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조훈철의 문화재 이야기

12 집 앞에 문필봉이 있으면 큰 학자가 나온다는데...

浮萍草 2015. 11. 28. 07:30
    수 용어에 안산(案山), 조산(朝山)이란 단어가 있다. 
    마을 앞에 있는 조그마한 산봉우리를 책상에 비유하여 안산(案山), 안산보다 좀 더 멀리 있는 산은 조산(朝山)이라 부른다. 
    이들은 마을을 향하여 직접 기(氣)를 발산하기 때문에 인물배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풍수적인 시각이다.
    ‘문필봉’은 풍수용어로 산봉우리가 붓을 닮은 뾰족한 삼각형 봉우리에 붙인 이름이다. 
    풍수가들은 문필봉이 정면에 있으면 공부 잘하는 학자가 많이 배출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봉우리가 붓 모양이고 붓은 문(文)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필봉이 안산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서 장기간 거주하면 그 기운을 받아 사람도 역시 문필가나 학자가 된다고 믿는 것이 풍수와 관련된 환경심리
    학이다.
    주위의 산세가 그 곳에 거주하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그것은 굳이 풍수를 들이대지 않고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19세기 미국작가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년이 큰 바위 얼굴과 서로 감응하여 나중에 위대한 현인이 되는 것처럼,붓 모양의 
    봉우리가 있는 마을에서도 언젠가 그와 같은 위대한 현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풍수적 해석이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혼인을 통해 지난 500년 이상을 지켜온 한국의 대표적인 역사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중요한 점은 우리의 뇌리에서 미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풍수가 양동마을을 통해 당당히 세계인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세계인들은 마을 입지를 선정할 때 전통적인 풍수의 원칙을 잘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풍수가 건축물 배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과 이로 인해 풍수가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경주 양동마을 ‘향단’에서 본 안산 성주봉(왼쪽)과 '관가정'에서 본 안산 성주봉. /조훈철

    풍수적으로 볼 때 양동마을의 입지는 설창산의 주봉 문장봉에서 출발한다. 이곳에서 뻗어 나온 4개의 지맥과 지맥사이에 이룬 골짜기가 물(勿)자 형국을 이루고 있는데,이 능선의 끝자락에 의지하여 차례로 서백당,무첨당,향단,관가정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네 가옥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귀중한 고택이다. 배치상 또한 특이한 점은 이들 건물들의 사랑채나 대문,혹은 마당의 좌향이 가옥 전면에 위치한 문필봉의 형태를 갖춘 성주봉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배치는 우리 건축이 가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 지역을 답사할 기회가 있으면 위에서 언급한 가옥을 방문해서 사랑채 혹은 앞마당에 서서 전면을 살펴보라. 예외 없이 양동마을 안산격인 성주봉이 여러분을 맞이해 줄 것이다.
           조훈철 前 동국대학교박물관 선임연구원 agora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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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가 과거시험을 볼 때 금강산에 들러 기도한 이유
    곳 풍수와 학자 배출과의 상관관계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고택은 ‘서백당(書百堂)’이다. 
    이 곳은 1454년(성종15)에 건축한 전통가옥으로 월성 손씨 종택이다. 
    서백당은 “참을 인(忍)자를 100번을 써야 인재를 길러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곳을 두고서 일찍이 풍수학자들은 삼남의 길지로 현인이 3명 태어날 곳이라 예언했다. 
    실제 이곳에서는 조선중기 뛰어난 문신이자 청백리인 우제 손중돈(1463~1529)과 외손으로 조선조 유학자로 동방 5현으로 추앙받는 회재 이언적(1491~1553)이 
    태어났다. 앞으로 마지막 한 사람의 현인이 태어나길 기다리면서 종가를 지키는 그 마음이 바로 한국인이 믿는 풍수 정서이다.
    양동마을 이외에도 문필봉이 존재하는 마을에서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심심치 않게 들린다. 
    청록파시인 조지훈의 고향인 경북 영양 주실 마을, 전북 임실의 삼계면,동양학자 조용헌의 글에서 보이는 전북 해남의 윤선도 고택,경남 산청군 금서면,경남 
    사천시 곤양면, 이곳들은 모두 안산에 문필봉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임실의 삼계면 지역에서는 1개면에서 100여명 이상의 박사가 배출되었다고 하니 문필봉과 학자 배출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율곡 이이(李珥)도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문필봉이 있는 금강산 신계사에 들러 기도를 올렸다는 이야기는 문필봉에 대한 선비들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기 충분하다.
    경남 사천시 곤양면 문필봉. /조훈철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스토리텔링을 원한다. 과학의 시대를 뛰어넘어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풍요롭게 구사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느냐에 국가경쟁력의 승패가 달려있다. 스티브 잡스의 작품인 애플 아이폰, 조앤 K 롤링의 해리 포터 이야기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해리 포터는 현실세계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을 다룬 판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빨려들고 있다. 해리 포터의 브랜드 가치는 서적,영화,캐릭터 상품을 포함하면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들고 가공하는 능력은 우리도 이들 못지않다. 한국의 K팝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한국의 드라마가 세계 속에 진출할 수 있는 원동력에는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는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DNA가 존재하기 때문 이라 믿고 싶다. 그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모티브에는 바로 ‘문필봉’과 같은 한국의 자생풍수가 자리 잡고 있다.
           문갑식 조선일보 편집국 선임기자 gsmoon@chosun.com 조훈철 前 동국대학교박물관 선임연구원 agora62@hanmail.net 해제ㆍ설명= 정안스님 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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