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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몸·마음·생활 속에 슬로푸드 피 흐른다”

浮萍草 2015. 11. 26. 13:16
    대담: 박원순 서울시장-페트리니 국제슬로푸드협회장
    박원순, "도시텃밭은 단순 식량생산 넘어 즐기고 행복 얻는 치유 공간" 페트리니, "한국 가장 훌륭한 발효기술 보유, 노인 지혜 배우고 기록해야"
    박원순 서울시장과 카를로 페트리니 국제슬로푸드협회장(창시자)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서울특별시 교육연수원에서 2015 슬로푸드 국제페스티벌
    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대안농정포럼 행사를 마친 뒤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리나라 최초의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이 출범한 1986년 유럽은 광우병 공포에 휩싸였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양의 내장을 사료로 먹인 결과였다. 이윤과 효율만 앞세우는 산업형 농업의 민낯이 드러났다. 같은 해 이탈리아 언론인 카를로 페트리니 등은 로마에 진출하려던 맥도널드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여기서 탄생한 대안 먹거리 운동인 슬로푸드 운동은 세계로 퍼져, 160개국에 10만여명의 회원과 1500개 지부를 뒀고 우리나라 등 10개국에 국가 협회가 만들어 졌다. 2015 슬로푸드 국제페스티벌 행사의 하나로 20일 서울시 교육연수원에서 2015 대안농정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해 ‘농업 없이 도시 미래 없다’는 강연을 한 카를로 페트리니 국제슬로푸드협회장과,‘건강한 삶의 특별시,서울의 건강한 먹거리’를 발표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따로 만나 건강한 먹거리와 농업, 슬로푸드 운동의 한국 적용 등에 관해 대담을 나눴다.
    슬로프드 운동의 로고인 달팽이 문양
    박원순 시장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도시농업이나 슬로푸드 운동을 펼치는 게 쉽지 않다. 아까 발표를 듣고 혹시 조언이나 제안이 있으면 해 달라.” 페트리니 회장 “슬로푸드 운동은 시골과 대도시,부유한 곳과 가난한 곳 가리지 않고 발전해 왔다. 도시든 시골이든 음식문화는 모두 농촌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동안 먹거리 환경이 급변해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했다. 모든 대도시가 비슷하다. 서울시가 하고 있는 시골과 도시 농업을 다시 연결하려는 노력 등은 아주 훌륭하다. 조언한다면, 아이 때부터 생각을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박 시장은 앞서 한 강의에서“왜 서울시장이 농업 이야기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지만 농민의 아들이기도 하고 농업 살리기를 고민한 시민운동가로서 좀 자격이 있다”며 농업과 도시는 하나로 연결돼 있어 먹거리 문화를 통해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최근 들어 급락했으며 농업인구와 쌀 소비량은 급격히 줄고 농업인구 고령화는 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1년부터 서울시에 도시텃밭을 늘려 지난해까지 4배로 늘렸다며 “서울시의 모든 건물 옥상에 태양광 패널 아니면 텃밭이 조성되도록 하고 드론(무인기) 를 띄워 점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 사진=김봉규
    선임기자
    박원순 “도시텃밭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곳을 넘어 즐기고 행복을 얻는 치유의 공간이다. 서울은 자살률 높고 고독사와 이웃과의 관계 단절이 심한 도시 아닌가. 그런데 아파트 옥상에 배추밭을 만들면 물 주고 가꾸면서 서로 얘기 나누고 관계를 만들어간다. 도시텃밭 운동을 시가 시작했지만 이제 시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흐름이 느껴진다. 이웃 아파트로 번져간다. 가끔 이런 곳에 가면 옥상에서 재배한 커다란 수박을 선물하기도 한다. 금천구에선 마치 김해평야처럼 널따란 옥상 배추밭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도시농업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생각한다. 도시농업이 불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는 페트리니 회장의 말에 동의한다. 사람 의지만 있다면 도시에도 땅, 물, 햇볕 같은 자원은 얼마든지 있다. 비어 있는 땅도 의외로 많더라.”   페트리니 “아프리카에서도 저녁에 텔레비전을 켜면 프라이팬을 든 사람이 나온다. 요즘 셰프는 인기인이다. 그러나 모두가 요리를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농부에게 제대로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 농업이 없다면, 재료가 오염돼 있고 유전자 조작돼 있다면 맛있는 요리도 존재할 수 없다.”
