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新줌마병법

한증막, 뜨거웠던 여인들의 텃세

浮萍草 2013. 2. 21. 14:45
    설에 콘도 갔다 마주친 토박이 아낙들의 '한 수
    ' 젊다고, 서울 산다고 잘난 척할 것 없수
    … 사는 게 별거 있나 욕 안 먹고 살면 되지


    김윤덕 차장
    며느리 명희씨가 언감생심 콘도에서 설을 쇤 건, 100% 시어머니 뜻이었다. 
    지지난 설만 해도 연휴에 해외여행 간다는 사람들을 향해"저런 상것들,본데없는 것들"이라 흉을 보던 어른
    이었다. 
    작년 설 그 숫자가 다시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가 '성심'을 흔든 것이 분명했다. 
    "조상님덜 영어가 짧으시니 해외여행은 안 되겄고 넘들 다 한다는 콘도 차례는 나도 좀 해봐야 쓰겄다."
    설산(雪山)이 장관을 이룬 소백산 끝자락에 올라앉아 지글지글 명태전을 부쳐내던 시어머니가 헤벌쭉 
    웃으셨다. 
    "콘도 몰려가는 이유 알겄네. 
    코앞에 진경산수를 두고 손주들과 둘러앉아 맛난 음식 해 먹으니 여그가 낙원이로고." 
    50년 만의 '외도'를 두둔하는 덕담 또한 잊지 않으셨으니, 
    "광식이 아부지, 서울 인자 신물 나지요? 
    여그가 단양이라고 정도전도 반한 도담삼봉이 있다 안 허요. 
    
    좋은 경치 구경함시롱 떡국 한 끼 자시는 것도 재미질까 하여 내려왔응께 차린 건 벨로 읎지만서도 맛나게 들고 가시요잉?" # 제일로 화색이 만발한 건 며느리다. 지난 명절의 절반도 안 되는 노동으로 차례를 지냈으니, 로또 당첨이 부럽지 않았다. '복병'은 엉뚱한 데서 만났다. 식구들 썰매장으로 몰아넣고, 한 일도 없이 불찜질을 하고 있자니, 일군의 여인이 떠들썩하게 들어왔다. 손에 들린 것이 빨대 꽂은 식혜가 아니라 양푼 가득 얼음 띄운 냉커피인 것이며,벌거벗은 와중에도'형님,동생'으로 위계 한번 살벌한 것이,뜨내기 관광객이 아닌 동네 시장통 여걸들이었다. 과연 여인들은 땀이 비 오듯 쏟아지자 피를 나눈 동지처럼 양푼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커피 물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풍채가 집채만 한 여인이 이제 막 양푼을 내려놓은 여자의 배를 찰싹 내리쳤다. "넌 이걸 배라고 달고 다니냐? 겹겹이 삼겹은 돼야 조선의 여인이지." 복면달호처럼 수건으로 얼굴을 칭칭 감은 여자가 빼꼼히 내놓은 두 눈을 치켜뜬다. "늘어진 뱃살로 안방에 커튼 치실라고? 배보담 다리가 튼튼혀야지. 저기 저 순자 다리마냥 종아리가 알차고 탱탱해야 말년이 무사한 거유." 그 말에 수제비 반죽 잡아떼듯 뱃살을 쥐어뜯던 순자 여사가 두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형님. 무릎 아픈 건 겨울 무나 새 다리나 매한가지유. 명절 지냈더니 만신이 쑤셔 못 살겠구먼. 아프면 살이라도 빠져야지, 밥맛은 왜 이리 좋은겨?"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 화기애애하던 수다판이 '서울 며느리' 난타전으로 옮아간 건, 우윳빛 피부에 군살이라곤 없는 여인이 한 분 입장한 탓이었다. 그녀가 감히 이렇게 중얼거리지만 않았어도 봉변은 면했을 터. "산 좋고 물 좋은 동네라더니 목욕탕 물은 왜 이렇게 미끄러워요? 도대체 때라고는 안 밀리네." 그 소리에 대자로 누웠던 복면달호 여사가 '끄응~' 하고 몸을 일으켰다. "서울 언니요, 저기 저 욕장에 프랑카드 안 걸렸슈? 센물에 들어 있던 칼슘과 마그네슘을 그 뭣이냐, 경수 연화 처리 장치를 이용해 단물로 바꿔놨다고 적은 거 안 보여유?" 뱃살 뜯던 순자씨도 거들었다. "청풍명월 그 좋던 자연이 외지인들 몰려오는 통에 거덜날 판인디 이게 뭔 도깨비 잠꼬대랴? 글고 요즘 촌시럽게 누가 때를 미는겨?" 무안해진 여자가 도망치듯 한증막을 빠져나가자 여걸들의 본격적인 서울 며느리 단죄가 시작됐다. "간장 한 종지 놓고 차례를 올릴지언정 고향 집에서 조상을 뵈어야지, 어디 법도도 없이 생판 모르는 골짜기를 찾아온겨 시방?" "그 부모들은 얼씨구나 좋아서 콘도까지 쫓아왔겄어? 그렇게 해서라도 손주들 얼굴 보겠다고 짜낸 고육지책이라고 그게." "지난해 시집온 쌀집 둘째 며느리 말여. 평생 쌀가마 나르느라 허리가 아퍼 죽겠다는 지 시어머니한테 뭐라고 한 줄 알어? '그러게 젊으셨을 때 건강관리를 잘하셨어야지요오~.' 고게 서울내기여." # 민망해진 명희씨, 찬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뒤 불가마로 돌아오니 천만다행히도 여인들 화제가 바뀌었다. "경자, 넌 요즘 워디서 품 파냐?" "사거리 매운탕집 나간다고 안 했슈?" "그 집 사장 성깔이 오지게 맵다던디 배겨내겄어?" "고생도 낙이라고, 아랫목에서 뒹구느니 팔뚝에 힘 남아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그러다 한 방에 가면 형님만 억울하지유." "고단한 세상 오래 살어 무엇하게. 태어나 공부를 실컷 해봤나, 사랑을 듬뿍 받았나. 스물하나에 시집와 시부모 모시고, 남편 섬기고, 자식들 키웠더니 이젠 며느리도 모셔달라 하네." "그러게 우리가 두 다리 뻗고 쉴 곳은 불가마라잖어유. 골병든 몸뚱어리에 특효약은 지지는 거라잖어유." 누군가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더냐, 욕 안 먹고 살면 되는 거지, 술 한잔에 시름을 털고 너털웃음 한번 웃어보자~.'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는데 누가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그래두 서울 사람들이 내려와야 우리가 먹고살지. 시골 돈은 돈도 아녀. 서울 돈이 진짜 돈이지. 안 그려어?"
    Chosun         김윤덕 조선일보 기획취재부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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