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2 신경건축학의 세계

浮萍草 2015. 12. 12. 07:30
    그 아이디어는 천장이 높은 곳에서 떠올랐다
    미국의 바이러스학자 조너스 소크 박사는“연구실에서 떠오르지 않던 소아마비 백신 아이디어가 천장이 높은 13세기 수도원 성당 안에서 불현듯 떠올랐다”고
    말했고 이는 미네소타대의‘창의성과 천장 연구’실험으로 이어졌다.1776년 지어진 오스트리아 아드몬트의 ‘아드몬트 수도원 도서관’ 실내 모습.
    조지 로얀(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2006년 10월,전세계에게 가장 큰 학회인 미국신경과학회에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기조강연을 한다는 소식에 신경과학자들은 들떠 있었다. 강연 제목은 ‘신경과학과 건축’.아니,신경과학이 건축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은 ‘신경건축학’이라는 분야가 있는 줄도 몰랐다. 신경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축제에서 건축 분야의 슈퍼스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10월14일에 있었던 그날의 강연은 지난 20년간 미국신경과학회에서 들어본 것 중 최악의 기조강연이었다. 그 전해의 달라이 라마 강연과 비교하자면 더욱 그랬다. 자리를 가득 메운 2만명이 넘는 신경과학자들은 한시간 내내 프랭크 게리의 잘난 척을 들어야만 했다. 그는 어눌한 목소리로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창작 과정에서 예술적 직관을 강조했고 마지막에 그런 자신의 마음과 뇌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로 마무리했다. 건축공간 안에서 생활할 사람들의 뇌가 아니라 창작자인 자신의 뇌 말이다! 이 강연은 ‘건축가들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여실히 드러내는 광경을 제공하는 데 그쳤다. 9년이 지난 지금도 건축계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ㆍ치매환자에게 부적절한 복도형 요양시설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노인 요양시설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알츠하이머 치매 증세를 앓고 있는 환자들은 공간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기숙사처럼 생긴 복도형 시설에서는 자신의 방을 찾아들어가는 것도 힘든 과제다. 자신의 방도 제대로 못 찾아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을까봐,어르신들은 방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복도형 요양시설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부적절한 공간이다. 파킨슨 환자들은 손떨림이 심해 복도의 손잡이를 잡기가 매우 불편하다. 중심과 균형을 잡기 어려운 노인들은 낙상으로 인해 골절 같은 심각한 사고를 당할 수 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오기도 불편하고,화장실에서 앉았다가 일어나기도 힘들다. 하지만 노인요양원을 짓는 건축가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건물에 어떤 증세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살게 될지 그들을 위한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지 이해가 부족하다. 왜 한국에 있는 모든 학교 교실들은 다 똑같이 생겼을까? 사각형으로 생긴 교실의 맨 앞엔 커다란 칠판이 붙어 있고,그 뒤로 책상들과 의자들이 차례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렇게 생긴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면 집중이 잘되고 학습 효율이 높아지는 걸까?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교실에서 학생들이 대여섯명씩 둘러앉아 공부하면 수업 효율은 과연 어떻게 될까? 선생님이 교실 한가운데서 가르치고 칠판 색깔이 파란색이라면 학생들이 집중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0세기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제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건축 분야에서 이런 식의 질문은 매우 중요한 이슈지만,그 해답은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이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 과정에 대한 관찰이 불가능한 건축가들에게 이런 질문은 부질없는 짓이었고,건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다. 공간과 건축은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건축가들은 그저 자신의 예술가적 직관과 영감으로 그리고 오랜 경험과 관행으로 지금까지 건물을 설계 하고 디자인을 해왔다.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신경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신경건축학회’(Academy of Neuroscience for Architecture)가 발족하면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됐다.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인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이 탄생한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인공 건축물 안에서 생활하는 오늘날,신경건축학 분야만큼 중요한 분야도 드물다. 집에서 자고,학교에서 공부하고,직장에서 일하며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인간들의 사고가 공간으로부터 어떻게 지배받는가를 알아야 건축가들도 적절한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그동안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다행히 이제는 휴대용 뇌파측정기가 간편하면서도 정확하게 대뇌활동을 측정할 수 있어,건축과 디자인,환경 등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할 수 있게 됐다. 신경건축학은 인간의 인지사고 과정이 공간에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에 기반을 두고 그 인지적 영향이 측정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전제하는 학문이다. 이 가설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공간과 건축물이 당연히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것이 과연 측정 가능한 수준의 변화를 유발할 것인가? 