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新줌마병법

피를 팔아도 좋아! '허삼순 매혈기'

浮萍草 2013. 3. 22. 21:10
    갈수록 팍팍한 살림살이… 배짱좋게 사표 던진 남편 대신 생업전선 나선 계약직 삼순씨
    입에 단내 나도록 뛰어도 돈 나올 구멍 없던 터에 그녀에게 찾아온 '희소식'은?
    김윤덕 차장
    국 생사공장 노동자 허삼관은 피를 팔아 번 돈 30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었다. 코딱지만 한 공장 월급으로는 세 아들 먹성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피를 더 많이 뽑기 위해 허삼관은 배가 빵빵하다 못해 아플 때까지,이뿌리가 시큰거릴 때까지 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피를 뽑기 전에는 오줌도 누지 않았다. 피를 팔고 난 다음에는 혈액순환에 최고라는 볶은 돼지간 한 접시와 따끈히 데운 황주 두 잔을 마셨다. 머리가 어찔,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그것이 가장(家長)의 도리라고 믿은 허삼관은 뿌듯하고 행복했다. 문화혁명기 시절을 그린 위화의 작품 '허삼관 매혈기'다. #
    대한민국 계약직 회사원 허삼순은 월 200만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었다.
    있는 집에서는 자식들 과외비 주고 나면 바닥날 월급으로 그녀는 중학생·초등학생 남매를 건사하고,석 달 전 호기롭게 사표를 던진 남편에게 담뱃값도 쥐여줬다. 월급만으로는 먹성 좋은 식구들 한 달 식대도 당해낼 수 없어 주말에는 동네 편의점에서 시급 알바를 했다. 치솟는 물가를 따라잡기 위해 세탁기 다섯 번 돌릴 거 한 번만 돌리고, 한 달에 한 번 외식하던 걸 1년에 한 번으로 줄였다. '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는'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았다. 죽었다 깨도 타협은 없다는 신조를 최대 장점으로 여기고 사는 남편 때문에 울화통 터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결코 바가지는 긁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엄앵란 여사의 말에 세뇌된 탓이었다. 백수 주제에 초등 동창회에서 만난 첫사랑에게 콧노래 흥얼대며 문자를 날리던 남편을 살려둔 건 오로지 자식들 때문이었다. 아홉 살에 부친을 여읜 허삼순에게'아버지'란 아랫목에서 평생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을지언정 세상에서 가장 크고 거룩한 자리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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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남이 백수거사가 되었어도 시어머니의 유세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이럴 때일수록 보약을 먹여야 한다"며 전화통에 불을 내시니 중학생 아들 운동화 사주려고 꼬불쳐놓은 비자금을 노는 남편 몸보신 하는 데 바쳤다. 홍삼 먹고 힘이 뻗쳤는지, 남편은 잃어버린 자신의 꿈을 찾아오겠다며 무슨무슨 조찬강연회에 피 같은 돈을 뿌리고 다녔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입에 단내가 나도록 뛰는 사람은 허삼순뿐이었다. 과로와 수면 부족으로 혓바늘이 돋고 눈앞이 노래져도 허삼순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회사에도 '시어머니'가 한 분 있었다. 아무리 비싼 명품을 걸쳐도 절대 명품 티가 나지 않는 여자 상사는 허삼순의 정시 퇴근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사사건건 "애는 당신 혼자 키워?" "우리 남편은 알아서 밥도 잘 해먹더구먼" 하며 통박을 놓았다. "사람이 명품이어야 진짜 명품"이라 충고해주고 싶었지만, 허삼순은 간이 작았다. "아이들 재워놓고 자정부터 재택 심야 근무에 들어가도 야근수당 신청한 적 없지 않으냐" 대들고 싶었지만,허삼순은 심장도 콩알만 했다. 다음 달 계약사원 50명 중 정규직 사원 5명을 선발하는 권한이 하필 그녀에게 있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인생이니,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는 중국어를 독학했다. 여행가이드로 인생 2막의 승부수를 날려볼 참이었다. #
    갑상선에 혹이 하나 있다는 진단을 받은 건 3년 만에 실시한 건강검진에서였다. 의사는 "갑상선 오른쪽 날개에 생긴 혹이 양성인지 악성인지 알아보려면 바늘로 목을 찔러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겁을 줬다. 위도, 폐도 아니고 갑상선이라니 허삼순은 시큰둥했다. 대한민국에서 갑상선 멀쩡한 여자 별로 없고,설령 암이라 해도 생명에 큰 지장이 없어서 평생 달고 산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암·보·험'이란 세 글자가 떠오른 건, 이순재가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으니 보험에 당장 가입하라는 광고를 본 순간이었다. 갑상선암이란 말 자체가 없던 10년 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들어둔 암보험 말이다. 만일 암이라면 무려 2000만원을 손에 쥐는 거였다. 200도 아니고 2000이었다. 20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항목을 세고 또 세어보느라 허삼순은 밤잠을 설쳤다. 중학생 아들 수학 과외 선생 붙이기,소고기 배 터지도록 구워먹기,백수 남편 힘내라고 양복 한 벌 맞춰주기,시어머니 벚꽃 관광 보내 드리기,중국어 학원 등록하기…. 이튿날 허삼순은 눈을 뜨기가 무섭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빨리 바늘로 찔러 보시라"며 의사에게 목을 들이댔다. 의사가 허삼순을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개는 양성일 확률이 높고, 악성은 20~30%에 불과하니까요." 그러자 허삼순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선생님, 어찌 그런 막말을 하십니까? 양성 아니고 악성이어야 한다니까요? 갑상선암이라야 내 팔자가 확 핀다니까요?" #
    의기양양 진료실을 나서는데 김삼순· 최삼순·박삼순·오삼순이 두 눈을 빛내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해의 일이다.
    Chosun         김윤덕 조선일보 여론독자부 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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