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생로병사

'복거일 말기 癌'이 인생에 던지는 메시지

浮萍草 2016. 1. 17. 12:00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난 2014년 초,소설가 복거일은 깜짝 놀랄 뉴스를 조선일보 인터뷰에 내놨다. 2년 반 전에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항암 치료를 거부했다고 했다. 암세포가 전이(轉移)돼 치료받기엔 좀 늦은 상태였다고 전했다. 그날 이후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도 했다. 암에 걸린 선배 소설가들이 항암 치료를 받느라 글을 쓰지 못하다가 끝내 세상을 뜨는 경우를 자주 봤기에 그는 글을 쓰고 싶어서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월이 2년 더 흘렀다. 그사이 그는 항암 치료를 마다하며,쓰고 싶었던 과학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를 완성했다. 죽음 앞에서 마무리한 삶의 '필작(必作)'이다. 나는 학창시절 그의 첫 소설'비명을 찾아서'를 읽고,상상 속의 역사 인물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소설은 우리나라가 아직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가정하에 쓴 대체 역사소설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멀쩡한 직장을 다니다 장래가 불투명한 소설가로 나선 그의 용기는 나의 삶에 큰 영감을 주었다.
    4년 반 전 "말기암" 밝힌 복거일, 일흔에도 여전히 왕성한 필력 CT로 보면 꼭 암처럼 생긴 것이 양성 종양으로 밝혀지는 경우 있어
    그럼 복거일의 '말기 암'은 어떻게 된 일인가. 의학계에서 말기 암은 암이 퍼져서 현재의 치료법으로 완치를 기대할 수 없고 잔여 생명이 3~6개월 정도 남은 상태를 말한다. 그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지는 4년 반이 지났다. 일흔이 된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왕성한 필력을 보이고 있다. 의학적으로 말기 암이라는 설정은 빗나간 셈이다. 복거일의 여러 언론 인터뷰, 조직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본인의 짤막한 진술, 의료 전문가의 분석 등을 조각 맞추면 추측은 이렇다. 4년여 전 그의 간에는 큰 종양 덩어리가 있었다. 게다가 폐에도 별도의 종양 덩어리가 보였다. 이런 경우 대부분 간암이 폐로 전이된 말기 암 상태로 본다. 아마 복거일씨도 의사로부터 그렇게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의사들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먼저 말한다. 그러면서 의사는 "정확하게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지 싶다. 하지만 이미 충격에 빠진 환자 복거일에게 그다음 멘트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죽기 전에 책의 완성을 먼저 떠올린 것을 보면 그는 '환자' 이전에 소설가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CT나 MRI에서 꼭 암처럼 생긴 것이 나중에 조직검사에서 양성 종양으로 나오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그렇게 검사 결과가 나오면 환자도 의사도 행복하다. 죽다 살아난 기쁨은 배가 된다. 어찌 됐건 복거일의 '말기 암'도 이런 사례라고 추측된다. 다시 검사를 해보면 치료받지 않은 양성 종양이 그대로 있거나 조금 커져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암(癌)인 양 모양새를 하고서. 또 다른 추측은 실제 암이 있었고 치료하지 않았는데도 줄어드는 경우다. 기적 같은 경우지만 매우 진귀하게 일어난다. 전 세계적으로 1000여건이 논문으로 보고돼 있다. 주로 태아 단계에 있던 원시 신경이나 태반 계통에서 유래한 암이거나,피부 흑색종 등에서 일어난다. 암세포가 왜 스스로 자살을 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암 덩어리가 저절로 줄어들었다고 해서 모두 완치된 것은 아니나,생존 기간은 늘어난다. 복거일 사례는 둘 중 하나로 보인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집필 선택한 작가의 치열함에 고개 숙여져
    인터넷에 보면 말기 암 환자의 완치 얘기들이 떠돈다. 때론 일부 병원이 이런 환자들을 내세워 병원 선전에 써먹는다. 어떤 환자는 신앙 간증처럼 투병 간증을 하고는 특정 제품이나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 덕을 봤다고 말한다. 그것에 암 환자들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도 다소 허구와 과장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암 환자의 병세가 좋아진 경우 상당수는 특정 치료만 받은 게 아니라 수술이나 항암제,방사선 치료 등 현대의학 치료를 병행했다. 그 이야기는 안 하고, 자신이 택한 특이한 치료법만 강조하는 식이다. 대부분 환자의 진술에 의존한 것이기에 실제 말기였는지도 불분명하고,치료 과정을 입증할 자료도 부실하다. 암 치료의 효과는 과학적 절차의 임상시험에서만 입증된다. 같은 암,비슷한 병기의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서 새로운 치료법을 사용한 쪽과 아닌 쪽을 비교해 생존율이 눈에 띄게 길어진 경우에만 인정받는다. 그런 대조군 비교 임상시험으로 입증된 것 외에는 모두 설익었거나,절묘한 우연이거나,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보면 된다. 다시 복거일을 돌아보자. 그게 말기 암이 아니면 어떻고,기면 어떠하리. 그는 분명히 말기 암으로 여겼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치료 대신 집필을 선택했다. 당시 광범위한 수술로 종양 덩어리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도 그의 선택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반드시 완성해야 할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는가. 복거일이 보여준 업(業)의 치열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저승엔 못 간다고 전할 그 무엇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 하지 싶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의사 doctor@chosun.com / 이철원 일러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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