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조훈철의 문화재 이야기

11 불국사 가람배치에 담긴 비밀

浮萍草 2015. 11. 28. 07:00
    日, 1920년대 비밀리에 다보탑 해체 보수…그 속에 있던 유물들은
    함산 서남쪽에 자리 잡은 불국사(佛國寺)는 경덕왕10년(751)에 중시(재상)라는 벼슬을 지낸 김대성이 창건하였으나 생전 그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자
    (혜공왕10년,774) 국가에서 주도하여 완성한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불국사 고금창기’에 의하면 그 규모가 2,000여 칸에 이르는 대가람이었다고 전하지만 임진왜란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이후 17세기 초부터 복구와 중건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긴 했으나 많은 건물이 파손된 채 그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쳐 이루어진 대대
    적인 발굴과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불국사의 ‘불국’은 부처의 나라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중생들이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를 차안(此岸),부처의 나라 불국토는 피안(彼岸)으로 부른다. 
    온갖 번뇌와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차안의 세계에 비해 피안의 세계는 극락정토(極樂淨土) 그 자체이다. 
    그래서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불국토에 태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차안의 세계를 아예 불국토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불국사는 이러한 신라인들의 염원이 그대로 반영된 사찰이다.
    석단 윗부분은 불국토를, 아랫부분은 범부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불국사 석축의 미학 /조훈철

    불국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조형물 중 하나는 대 석단이다. 석단 위는 부처의 나라인 불국을,그 밑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범부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석단에는 특이하게 두 쌍의 다리가 놓여 있다. 하나는 대웅전으로 향하는 청운교 백운교,또 하나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연화교 칠보교이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석가모니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에 연결되어 있고,연화교와 칠보교는 아미타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안양문에 연결되어 있다. 이는 범부가 부처의 세계로 가려면 연못(구품연지)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야 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조형물인 것이다. 석단 위에 조성한 피안의 세계도 경전에 의거하여 다양하게 재현하고 있다. 현재 조성된 것을 보면 크게 4개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법화경(法華經)에 근거하여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를 표현한 대웅전,무량수경(無量壽經)에 근거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묘사한 극락전,화엄경(華嚴經)에 근거하여 비로자나불의 연화장(蓮花藏) 세계를 형상화한 비로전과 경전에 대한 의존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법화경(法華經)의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의거하여 보타락가산을 표현한 관음전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중심공간은 대웅전 영역이다. 이곳은 다리(청운교,백운교)-중문(자하문)-건물(대웅전)에 이르는 축선과 이를 감싸고 있는 회랑으로 구성되며, 중심건물 뒤에 강당(무설전)을 두어 고대 가람의 전형적 배치형식을 이루고 있다. 대웅전 앞마당엔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고 가운데에 석등이 있어 대칭 속에서 비대칭을 형성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쌍탑식 가람배치로는 특이하게 탑 모양이 다른 것은 경전의 표현에 충실히 따랐음을 의미한다. 즉 다보탑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과거불인 다보여래의 세계를,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의 세계를 각각 상징적으로 표현한 조형물인 것이다.<
           조훈철 前 동국대학교박물관 선임연구원 agora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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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국사에 큰 연못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
    다보탑 전경. 기단 위 4면에 석사자상이 4마리 있었으나
    모두 도난당하고 지금은 1마리만 남아 있다. /조훈철
    편 대웅전 영역을 극락전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넓이는 극락전의 두 배가 넘고,전각의 크기도 대웅전(64평)이 극락전(27평)보다 훨씬 크다. 넓이뿐 아니라 높이도 차이가 있는데, 대웅전 영역이 극락전 영역보다 석축 한 단만큼 더 높다. 이렇게 석가모니 부처의 대웅전이 아미타 부처의 극락전보다 크고 높게 강조된 이유는 당시 신라인의 생각이 내세보다 현실세계를 중시했기 때문이며 나아가 현실세계를 부처의 나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염원이 강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상징성과 조형미가 뛰어난 문화유산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불국사가 비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은 받고 있지만 이곳에서 간과하거나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불국사 가람배치의 핵심은 대석단과 그 아래에 조성한 구품연지(九品蓮池) 이다. 구품연지가 불국사라는 대가람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구품연지의 복원과 관련된 좋은 사례를 보려면 일본 교토 근처 우지에 있는 뵤됴인(평등원)에 가면 된다. 인터넷에 등장하는 뵤됴인의 연못 풍광을 불국사의 대석단 앞마당에 조성한다고 생각해보라. 불국사 가람배치를 벤치마킹한 일본의 사찰이 오히려 우리보다 극락세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을 더 잘 구현한 것 같아 부럽기 그지없다. 70년대 불국사를 복원할 때 어떤 연유에서인지 연못을 복원하지 않고 묻어 버렸다. 그 당시는 사정상 그렇다 치더라도 오늘날 불국사 구품연지의 복원 문제는 다시 한 번 신중 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다보탑 기단 위 4면에는 부처의 사자후(獅子吼)를 상징하는 4마리의 석사자상이 있었다. 1916년 이전 이미 도난을 당하고 지금은 한 마리뿐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있다. 1924~1925년경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배제한 채 다보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 하였는데 그 기록이 현재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탑 속에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리와 사리장치,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석가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이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보아 다보탑 내부의 유물도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 문화재들을 우리는 잊어선 안 된다. 불국사는 아직 미완의 문화재이다.
           조훈철 前 동국대학교박물관 선임연구원 agora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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