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生活ㆍ科學ㆍ經濟

아름다운 순우리말

浮萍草 2016. 3. 6. 20:38
    나의 단미와 또바기 다솜을 꿈꾸며 …
    7일 대전 한남대에서 열린 ‘제11회 전국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글짓기 대회’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세종대왕의 그림과 한글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이날 모인
    외국인들은 제569회 한글날을 앞두고 그동안 갈고닦은 한국어 글쓰기와 말하기 솜씨를 겨뤘다. [뉴시스]
    ㆍ뭐라고 수군거려도 상주는강울음을 울지 않았다” ‘밤새도록 울다가 어느 초상이냐고 묻는다’는 속담이 있다. 초상집 분위기 때문에 밤새워 거짓 울음을 울었다는 이야기다. ‘강’은 접두어로 쓰일 때 ‘물기가 전혀 없는’ ‘억지’ 등의 뜻을 담고 있다. 물기가 없는 울음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강울음은 ‘억지 울음’,곧 ‘거짓 울음’을 뜻 한다. 비슷한 뜻으로 건성으로 우는 ‘건울음’이란 표현도 있다. ‘강’은 접두어로 쓸 때 ‘호된’ ‘그것만으로’ 등의 뜻을 지니기도 한다. 그 래서 눈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몹시 매운 추위를 ‘강추위’,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을 ‘강술’이라고 한다. ㆍ“신랑이 너무 취해서 꽃잠도 제대로 못 잤대”
    결혼한 신랑·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흔히 ‘첫날밤’이라고 한다. ‘꽃잠’은 바로 그 첫날밤의 옛말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처음으로 결실을 맺어 꽃을 피우는 그 순간을‘꽃잠’이라는 예쁜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꽃’이 ‘처음’의 뜻으로 쓰인 말은 꽃잠 말고도 많다. ‘맨 처음’을 표현할 때는‘꽃등’,빚어 담근 술이 익었을 때 첫 번째로 떠내는 맑은 술은‘꽃국’,곰국이나 설렁탕을 끓일 때 고기를 삶아내고 아직 맹물을 타지 않은 진한 국물은‘꽃물’이라고 한다. 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나비도 ‘잠’과 붙어 예쁜 우리말이 된다. 어린아이가 반듯이 누워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을 ‘나비잠’이라고 부른다.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며 두 팔을 벌리고 자는 아이의 모습이 흡사 한 마리의 나비 모습 같다는 데서 따왔다.
    ㆍ 이번에 온 비도 겨우 먼지잼하고 말았지, 뭐”
    요즘 전국이 가뭄 비상에 걸렸다. 지난주에 잠시 가을비가 찾아왔지만 가뭄을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처럼 메마른 땅에 먼지를 겨우 재워놓을 정도로 내리는 비를 ‘먼지잼’이라고 한다. 가뭄으로 애타는 농민들의 마음이 녹아 있는 말이다. 먼지잼의 ‘잼’은 ‘재우다’의 줄임말이다. 먼지잼 외에도 비를 표현하는 다양한 순우리말이 있다. 먼지잼과 반대로 모낼 무렵 한목 제대로 오는 비를 ‘목비’라고 한다. 농민들에게 가뭄철 제대로 된 단비가 돼주는 비다. 이 밖에도 여름에 내리는 비는 ‘잠비’, 가을에 내리는 비는 ‘떡비’라고 부른다. 한창 농사철인 여름에는 비를 핑계로 늘어지게 자고, 수확철인 가을에는 비가 내리면 내친김에 떡을 해 먹는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곰비임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곰비임비’는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연달아 계속 일어난다는 뜻을 담은 우리말이다. 예로부터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인 말이다. 우리말 연구가 박남일 선생이 쓴『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에 따르면 곰비임비는 정확한 어원이 밝혀진 말이 아니다. 다만 그 말의 느낌이 단순하고 예뻐서 백성들의 입에 익숙하게 오르내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곰비임비는 상호로도 인기가 많다. 일이나 손님이 끊이지 않고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는 상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ㆍ“ 연필이 또 어디로 갔지? 정말 김첨지감투네”
    조선시대 중추부의 정3품 무관의 벼슬이던 ‘첨지(僉知)’. 그러나 조선 후기로 들어서면서 첨지는 신분에 상관없이 나이 든 어르신에게 붙이는 흔한 호칭이 돼버렸다. 이 시기 돈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부정부패가 심해져 수많은 ‘첨지’가 생겨난 것이다. ‘거품 관직’이 심해지면서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벼슬의 가치가 땅 밑으로까지 떨어진 상황.정체 모를 김첨지가 어디 한둘일까. ‘김첨지감투’는 실제로 허울만 있지 내용은 없거나 이름만 있고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어떤 사물이 도깨비 장난같이 없어지길 잘하거나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경우에도 사용된다. 너나들이하는 사이일수록 서로 말조심하자고”
    홍상지 기자
    한 유행가 노래 가사에서 남자는 누나에게 ‘너라고 부를게’라고 선포한다. 이렇듯 누군가를 ‘너’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친밀한 사이라는 방증이다. 설령 아랫사람이라 할지라도 ‘너’라는 호칭을 함부로 쓰는 건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너’ ‘나’ 하고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바로 ‘너나들이’다. 형식적인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툼한 친구 사이다. 반면에 서로 겨우 낯을 아는 정도의 사이는 ‘풋낯’이라고 부른다. ‘처음 나온’ 또는 ‘덜 익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풋’이 얼굴의 ‘낯’과 결합해 아직 무르익지 않은 인간관계를 표현했다. ‘풋낯’인 사람들이 또 시간이 지나면 ‘너나들이’하는 사이가 되는 게 사람 사이의 재미 아닐까. ㆍ “천 리 길품을 팔아 왔건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길품’은 도로와 관련된 우리말 중에서도 한국 문화가 직접 반영돼 있는 말이다. 원래 길품은 남이 갈 길을 대신 가 주고 삯을 받는 일을 가리킨다. 춘향의 편지를 갖고 한양의 이 도령을 찾아가던 방자가 바로 길품을 판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 보람도 없이 헛길만 가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길품을 들인다’고도 하는데 이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일부러 노력을 들여 가는 경우를 뜻한다. 비슷한 말로 ‘발품 팔다’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는 교통·통신이 발달한 요즈음에 생겨난 말이다. 길품을 팔다 보면 때로는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길을 만나기도 하고 반대로 빙 둘러 가기도 한다. 이때 가장 가까운 방향으로 질러가는 길을 ‘지름길’이라고 한다면 빙 둘러 가는 길이나 우회로를 일컬어 ‘에움길’이라고 한다. 같은 말로 ‘두름길’이라고도 한다. 에움은 ‘둘레를 빙 둘러싸다’의 뜻인 동사 ‘에우다’에서 나왔다.
      홍상지 중앙일보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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