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한식의 탄생

[36] 숭늉

浮萍草 2016. 1. 20. 08:00
    따스하고 구수한 '조선茶'… 의학서에선 藥으로 쓰기도
    
    "백자기 대접에 담은 따끈따끈한 숭늉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면 영하의 추운 겨울날 몸이 솔솔 녹아가는 맛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이었다."(1976년 8월 29일 자 조선일보)
    한국인은 겨울은 물론 사시사철 구수한 숭늉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바닥에 있는 쌀은 갈변이 일어나면서 단맛과 구수한 향을 내는 누룽지가 된다. 
    여기에 물을 붓고 뜸을 들이면 숭늉이 만들어진다.
    한국의 부엌은 아궁이에 솥이 고정된 구조로 솥을 씻으려면 물을 부어 솥 바닥에 들러붙은 누룽지를 떼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숭늉이 만들어졌다고 짐작된다. 
    일본은 솥이 고정식이 아니고 중국에선 밥 지을 때 물을 풍부하게 넣었다가 끓으면 물을 퍼낸 뒤 뜸을 들였기 때문에 숭늉이 발달하지 않았다.
    숭늉은 숙수(熟水) 또는 숙랭(熟冷)이라고도 불렸다. 
    12세기 초 중국 송(宋)나라 손목(孫穆)이 지은 백과서인'계림유사(鷄林類事)'에 "숙수를 이근몰(익은 물)이라 한다(熟水曰泥根沒)"고 등장한다. 
    19세기 초 발간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도 숭늉을 숙수라고 했다. 
    숙랭은 조선 숙종 때 박두세(朴斗世)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단편산문'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1678)' 등의 문헌에 나온다. 
    이'숙랭'이'슉랭'을 거쳐 '숭늉'이 됐다는 게 언어학자들 공통된 견해다.
    '고려도경(高麗圖經)'(1123년)에는"고려의 관원과 존귀한 사람들이 숭늉을 제병(提甁·들고 다니는 물병)에 넣어 다닌다"고 적고 있다. 
    "식사 끝난 뒤 숭늉을 마시고 나서는 다시 반찬을 먹지 말라"(1795년 '청장관전서')에 나오는 것처럼 오래전부터 한민족은 식사의 마무리로 숭늉을 먹었다.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1489)''동의보감(東醫寶鑑·1610)'같은 의학서에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로 약으로도 많이 이용됐다.
    1970년대 이후 전기밥솥이 보급되면서 누룽지를 만들 수 없게 됐다. 
    게다가'커피에 빼앗긴 숭늉 맛'(1976년 4월 18일자 조선일보)이란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커피·홍차·주스·콜라 등 서양식 음료에 밀려 숭늉은 급속도로 우리 밥상
    에서 사라져 갔다. 
    "쌀뜨물은 누룽지와 같이 끄려 숭늉을 만드시면 커피보다도 더 맛있는 고소한 조선차가 됩니다."(1947년 10월 19일 자 경향신문) 
    구수하고 따스한 숭늉 한 그릇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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