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수학 이야기

12 지구를 위한 수학

浮萍草 2016. 4. 1. 09:57
    인류 대재앙 지구온난화 ‘AI 수학의 힘’으로 막는다
    그래픽=김연아 기자 yuna@
    재 바둑기사 이세돌을 이겨서 장안의 화제가 된 알파고는 데미스 허사비스라는 사람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통해 기후변화와 같은 인류가 당면한 문제의 해결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학습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으로 천재 바둑기사를 이긴 것은 직접 봤으니 알겠는데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와 같은 인류의 잠재적 재앙과 인공지능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들지만,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문제와 맞서 싸우는 최일선에 수학자들이 있다. 통계학이나 기계학습처럼 데이터 관점의 접근 말고도 미분방정식 등을 사용해서 기후변화 모델링을 하는 해석학적인 접근도 활발하다. 이산화탄소 배출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는 실험적인 연구를 통해 입증됐을 뿐 아니라 수학적인 모델링을 통해 이론적으로도 상당히 규명됐다. 이런 이유로 해석학 적 접근을 모델링 접근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노력을 지지하고 조직화하기 위해 유네스코는 2013년을 ‘MPE의 해’(Year of MPE)로 지정했다. MPE는 Mathematics of Planet Earth의 줄임말이니,‘지구를 위한 수학의 해’라는 뜻이다. 2013년 3월에는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MPE의 해’ 선포식이 성대하게 개최되기도 했다. 유네스코의 이런 노력은 나름의 필요에 의해서다.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정책으로 구현 가능한 대응책 마련으로 이어지고 국제적 협력을 통해 실행되는 수순을 밟으니까. 아직도 지구온난화는 과학자들이 지어낸 허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지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이상기온이나 쓰나미가 잦아지는 등의 징후는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국가 단위의 노력만으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가 역부족이어서,얼마 전에는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파리에 모여서 국제협약을 체결했고 우리 나라도 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를 대재앙으로 커지기 전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누가 반대하랴. 하지만 방법이 문제다. 국제연대의 통상적인 방식은 탄소세 도입 등의 정책적 대응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에 세금을 매기는 것인데 북유럽 국가들과 영국,스페인 등이 이미 도입했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국가들의 경쟁에서 저탄소 정책으로 발목 잡힌다고 여기는 국가가 많고, 아직도 서방선진국에 비해 탄소배출량이 적은 중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의 불공정성 제기도 만만치 않다. 선진국들이 먼저 나쁜 짓 다 해놓고는 자기들이 사고 친 책임을 후발국들에 떠넘긴다는 것이다. 미국인 한 명이 연평균 17.6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중국인 평균은 아직 6.2t에 불과하다. 이 차이가 줄수록 세계의 탄소배출량은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로, 탄소세는 고사하고 오히려 휘발유 사용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산유 국가들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으로는 이런 장려금만 연 1조9000억 달러다. 국제적 공조를 통해 화석연료에 대한 이런 지원금을 금지하고 신재생에너지 연구에 대한 대대적 투자를 통해서 녹색에너지 가격을 화석연료 가격 수준으로 낮추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기후 및 자연재해에 대한 수학적 방식의 접근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홍수로 인한 나일강의 범람이 국가가 당면한 큰 문제가 됐는데 이 자연재해가 반복되면서 나름의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이 패턴이 절기와 관련 있음을 눈치채자 정확한 달력이 답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월 30일에 연 360일로 구성된 초기의 달력으로는 재해예측이 불가능함이 자명했다. 연 365일로 구성된 달력 발명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고질적인 부정확함이 국가경영의 장애 요인이었다. 고대 그리스 후기인 알렉산드리아 시대에 와서야 365일에 6시간을 더해야 한다는 걸 알고 윤년을 도입한 정확한 달력이 출현했으니, 자연재해와 싸워온 인류의 싸움은 곡절이 많은 지적 투쟁 과정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자 아테네 시대의 마지막 철학자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상학 책을 집필했는데 이 책에서 구름의 모양 분석을 통해 날씨를 예측하려 했다. 일종의 패턴인식에 의한 기상 모델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기상예측 방식은 오랜 세월 동안 큰 진전이 없이 19세기까지 이어졌다. 19세기 전기 통신의 발명으로 인해 각 지역의 기상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지자, 취합한 데이터를 사용해서 기상 예측을 하는 수치기상예측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날씨에 영향을 주는 측정 가능한 각종 요소들의 상호관계를 미분방정식으로 기술하고, 이를 수치적으로 풀어서 근사해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상청에 수치계산을 잘하는 수백억 원대의 슈퍼컴퓨터가 있는 이유다. 