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환경생태 물바람숲

자연보존협회 총재 박근혜의 빚

浮萍草 2016. 1. 20. 12:32
    실천보다 말 잔치 그친 고도성장기 환경정책, 협치 깬 MB 이어 박 정부 70년대 회귀
    관 주도 자연보호운동, 쓰레기 줍고 외래어종 풀고…가리왕산, 설악산 파괴로 이어져
    박근혜 대통령이 1977년 3월25일 인천 경인체육관에서 열린‘새마음갖기 국민운동 지방대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대통령은
    “곳곳마다 새마을, 사람마다 새마음”이라는 구호 아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본뜬 새마음운동을 전개했다.자연보호운동은 새마음운동의 일환
    이었다. 사진=연합뉴스
    1952년 3천명의 조기 사망자를 낸 ‘런던 스모그’에 충격을 받은 선진국은 발 빠르게 대책에 나섰다. 영국은 1956년, 미국은 1963년 청정대기법을 만들었고, 일본은 1968년 대기오염방지법을 마련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1963년 대기·수질오염과 소음을 규제할 공해방지법을 공포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겨울철 연탄가스 중독이 산발적으로 문제가 됐을 뿐 이렇다 할 오염물질 배출시설조차 없던 때였다. 이 법은 경제부처의 반대로 국무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직권으로 통과시켰다. 공해 문제를 걱정해서 이 법을 만든 건 아니었다. 법만 만들었지 법을 집행할 전담부서도,예산도,시행령도 없었다. “경제성장 정책이 추진되는 기간에 산업화의 부정적 측면을 감추기 위한 방편에 불과”(김광임,<한국의 환경 50년사>)했다는 평가가 옳아 보인다. 문민정부 출범 전까지 우리나라 환경정책은 늘 실천보다 그럴듯한 말과 포장이 앞섰다. 문제를 막기보다 덮는 데 급급했다. 공해방지법을 대신해 1977년 제정된 환경보전법에는 환경권,오염예방 원칙,미래 세대 고려,환경영향평가제도 등 선진 조항이 그득했다. 그렇지만 울산·온산·여천·광양 등 중화학공단 주변에 살던 농민과 어민은 공해로 인한 괴질에 시달렸고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고향에서 집단으로 쫓겨나는 고통을 당했다.
    1970년대 울산 삼산평야 쪽에서 본 울산공단의 모습. 유독가스로 인해 벼가 타들어가는 등 공해피해가 잇따랐다.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자연보호도 관 주도였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자연보호 범국민운동을 제창하고 청와대부터 전국의 통·반에 이르기까지 자연보호회를 조직했다. 그해 열린 자연보호 범국민운동 궐기대회에는 2만4천여개의 자연보호회와 131만여명의 국민이 참여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듬해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자연보호헌장을 선포하고 그 내용을 교과서에 싣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 기념비도 세우도록 했다. 이처럼 자연보호 목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지만 쓰레기 줍기 행사만 요란했지 고도성장 과정에서 마구잡이 개발로 자연이 망가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1974년 6월13일치 <경향신문>에 실린 자연보호운동 기사. 육영수 여사가 비단잉어, 은연어 등 담수어를 소양댐에 방류하는 사진을 싣고 있다.

    오히려 두고두고 문제가 된 생태계 파괴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보전 학술단체이던 한국자연보존협회 총재로 추대된 뒤 소양호,팔당호 등에 외래어종을 풀어놓는 행사를 벌였다. 1976년 취임한 2대 박근혜 총재도 이 사업을 이어받았다. 당시 수산청이 주도한 외래어종 방류 사업으로 풀려나간 큰입배스,블루길 등은 토종 어류를 몰아내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주역으로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다.
    1970년대 정부가 방류를 시작한 대표적인 유해 외래어종인 큰입배스. 블루길과 함께 전국 대부분의 호수와 강에 퍼져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환경정책이 관 주도에서 벗어난 건 1990년대 들어서부터였다. 과학에 기초를 두고 시민과 기업을 동반자로 행정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기반인 과학적 정당성을 허물었고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부정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완전히 1970년대 관치로 돌아선 느낌이다.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인 가리왕산의 500년 원시림에 평창겨울올림픽 활강 경기장이 건설되고 있다. 오늘 개장되는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에서는 다음달 6~7일 첫번째 실험 행사로 알파인스키 월드컵대회가 열린다. 원시림을 뚫고 조성된 슬로프를 스키어가 활강하는 믿기지 않는 모습을 세계인이 소치 겨울올림픽에 이어 목격할 것이다.
    다음달 실험행사를 앞두고 지난해 28일 가리왕산 활강 경기장에서 인공눈을 만드는 모습. 사진=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설악산 케이블카도 박 대통령의 관심과 지시로 환경훼손 여부를 따지고 대안을 마련하는 정상적인 절차는 껍데기가 되고 있다. 강원도는 올 상반기까지 환경영향평가 등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고 평창올림픽 이전에 준공할 계획이다. 이에 맞서 박그림 녹색연합 대표가 강원도청 앞에서 93일째 농성을 이어가는 등 시민사회의 반발과 소송이 잇따르지만 듣는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 첫 자연보전 단체의 총재를 역임했던 박 대통령은 선친이 직접 읽은 자연보호헌장의 실천 요강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엔 개발 광풍을 막는 데 아무런 기여도 못한 헌장이지만,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을 두고 쓰인 것 같은 말이 들어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적,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연자원은 인류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개발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히 추진되어야 하며, 자연의 보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