가움으로
    인해 비평의 시각이 더 많은 비련의 탑이기도 하다.익산 등지에서 구한 화강암 2700여톤이<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탑의 형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목탑양식을 독자적인 석탑으로 만들기 시작한 최초의 탑으로 알려져 있다.    ▲ (右)보물236호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당간을 지탱하기
    위한 기둥인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된다.일반적으로 당간지주는 절 문 앞에 한기가 있지만 3원1가람이었던 미륵사에는 두 기의 당간지주가
    있었다.

    중심에서 출토된 평기와와 수막새, 쇠못 등의 유물과 이중기단이 목탑의 존재를 말해준다.대략 60m는 족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목탑은 당시 얼마나 장대
    한 멋스러움을 풍겼을까.목탑을 중심으로 동서의 별원에는 이 목탑을 충실히 모방한 두 개의 석탑이 들어서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오늘날까지 많이 훼손되어 남아온
    서석탑이다. 일제 강점기 때 시멘트로 붙여 놓았었는데 지금은 다시 복원의 과정에 들어가 모두 해체 되어 있는 상태이다. 또한, 탑 뒤에 있는 세 개의 금당은 모두
    지하에 공간이 있는 특이한 구조였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용으로 변한 미륵이 와서 머물 장소를 금당 지하에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불교신문 Vol 2877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