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수학 이야기

10 ‘우주 미아’를 구한 숫자

浮萍草 2016. 1. 24. 08:00
    “소통은 곧 數의 교환”… 이 깨달음서 ‘통신혁명’ 시작됐다
    그래픽 = 김연아 기자 yuna@munhwa.com
    마 전 개봉했던 영화 마션은 현대판 로빈슨 크루즈의 우주 표류기이다. 주인공 맷 데이먼은 실수로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으로 등장한다. 제대로 된 통신장비가 없어서 지구에 자신의 생존을 전달할 방법이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누구에게도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이 생존해 있다는 것을 나사(미 항공우주국)에 알리면 구조팀이 올 텐데…. 다행히 유능한 나사 직원이 화성 표면 사진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먼저 그의 생존 사실을 알아챈다. 나사는 그의 화성 표면에서의 이동 경로를 보고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추측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상호 의사소통은 불가능한 처지다. 화성까지 구조팀이 올 때까지 몇 년을 홀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은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에서는 극적 효과를 위해 과학적으로는 틀린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중력이 지구의 38%에 불과한 화성인데도 무겁게 걷는 모습이나 날아가서 부딪히는 장면 등이 옥에 티로 지적된다. 주인공은 원래가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였다가 우주인으로 발탁됐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활용해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한다. 화성의 임시 기지에서 씨감자를 발견한 그는 스스로의 분비물을 이용해서 거름을 제조하는 순발력과 적응력으로 감자를 재배하는 데 성공한다. 물은 H2O인지라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키면 되니, 그는 수소를 연소시켜 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낸 식량과 물이 평생 갈 수는 없다. 그의 생존 가능 기간 내에 구조팀이 올 수 있도록 하려면 지구에 이런 상황을 알려야 한다. 그러던 차에 그는 1997년도에 화성탐사선으로 왔다가 임무를 마치고 폐기된 패스파인더 우주선을 기억해 낸다.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 있는 JPL(Jet Propulsion Lab)이 중심이 돼 진행됐던 패스파인더 프로젝트는 화성 표면에 착륙선과 탐사차량까지 보내는 프로젝트였다. 성공적으로 화성에 도착한 착륙선은 ‘칼 세이건 기지’라고 명명됐고 탐사차량은 ‘여행자(sojourner)’라고 불렸다. 칼 세이건 기지와 여행자는 화성의 지질과 기상에 대한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성공적으로 실험을 수행하고는 연료가 다 소진돼 연락이 끊겼다. 코넬대 천문학 교수였던 칼 세이건은 1980년대 우주에 대한 과학 다큐멘터리인 코스모스 시리즈를 만들어내서 과학을 대중의 영역으로 가져온 과학자인데 그의 이름이 화성에 등장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데이먼이 패스파인더를 찾아내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모습이 상세히 묘사된다. 결국 발견한 패스파인더에서 그가 찾아낸 것은 카메라였다. 파사데나 JPL과의 기초적인 통신이 가능한 이 카메라를 끄집어낸 데이먼은 환호하며 외친다. “16진법이 구출해줄 거야!(Hexadecimals to the rescue!)”. 16진법은 뭐고 그게 왜 화성에 홀로 고립된 그를 구출해줄 거라는 거지? 영화를 보면서 이 장면을 이해한 관객이 많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은 수학자의 노파심일까…. 10진법은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사용해서 모든 자연수를 표시하지만 16진법은 0부터 9까지의 보통 수에다 A, B, C, D, E, F까지 더해서 총 16개의 숫자를 사용 한다. A는 10이고 B는 11이다. 그러니까 16진법 수 2F는 2×16+15=47이라는 10진법 수가 된다. 그렇지만, 이런 16진법 수가 왜 화성에 고립된 우주인의 통신을 도와준다는 건지는 여전히 미궁이다. 이 장면이 나온 것은, JPL의 컨트롤 센터에서 화성 표면의 카메라를 원격으로 조종해서 여러 방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고안한 방법 탓이다. 먼저 모터가 부착된 카메라가 바라보는 360도 전 방향을 16등분한다. 그러고는 지구에서 16개 방위 중에 하나의 특정 방향으로 카메라가 향하도록 컨트롤해서 그 방향을 촬영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따라서 카메라가 16개 방향 중에 하나를 가리키면 그 방향을 지구에서 알 수 있다. 반대로 지구의 컨트롤 센터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화성의 카메라를 돌릴 수도 있다. 생존력 최강의 우주인 데이먼은 이 카메라 조절법을 가지고 16진법을 이용한 ASCII 통신을 지구와 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16진법도 어려운데 ASCII는 뭐지? 이쯤 되면 서서히 뒷목이 땅기기 시작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는 것은 때로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오해가 생기곤 하는데. 