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보다 말 잔치 그친 고도성장기 환경정책, 협치 깬 MB 이어 박 정부 70년대 회귀
관 주도 자연보호운동, 쓰레기 줍고 외래어종 풀고…가리왕산, 설악산 파괴로 이어져
| ▲ 박근혜 대통령이 1977년 3월25일 인천 경인체육관에서 열린‘새마음갖기 국민운동 지방대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대통령은 “곳곳마다 새마을, 사람마다 새마음”이라는 구호 아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을 본뜬 새마음운동을 전개했다.자연보호운동은 새마음운동의 일환 이었다. 사진=연합뉴스 |
1952년 3천명의 조기 사망자를 낸 ‘런던 스모그’에 충격을 받은 선진국은 발 빠르게 대책에 나섰다.
영국은 1956년, 미국은 1963년 청정대기법을 만들었고, 일본은 1968년 대기오염방지법을 마련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1963년 대기·수질오염과 소음을 규제할 공해방지법을 공포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겨울철 연탄가스 중독이 산발적으로 문제가 됐을 뿐 이렇다 할 오염물질 배출시설조차 없던 때였다.
이 법은 경제부처의 반대로 국무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직권으로 통과시켰다. 공해 문제를 걱정해서 이 법을 만든 건
아니었다.
법만 만들었지 법을 집행할 전담부서도,예산도,시행령도 없었다.
“경제성장 정책이 추진되는 기간에 산업화의 부정적 측면을 감추기 위한 방편에 불과”(김광임,<한국의 환경 50년사>)했다는 평가가 옳아 보인다.
문민정부 출범 전까지 우리나라 환경정책은 늘 실천보다 그럴듯한 말과 포장이 앞섰다.
문제를 막기보다 덮는 데 급급했다.
공해방지법을 대신해 1977년 제정된 환경보전법에는 환경권,오염예방 원칙,미래 세대 고려,환경영향평가제도 등 선진 조항이 그득했다.
그렇지만 울산·온산·여천·광양 등 중화학공단 주변에 살던 농민과 어민은 공해로 인한 괴질에 시달렸고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고향에서 집단으로 쫓겨나는 고통을
당했다.
| ▲ 1970년대 울산 삼산평야 쪽에서 본 울산공단의 모습. 유독가스로 인해 벼가 타들어가는 등 공해피해가 잇따랐다.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
자연보호도 관 주도였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자연보호 범국민운동을 제창하고 청와대부터 전국의 통·반에 이르기까지 자연보호회를 조직했다.
그해 열린 자연보호 범국민운동 궐기대회에는 2만4천여개의 자연보호회와 131만여명의 국민이 참여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듬해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자연보호헌장을 선포하고 그 내용을 교과서에 싣는가 하면 전국 곳곳에 기념비도 세우도록 했다.
이처럼 자연보호 목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지만 쓰레기 줍기 행사만 요란했지 고도성장 과정에서 마구잡이 개발로 자연이 망가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 ▲ 1974년 6월13일치 <경향신문>에 실린 자연보호운동 기사. 육영수 여사가 비단잉어, 은연어 등 담수어를 소양댐에 방류하는 사진을 싣고 있다. |
오히려 두고두고 문제가 된 생태계 파괴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보전 학술단체이던 한국자연보존협회 총재로 추대된 뒤 소양호,팔당호 등에 외래어종을 풀어놓는 행사를 벌였다.
1976년 취임한 2대 박근혜 총재도 이 사업을 이어받았다.
당시 수산청이 주도한 외래어종 방류 사업으로 풀려나간 큰입배스,블루길 등은 토종 어류를 몰아내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주역으로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다.
| ▲ 1970년대 정부가 방류를 시작한 대표적인 유해 외래어종인 큰입배스. 블루길과 함께 전국 대부분의 호수와 강에 퍼져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
환경정책이 관 주도에서 벗어난 건 1990년대 들어서부터였다.
과학에 기초를 두고 시민과 기업을 동반자로 행정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기반인 과학적 정당성을 허물었고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부정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완전히 1970년대 관치로 돌아선 느낌이다.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인 가리왕산의 500년 원시림에 평창겨울올림픽 활강 경기장이 건설되고 있다.
오늘 개장되는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에서는 다음달 6~7일 첫번째 실험 행사로 알파인스키 월드컵대회가 열린다.
원시림을 뚫고 조성된 슬로프를 스키어가 활강하는 믿기지 않는 모습을 세계인이 소치 겨울올림픽에 이어 목격할 것이다.
| ▲ 다음달 실험행사를 앞두고 지난해 28일 가리왕산 활강 경기장에서 인공눈을 만드는 모습. 사진=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
설악산 케이블카도 박 대통령의 관심과 지시로 환경훼손 여부를 따지고 대안을 마련하는 정상적인 절차는 껍데기가 되고 있다.
강원도는 올 상반기까지 환경영향평가 등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고 평창올림픽 이전에 준공할 계획이다.
이에 맞서 박그림 녹색연합 대표가 강원도청 앞에서 93일째 농성을 이어가는 등 시민사회의 반발과 소송이 잇따르지만 듣는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 첫 자연보전 단체의 총재를 역임했던 박 대통령은 선친이 직접 읽은 자연보호헌장의 실천 요강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엔 개발 광풍을 막는 데 아무런 기여도 못한 헌장이지만,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을 두고 쓰인 것 같은 말이 들어 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적,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연자원은 인류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개발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히 추진되어야 하며, 자연의 보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 ☜ ■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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