수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라면 뇌파 장치나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다고 해서 측정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크게 주목받았던 환경심리학은 환경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그들은 뇌활동을 측정하진 않았지만,건축가들에게 공간을 사용하는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통찰을 제공해왔다. 공원의 벤치와 그림자 위치에 따라 사람들이 공원에서 휴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놀이터에서 엄마들이 쉬는 공간을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노는 방식이 달라진다. 신경건축학은 환경심리학이 그동안 탐구해온 주제들을 뇌활동까지 측정함으로써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 총체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가들은 신경과학을 통해 공간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마도 소크연구소에서 비롯된 ‘창의성과 천장 연구’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미국의 바이러스학자 조너스 소크 박사는 그 공로로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근처 라호이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생명과학 연구소를 짓게 됐다. 당시 최고 건축가인 펜실베이니아대 건축학과 루이스 칸 교수에게 건물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는 칸 교수에게 “수년간 씨름하던 소아마비 백신 아이디어가 연구실에서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천장이 높은 13세기 수도원 성당 안에서 불현듯 떠올랐다”며 “천장이 높은 곳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연구소는 천장이 높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공간기억력 떨어진 치매 환자 손떨림이 심한 파킨슨병 환자 이들 위한 건축은 어떠해야 하나 공간이 인간 사고·행동에 끼치는 영향 연구하는 신경건축학의 세계 대부분 건물 실내 천장 높이 2.4m 소크 연구소는 지을 때 3m 설계 노벨상 수상자 5명 배출한 이곳의 미신은 ‘다른 데보다 높은 천장’ 실제 실험결과 사실로 밝혀지기도
      ㆍ건축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의 협업 필요
    그 덕분에 우리는 아일랜드 키친(싱크대,레인지대 등을 중앙에 두어 네 방향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처럼 부엌일을 하는 동안 거실과 소통을 하게 하면 사람들의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나고 가정의 화목 지수가 높아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모서리가 둥근 경우 긴장감이 줄어들고 따뜻한 색깔의 인테리어를 사용할 경우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자연 친화 가설’(Biophilia Hypothesis)이라고 해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나무나 물과 같은 자연물과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하고 행복감을 느낀다는 가설도 제기돼 인공건축물에 자연물이 혼합된 친환경적인 건축이 ‘행복의 건축’으로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치매 환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에는 포커게임 테이블이나 오락기계를 놓기보다 운동시설을 배치하는 것이 인지기능 발달에 효과적이다. 물론 환자가 물건을 둔 장소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에 침대 가까운 곳에 물건을 모을 수 있도록 방을 설계하는 일도 중요하다. 방문에는 그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붙여놓아야 그들이 쉽게 자신의 방을 찾을 수 있다. 신경건축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치매 요양원에는 박물관을 연상시킬 만큼 그들의 어린 시절 물건들을 거실에 진열해놓으라고 권한다. 그들의 기억을 환기시킬 것이며, 대화에서 어휘수를 현저히 늘릴 것이다. 아이들을 보육하는 어린이집에는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공간의 빛깔이 달라지고 안전하게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은 공간이 마련되어야 맛과 향기로 아이들을 자극할 수 있다. 두세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있어야,그 안에서 또래친구들과 긴밀한 관계 맺기가 늘어난다. 신경건축학자들은 경험과 직관,관습으로 축적돼온 건축학적 전통이 실제로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면 좀더 유용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또 건축학이 좀더‘증거 중심의 학문’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직관이나 관행에만 의존하지 말고 근거를 가지고 설계를 하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신경건축학연구회가 설립된 지 5년이 됐다. 매달 셋째 토요일에 모여 신경건축학 관련 논문을 읽고 어떻게 건축에 적용할까를 논의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처음 제안할 때만 해도 40명 안팎이었던 회원수는 이제 150명이 넘었다. 그들 대부분이 건축가라는 사실은 희망이면서 한계다. 앞으로 신경건축학이 건축학의 한 분야로 신경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건축가와 신경과학자들의 긴밀한 협업이, 이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실제 건축 적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건축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경건축학은 ‘나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하고 창의적이며 안식을 얻는가’를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역세권이나 학군, 투자 가치만으로 집과 건물을 바라보지 말고 공간 속에 놓인 내 안을 들여다보라고 말이다. 신경건축학은 그 역사가 10년밖에 안 된, 앞으로 갈 길이 먼 ‘도전적인 분야’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경계에선 꽃이 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경과학과 건축학이 만난 신경건축학이 ‘행복한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고,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설계를 하고,경험이나 직관이 아닌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벽돌을 올리는 건축학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정재승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