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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파전

浮萍草 2016. 3. 31. 10:06
    진주·동래 등 경상도서 시작… 봄을 알리는 '미각의 전령사'
     햇살 따스해지면 미나리는 파릇파릇, 실파는 오동통해진다. 
    옛사람들은 이맘때인 삼짇날(음력 3월 3일)이면 푸른 새싹을 밟는 답청(踏靑)을 하며 봄을 만끽했다. 
    진달래로 화전을 해 먹기도 했고 파와 미나리로 파전을 지져 먹었다.
    기름진 음식이 거의 없던 한민족에게 기름에 채소나 고기를 지져 먹는 전(煎)은 지방을 보충할 수 있는 소중한 음식이었다. 
    전에 관한 기록은 17세기가 돼서야 등장한다. 
    파전은 1934년 발간된 '간편조선요리제법'에 '파초대'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고 파전여 옴파전,파지단,파적,옴파저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979년 서울에서 열린'팔도별미대잔치'에는 경상도의 명물로 파전이 소개되고 1981년 열린'국풍 81'이란 행사에는 동래파전이 등장한다.

    파전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동래파전은'숯불에 달군 철판에 반죽한 멥쌀가루를 떠놓고 그 위에 연한 미나리와 파를 얹어 꼭꼭 다진 후에 기장의 홍합과 석화, 쇠고기를 얹어 조금 익혀 다시 그 위에 멥쌀가루 반죽을 끼얹고 토종닭이 낳은 달걀을 부려 파전을 만들고 있다. 할머니가 40년 동안(1930년대부터) 만들어온 파전은 예부터 경상도 지방에서 전해온 것으로 진주를 으뜸으로 쳐왔으나 요즘은 동래가 그 맥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1973년 8월 1일 자 조선일보) 해산물을 이용한 전의 조리법은 19세기 말 쓰인 '시의전서'에 처음 등장한다. 1970년대 중반에는 영덕에서 게살로 만든 파전도 있었다. 경상도 음식인 파전이 서울 등에 대중화된 것은 1960년대 말 시작된 분식 장려 운동 덕분이었다. 명동이나 경희대 주변의 밀가루와 파, 돼지고기를 넣은 기름지고 두툼한 파전은 젊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파전이 대중화된 뒤에는 사시사철 먹는 음식이 되었지만 '파와 미나리가 파릇파릇 새싹이 돋을 때 감칠맛 나는 파전을 먼 곳에서 찾아온 반가운 친구에게 대접 하는 것이 세상 사는 낙'(1973년 8월 1일 자 조선일보)이었을 정도로 파전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미각의 전령사였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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