오늘날 MPE는 다양한 주제와 접근으로 그 범주가 크게 확장됐다. 일단 접근 방식에서는 해석적 접근과 데이터적 접근이 있다. 전통적인 접근은 미분방정식을 사용해서 기후 모델링을 하는 해석적 방식인데 컴퓨터 하드웨어의 향상과 수치 알고리즘의 진보로 활용도가 크게 늘었다. 극지의 빙하가 녹아 없어지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인류가 당면한 재앙인 빙하 붕괴를 다른 기후 요소와 연계해서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연구는 이미 상당히 진척됐다. 날씨 예측 수준을 넘어서서 지진이나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 예측에서도 모델링 접근은 상당한 정확도를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방정식 자체의 비선형성과 다차원성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잦다. 충격파나 와류와 같은 복잡한 문제는 여전히 수치적으로 풀기 힘들고, 이런 문제의 해가 존재하는지 등의 수학적 이해도 아직 부족한 상태다. 해석적 접근의 또 다른 골칫거리는 기상 현상에 내재된 불확실성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극단적 이상 기후를 장기적으로 예측하고 예상 강도를 추정하려면 불확실성을 정량화해야 한다. 실제 자연현상과 계산적으로 만들어진 모델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모델의 신뢰도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현상과 계산모델 사이의 오차(error)와는 무엇이 다를까? 오차는 알고리즘의 부실 때문이지만 불확정성은 인간 지식의 부족 탓으로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수학적 이해를 수치알고리즘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불충분하면 오차가 생기지만 불확정성은 수학적 이해 자체가 제대로 안 돼서 생긴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의 정량화(uncertainty quantification)라니, 이게 가능한가? 19세기 스위스 수학자인 자코브 베르누이 이후로 오랫동안 연구돼온 분야인데, 통계적 방식을 통한 추정의 형식이 주가 된다. 데이터적 접근은 더 최근의 접근이다. 허사비스가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기후변화를 다루어 보겠다는 게 이런 방식을 대변한다. 해석적 접근에 익숙한 수학자들에게는 신세경(新世境)이고 새 지평이다. 오랜 세월 굳어진 문제접근 방식을 토대로부터 헐어버리는 이런 혁신적 발상이 학문의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은 데다 불확실 요소도 많이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지배법칙을 찾는다는 것과 그렇게 얻어진 방정식들을 수치적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인류가 가까운 미래에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이다. 그런데 아예 이런 상식을 다 무시하고, 무시무시하게 방대한 기후 데이터를 모아서 인공지능으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하면 기후변화나 자연재해의 예측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요소에 집중하면 문제를 부분적이나마 해결하거나 늦출 수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적 접근이 MPE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거라는 걸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구적 문제다 보니 데이터의 방대함이 상상을 초월해서 저장공간 같은 하드웨어 문제도 엄두가 안 났다. 게다가 이 엄청난 데이터의 바다에서 특정 유형의 데이터를 검색해내거나 가장 유사한 데이터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무한 검색을 해야 하는 거라서 도통 방법이 안 보였다. 그런데 알파고는, 특정 상황에서 다음 수를 찾아야 할 때, 무시무시하게 많은 가능 시나리오를 검토해서 그 중 최적으로 보이는 수를 찾아내는 걸 해냈다. 무작위성을 이용한 몬테카를로 서치와 기계학습의 진전된 형태인 딥러닝이 주효했다. 역사적인 기후변화 패턴을 학습하고 단기 예측뿐 아니라 장기 예측까지 하는 문제는 알파고가 이미 해낸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MPE가 다루는 주제는 방대하다. 지구 내부의 구조를 알아내거나 지진을 예측하는 일도 포함된다. 지구 중심에는 단단한 내핵과 부드러운 외핵이 있고, 그걸 3200㎞에 달하는 맨틀층이 싸고 있다. 드릴로 땅을 뚫어서 지구 중심까지 가보지 않는 바에야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걸까? 답은, 지진파를 관찰하고 수학을 사용해서다. 지구 내부가 균일하지 않으니 지진파는 각 부분에서 속도가 달라진다. 각 부분의 성질과 모양이 원인이라면,지진파의 모양은 그 결과로 볼 수 있다. 원인을 알면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관점으로 보면 전형적인 정문제(forward problem)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 즉 인과관계는 수학적인 방식으로 기술된다. 하지만 우리가 측정한 것은 결과, 즉 지진파의 모양이다. 이로부터 원인을 추정하는 것은 역문제(inverse problem)이다. 물론 과학자들은 이걸 해냈고, 지구 내부 구조와 다양한 층의 성질까지도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지구의 구조가 이런 모양이 아니라면 절대로 저런 지진파가 나올 수 없다”라는 관점이 역문제인데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엑스레이 영상으로부터 인체 내부의 모양을 추정한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세상의 문제들이 수학의 안경을 쓰고 보면 같은 문제가 된다는 것, 이건 멋지지 않은가.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草 浮
    印 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