전기통신이 출현하기 전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뜻을 전달한다는 건 참 지난한 일이었다. 문자 발명 후의 인간은 시간 여유가 있는 경우라면 편지를 써서 인편으로 전했고 한 나라의 비상상황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기간통신망을 구축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목적으로 전국에 봉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역마를 운영했다. 국가 간에는 인편을 통한 연락에 의존해서 사신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인류가 19세기 전반에 전기신호를 사용해서 뜻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건 소통과 통신의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래서 나온 초기의 통신 방식이 모스부호(Morse code)인데, 의사소통은 결국 숫자의 교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발명이다. 글자를 숫자로 표현하고 이걸 2진법으로 고친 뒤에 딧(dit)이라고 불리는 짧은 전기신호와 다(dah)라고 불리는 긴 전기신호를 사용해서 2진법 숫자들을 전송하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다. 그래서 전하려는 뜻과 글은 숫자로 바뀌어 전기신호의 형태로 먼 곳까지 전달되고 다시 원래의 글로 해독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어 글자마다 해당되는 2진법 표기를 정해둔 변환표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국제 공용의 구조요청 신호인 SOS는 모스부호로 ‘딧딧딧 다다다 딧딧딧’이다. 그러니 말과 글은 모두 수이다. 영어의 모든 글자와 느낌표나 공백 등의 특수문자까지 숫자로 표현하려면 공통의 규칙이 필요하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게 미국 표준연구소에서 만들어서 오랫동안 쓰인 ASCII(American Standard Code for Information Interchange)코드다. ‘정보교환을 위한 미국표준부호’라는 뜻인데 그냥 아스키라고 읽고 쓰는 게 통상적이다. 요즘은 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들까지 숫자로 변환하기 위해 ASCII에 한 비트를 더한 UTF8이라는 게 표준이 됐다. 요즘은 한글로 쓰인 웹페이지도 대부분은 UTF8 인코딩 방식으로 디지털화한다. 마션에서 데이먼이 자신의 뜻을 16진법 수로 바꿀 때 바로 이 아스키 변환표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살아있다는 뜻의 ALIVE는 아스키코드로는 65 76 73 86 69라는 숫자로 표현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십진법으로는 이렇지만 이걸 16진법으로 바꾸면 41 4C 49 56 45가 된다. 십진법으로 76인 L을 16진법으로 바꾸려면 76=16×4+12임을 사용하면 된다. 즉 4C가 되는데, 패스파인더의 카메라를 4번 방향과 C번(즉 12번) 방향으로 향하면 L을 전달하는 게 된다. 어떤 문자라도 아스키코드의 16진법 수로 표현할 수 있으니 이제 이 가련한 우주인은 카메라를 돌려서 지구에 아무 문자든 전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긴 문장을 전달하려면 카메라를 아주 많이 돌려야 한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이쯤 되면 데이먼은 통신 문제 해결 장면에서 16진법이 구출해줄 거라고 환호하는 정도가 아니라 춤이라도 추었어야 했다. 그래서 어떤 수학자는 감독의 상상력 부족을 탓하며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결국 소통은 수의 교환이다. 이걸 깨닫고 나서 인류는 전기신호를 이용한 통신을 발명했다. 데이터 저장은 어떤가? 결국 데이터 저장도 뜻의 교환이니 소통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CD에 저장하고 10년 뒤에 꺼내 본다면 지금의 내가 10년 뒤의 나에게 보내는 통신인 것이다. 수나 문자를 2진법 숫자로 바꾸면, CD 표면에 레이저로 높낮이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기록할 수 있다. 하드 드라이브에는 자기장을 가지고 표기한다. 모든 뜻의 교환과 보관은 수를 통해 이뤄진다는 깨달음 후에 수를 다루는 기존 이론이 가미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밀보장도 되고 통신오류 발생에도 대응하는 방법이 나왔다. 전하고자 하는 수를 특정한 규칙에 의해 변형하면 암호화를 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숫자를 변형하면 자동으로 통신 과정의 오류를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이래서 현대 암호론과 코딩이론이 출현했다.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도 이런 방식으로 초보적인 암호 통신을 즐겨 사용했다. 예를 들어 ‘THIS’의 각 철자를 2자리만큼 미루면 ‘VJKU’가 돼서 다른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되는 것인데,요즘은 시저 암호라고 불린다. 물론 요즘 해커들에게는 통하지 않아서 더 이상 쓰이진 않고, 숫자를 변형하는 훨씬 복잡하고 현대적인 이론들이 광범위하게 쓰인다. 뜻의 교환이 수를 통해 이뤄진다는 깨달음은 통신의 혁신을 초래했다. 그래서 작은 깨달음은 큰 변화를 이끄는 단초가 된다고 했던가.(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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