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文化財사랑

성곽도 지키고 마을도 살리고 장수마을에서 시작된 성곽마을 재생사업

浮萍草 2016. 1. 22. 22:59
    문화를 짓다
    문화재는 원형 그대로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물건이 아닌 건믈이나 마을 또는 도시 문화재의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더욱이 문화재 안이나 가까이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문화재 자체를 지키는 일과 문화재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 들의 삶을 돌보는 일을 함께 챙겨야 한다.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거나 뭔가의 용도로 사용중인 근대건축물이 그렇고 세계유산 등재를 앞둔 서울 한양도성과 인근 성곽마을의 경우도다르지 않다.

    ㆍ세계유산제도와 5C 울 한양도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막바지다. 2016년 초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면 현장 실사를 포함한 심사가 연말까지 진행되고 2017년에는 등재여부가 발표될 예정이다. 서울 한양도성이 그 가치를 세계인들이 함께 인정하고 함께 보호하는 세계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째는 세계유산 등재요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는 것이고 둘째는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관리계획(Protection and Management Plan)이 마련되어 있음을 입증 받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유산이 위치한 지역의 주민과 시민들이 유산의 가치를 인식하고 정부와 함께 유산을 지키고 돌보는 일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지 여부다. 세계유산제도는 1972년에 ‘세계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을 채택하면서 시작되었다. 30주년을 맞았던 2002년에 세계유산위원회는 부다페스트 선언을 발표하면서 네 가지 전략목표 <4C>를 제시하였다. 알파벳 C로 시작되는 네 개의 단어를 뜻하는 <4C>는 세계유산목록에 대한 신뢰(Credibility)를 높이고 세계유산의 효과적 보전(Conservation)을 보장하며 세계유산협약 체약국의 역량을 키우고(Capacity- building), 소통(Communication)을 통해 세계유산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참여 및 지지를 높이는 것을 뜻한다. 2007년에는 여기에 지역사회(Community)가 더해져 다섯가지 전략목표 즉 <5C>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현재 세계유산제도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이자 방향이다. 네 가지 전략목표에 하나를 더 추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세계유산의 보호·관리에 있어서 정부나 전문기관의 역할에 더해 지역사회의 역할을 강화하고,유산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유산이 위치한 마을이나 도시의 주민공동체가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산과 주민의 삶을 함께 보호하고 지속 가능하게 하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고 주민참여와 시민참여 그리고 협치(governance)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ㆍ한양도성을 쌓은 이유
    서울 한양도성은 조선왕조(1392~1910) 수도 한양을 둘러싼 도시성곽이다. 백악,낙산,목멱,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한양도성은 500여 년 동안 수도의 경계로서 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였고 조선왕조 도읍지로서의 위엄을 드러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 그리고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 과정을 겪으며 1천만 인구의 거대도시로 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18.6㎞의 성곽 가운데 1 4.1㎞가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매우 특별하고 귀한 도시유산이다. 그렇다면 왜 한양도성을 쌓았을까? 종묘사직이나 왕궁,관아 같은 공공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민가와 안전을 지켜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양도성은 산지와 구릉지와 평지를 오르내리며 이어진다. 산지에 쌓은 성곽은 대부분 원형 그대로 남아 있지만 평지의 성곽들은 도시화 과정에서 헐리고 훼손되어 시가지로 변모하였다. 구릉지에 위치한 성곽의 안팎은 예나 지금이나 주거지와 마을이 많다. 성곽 가까이 위치한 백성들의 민가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조선시대에도 각별했다. 숭례문을 고칠 때 성문 둘레에 옹성을 쌓자는 동부승지 채수(蔡壽)의 건의에 성종은 “옹성을 쌓게 되면 마땅히 민가를 헐어야 하니 빈궁한 자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도적이 이 문에 이른다면 나라가 나라의 구실을 못할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니 쌓지 말게 하라”고 답했다고 한다(성종실록 100권,1479년 1월 17일).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한양도성의 보호와 관리에 있어서 한양도성 자체의 보호와 함께 백성들의 삶과 삶터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ㆍ장수마을에서 시작된 성곽마을 재생사업
    성곽 안팎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을 보호하고 돌보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에는 성곽의 보전만이 중시되었다. 성곽을 드러내기 위해 성곽 주변 마을을 철거하기도 하였다. 성곽 가까운 마을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구역으로 지정되어 한꺼번에 철거된 뒤 아파트단지로 개발되어 주민공동체가 붕괴되는 경우도 많았다. 한양도성 안팎에 위치한 성곽마을 가운데 재개발이 아닌 재생 방식으로 주민의 삶과 마을환경을 개선하는 시범사업이 처음 시작된 곳은 성북구 장수마을이다. 장수마을은 타락산(낙산)의 동쪽 경사지에 있다. 행정구역은 성북구 삼선동이고 2004년에 주택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삼선4구역>으로 불렸다. 재개발 예정구역이지만 위에는 성곽이 있고 아래에는 문화재인 삼군부 총무당이 있어 재개발이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2008년부터 마을활동가와 주민들이 함께 <대안개발연구모임>을 만들었고, 원주민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재개발이 아닌 주민이 재정착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 마을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10년에는 마을에 동네미술관을 열었고 골목길 정비사업도 이루어졌다. 2011년에는 집수리를 위한 마을기업 <동네목수>를 설립한 뒤 여러 채의 집들을 고쳤다. 빈집을 고쳐 세입자를 들였고 방치된 쓰레기장을 마을쉼터로 되살렸다. 골목길 곳곳에 평상을 만들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였다. 2012년부터 장수마을 종합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여 2013년에 완료하였고,종합계획에 따라 마을환경 개선사업들이 하나씩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마을에 도시가스가 들어왔고, 골목길들이 정비되었으며 30채 가까운 집들이 서울시의 비용 지원을 받아 수리됐다. 마을사랑방을 겸한 마을박물관과 빈집을 고쳐 만든 동네카페도 문을 열었다. 마을기업 <동네목수>의 집수리 활동도 늘고 있고<할멈솜씨>라는 브랜드로 수제 잼과 유자청과 감식초 같은 상품들이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다. 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수익사업도 다양해지고 있다. 장수마을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었고 마을해설사로 변신한 주민들이 유료로 마을소개와 안내를 해주고 있다. 장수마을에서 시작된 성곽마을 재생사업은 이제 성곽마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양도성을 쌓은 이유가 백성들을 지키기위함이었다면 그 정신은 지금도 이어져야 한다.


          글‧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 사진‧서울특별시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