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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

浮萍草 2013. 6. 9. 07:00
    지리산 오르는 마음이 이토록 감미로울까
    리산을 한번쯤 올라본 이라면 천왕봉까지 향하는 한발 한발의 의미를 잘 알고 있으리라. 그렇게 마음과 힘을 오롯이 가다듬어 내디딘 걸음이 모인 정상에서의 기쁨과 감동은 어쩌면 당연한 걸까. 그렇게 몇 번이고 지리산은 내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발걸음의 무게는 조금씩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산은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겼다. 그런데 지리산 한 자락에는 올라가는 거리와 시간은 다르지만 그만큼이나 의미 있는 발걸음을 전해주는 곳이 또 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고찰, 화엄사의 각황전(覺皇殿)을 오르는 계단이다. 화엄사에 들어서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면 금당이 있는 중심 영역의 아래 마당에 다다른다. 층계로 이어진 위 마당은 전각들로 가득하고, 그 뒤로 지리산의 너른 품이 병풍 같다. ㆍ나그네를 포옹이라도 해 주려는가
    좁고 가파른 층계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각각 연결해 주고 있는데 그 중 각황전을 오르는 계단이 오늘 스케치 속에 담은 풍경이다. 이 길지 않은 계단이 내게는 지리산 정상을 향하는 오랜 시간을 짧게 응축한 것 마냥 감미롭다. 천천히 오르는 위편에 세계 최대의 석등(국보 제12호)이 우두커니 지켜 서서 내려다본다. 석등은 나그네에게 포옹이라도 해 주고 싶은 걸까. 올라가는 만큼 쓰러질 듯 기대어 온다. 그 배경으로 거대한 각황전이 시야 가득 물들어 있다. 법당이 크니 석등도 큰 것일까. 하지만 알고 보면 각황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02년(숙종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석등에 비하면 꽤나 젊은 편이다. 따라서 석등이 크니 법당도 크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각황전 이전에 이 자리에 있었다는 3층의 장육전(丈六殿)이라는 건물의 부재감이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장육전은 사찰의 이름이 있게 한 화엄석경이 실내 사방의 벽을 채우고 있었다고 하니 온전히 지켜져 오지 못한 것이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ㆍ석등은 사유의 빛으로 경내를 밝혀주고
    지난여름, 화엄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각황전의 새벽예불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새벽어둠을 뚫고 들어선 각황전은 낮에만 보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불을 밝힌 오래된 건물의 향취는 새벽예불을 더욱 신비롭게 해주었고,통층 내부의 웅장함은 절로 경외감을 만들었다. 수많은 파편이 된 화엄석경 조각이 보관된 수미단을 향해 배례를 올리며 잘 알지도 못하는 화엄경이 벽면 가득 새겨져 있었을 장육전을 상상해 본다. 예불이 끝나고 나온 각황전 주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뿐이다. 하지만 각황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화엄사를 지켜온 거대한 석등은 보이지 않는 사유의 빛으로 끝없이 경내를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석등을 지나 천천히 계단을 밟아 내려간다. 새벽 지리산의 청명한 공기 속에 예불의 잔향이 실려 오고 있었다. 길지 않지만, 깊고도 풍요로운 하산 길이었다.
    ■ 각황전은 … 의상조사가 건립한 장육전 1400년 역사… 2층형 통층 각황전의 본 이름은 장육전으로 1702년 중수한 건물이다. 장육전은 문무왕 17년(677)에 의상조사가 건립한 건물로 황금장육불상을 모셨다. 중국에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온 의상스님은 '이미 해동에 화엄학이 있었다'는 사실에 화엄사를 찾았다. 그리고 장육전을 건립했다. 장육이란 부처님의 몸을 일컬으며 장육금신(丈六金身)이라 한다.

     

    의상조사는 장육전 사방벽에 팔십화엄(八十華嚴) 10조 9만5048자(字)로 된 화엄경을 옥돌에 새겨 넣었다. 임진왜란 때 화엄사 대중스님 300여 명이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자, 가토가 이끄는 왜적이 5000여 칸에 이르던 화엄사를 전소시켰다. 장육전도 이때 파괴돼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돌기단과 1만여 점이 넘는 화엄경 조각만 남았다. 왜란이 끝나고 스님들은 나무를 베어 나르면서 다시 절의 옛 모습을 복구했다. 그 가운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 건물이 각황전이었다. 장육전이 중수되자 숙종은 친히'각황전(覺皇殿)'이라 사액했으며 선교양종 대가람으로 승격시켰다. 각황전은 아름다운 건물이다. 지붕을 옆면에서 보면 여덟팔(八)자 모양을 띄고 있다. 팔작지붕이라 부른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짠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여있는 다포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법당 위.아래층이 트여 있어 밖에서 볼 때는 2층이지만 법당 안에 들어서면 높은 1층의 건물이다. 그 안에는 세분의 여래불과 4분의 보살님이 중생들을 굽어 살피고 계신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며,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도록 처리했다. 원근감이 뛰어나다. 이런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민족이라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다. 그런데 지난해 한 등산객이 각황전에 방화하려고 한 적이 있다. 아찔했던 경험이다. 그래서 화엄사 대중은 한층 건물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전라남도에 가면 꼭 가봐야 할 사찰이 화엄사. 그리고 화엄사에서도 반드시 참배해야 할 법당이 각황전이다. 1400년의 역사가 거기 놓여있기 때문이다.

    안직수 기자 jsahn@ibulgyo.com

    불교신문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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