    국제슬로푸드협회 창시자이자
    회장인 카를로 페트리니.
    사진=김봉규 선임기자
    페트리니는 오늘날 사람들이 농업에는 무관심하고 먹거리의 맛,모양,가격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먹거리 포르노’라고 비판하곤 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음식을 넘어 농업에 대한 운동이어야 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9년 발표한 선언문에서 질 좋은 음식이 되려면 좋은 재료와 숙련된 기술로 만들고(좋은),환경과 동물 복지,생물다양성,건강까지 고려하며(깨끗한),노동조건과 정당한 보수,연대와 공감,문화다양성 존중(공정한)을 만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산업화했고 농업은 가장 빨리 몰락한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슬로푸드가 뿌리내릴 수 있을까. 페트리니 “땅을 망가뜨리고 괴롭힌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가 변해야 한다. 우리 속에 있는 농부의 피와 농업을 살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요즘 사회는 노인,중년,젊은이가 너무 나뉘어 있다. 세대간 관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는 경험 많은 노인으로부터 배우고,노인은 젊은이의 힘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노인은 가족 안에 함께 있어야 한다. 한국인은 이미 몸속에 슬로푸드 디엔에이(DNA)를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이 와서 슬로푸드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의 역사와 문화를 보라.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말을 실감할 것이다. 박 시장의 부모와 그 부모는 모두 슬로푸드 실천가들이었다.”  박원순 시골에서 어머니가 서울 오시면 농사지을 생각에 못 견뎌 하신다. 낮잠 주무시면서 닭 쫓는 잠꼬대까지 하신다. 서 울 골목길에 가보면 작은 상자나 화분에 고추 따위 작물을 심은 것을 흔히 본다. 도시농업을 말하기 전에 이미 농업은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들어 있다. 단지 정책과 제도로 보장하지 못했을 뿐이다.” 페트리니는 앞선 강의에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발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런 문화를 잃고 있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노인으로부터 농업생산물을 어떻게 가공하는지 지혜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도 학생 500명에게 강의하고 앞으로 농사를 지을 사람이 있느냐면 한두 명이 손을 든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그의 서울대 강의에서 100여명 가운데 농사를 짓겠다는 이는 여학생 한 명이었다.  페트리니 “슬로푸드라고 해서 식탁에 네 시간씩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슬로푸드라고 천천히 하라는 게 아니다. 노인만 알고 있는 전통과 기억, 재료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기록하고 보호해야 한다.”
    맛의 방주, 지구촌 2715개
    한국 앉은뱅이밀 등 47종 등록
    토종 종자와 함께 먹거리로 가공하는 사람의
    지혜를 보존하기 위한 맛의 방주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앉은뱅이밀. 사진=박미향 기자
    맛의 방주는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슬로푸드 운동의 핵심 사업이다. 사라져 가는 독특한 음식을 보호함으로써 그 원료와 생산자,문화까지 지키자는 것이다. 22일 현재 모두 2715개 동식물과 식품이 선정됐으며 우리나라에선 제주푸른콩장을 시작으로 밀랍떡까지 47종이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현지 실사를 거쳐 목록에 올랐다. 지역의 독특한 먹거리에는 그 지역의 생태적 특징과 역사가 어려 있다. 외딴 지역이나 섬에 그런 먹거리 유산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제주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14종이 맛의 방주에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 첫 목록인 제주푸른콩장은 제주도의 토종 품종인 푸른독새기콩으로 만든 전통 된장이다. 서귀포 지방에 남아 있는 이 콩 품종은 맛이 달고 찰기가 있어 된장과 국수용으로 쓰이지만 오랜 전통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자생지에 태풍이나 자연재해가 몇 년 계속되면 종자의 보존도 위험하다. 이 재래 콩 품종과 그것을 가공해 이용하는 전통 지식 모두를 보존하기 위해 맛의 방주에 올린 것이다.
    토종 찹쌀과 들깨, 벌꿀을 생산하는 지역의
    독특한 음식인 밀랍떡. 최근 맛의 방주에 올랐다.
    사진=국제슬포푸드한국협회
    가장 최근에 등재된 밀랍떡은 경기 양평·가평 지역과 강원도 일부에서 전통적으로 만들어 오던 찹쌀떡이다. 직접 재배한 찹쌀과 야생 쑥,들깨,토종꿀을 내릴 때 모아둔 밀랍으로 쪄낸 떡이다. 찹쌀과 들깨 농사, 토종벌 키우기를 하는 전통 농촌에서 나온 음식인데 점차 기억 속의 식품이 되고 있다. 전통 어법으로 잡는 물고기와 음식도 ‘슬로피시’라는 이름으로 포함돼 있다. 손가락 틈으로 들어온 산란기 꽁치를 잡은 울릉 손꽁치,제주 다금바리,전남 낭장망 멸치, 웅어 등이 등재 돼 있다. 토종 가축으로는 칡소,연사오계,제주 재래돼지, 제주흑우, 현인닭 등이 포함됐다. 국제슬로푸드협회가 맛의 방주에 올린 목록을 보면 토종 과일,채소,가축의 품종과 치즈,빵,살라미 등 가공육,발효식품 등 획일적인 대량생산 농업체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지역 특유의 다양한 먹거리가 올라 있다. 애초 국제슬로푸드협회는 맛의 방주에 1천종을 올리려 했지만 이런 다양성을 확인하고 2012년 목표를 1만종으로 늘렸다. 현재 세계 식량의 95%는 30가지 미만의 농산물 품종으로 생산된다.


    서울 도시양봉, 꿀도 따고 친환경
    유해물질 검사에서도 ‘적합’ 판정

    지난 9월15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 옥상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연 벌꿀 수확 행사에서 민동석(오른족) 사무총장이 벌통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심 양봉이 세계 대도시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도심에서 벌을 친다는 것은 도시농업의 한 부분이자 도시 생태환경이 건강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에는 3000곳 이상의 양봉장이 있고 뉴욕시에도 400곳이 넘는다. 서울에도 21곳 186개 벌통에서 꿀벌이 윙윙댄다. 그렇다면 오염된 도시 환경에서 생산한 벌꿀은 안전할까. 서울시는 2012년 도시농업을 시작하면서 상징적으로 시청 옥상에 벌통 5개를 시범적으로 설치했다. 여기서 수확한 꿀 70ℓ에 대해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유해물질 검사를 했다. 아울러 양봉을 하는 성동구와 노원구 등에서 생산된 꿀 77건에 대해서도 검사를 벌였다. 애초 식품위생법의 꿀 검사기준에는 납 등 유해성분에 대한 기준은 따로 없다. 그러나 자동차 배기가스 등 도시 환경을 고려해 이 검사에서는 납,카드뮴 등 중금속과 타르색소 등 11개 항목을 조사한 결과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서울시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도시양봉을 산업 차원으로 육성해 나갈 방침이다. 시는 지난 4월 발표한 ‘서울 도시농업 2.0 마스터플랜’에서 “도시양봉 산업을 육성해 도시 속 농산물 재배 환경을 구축하고 자연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며 장애인 도시양봉단 운영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이 생산하는 ‘참누리 벌꿀’과 가공품인 숙성꿀,프로폴리스,로열젤리,화분,밀랍 등을 생산해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 장애인의 재활과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157㎞에 이르는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보면 서울의 녹지가 외국의 어느 중소도시 못지않게 풍부함을 알 수 있다. 산에 둘러싸인 서울은 양봉에 최적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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