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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왕가뭄을 잊지 말자, 부족한 건 물보다 정책

浮萍草 2015. 11. 16. 21:52
    1901년 연강수량 374㎜로 절정…식량 찾아 양민 폭도로, 수천명 아사 
    통합적 수자원관리 없이 물 과소비와 낭비 성행…물관리기본법 절실
    추상화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충남 서북부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20%대 저수율을 보이고 있는 충남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 예당저수지 모습이다. 수면에 있던 낚시용 좌대가 농가주택처럼 보인다. 사진=예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국 의화단 운동, 러·일 전쟁 등 19세기 말 아시아를 두루 취재하던 영국 언론인 앵거스 해밀턴(1874~1913)은 1901~1903년 사이 대한제국에 머물렀다. 그가 남긴 견문록 <한국>에는 1901년 한반도를 휩쓴 대기근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나온다. “나라 전체가 붕괴했다. 내륙지방은 특히 심해 폭도가 들끓는다. 평소 평화롭고 법을 잘 지키던 사람들이 식량을 탈취하기 위해 시골로 몰려갔다. 서울엔 걸인이 넘쳐 밤에 나가기가 위험했다.” 그는 서울 인구 20만명 가운데 2만명이 극빈층으로 추락했고 수천명이 굶어 죽었다고 적었다.
    앵거스 해밀턴의 견문록 <한국> 속표지 모습.

    이 책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물리 관측소가 파견한 직원이 제물포에서 측정한 강수량 자료를 인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논에 물이 찰랑대야 할 6월 고작 8㎜의 비가 왔다. “논이 말라붙자 사람들은 풀뿌리를 캐러 산으로 갔고 인육을 먹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고 해밀턴은 기록했다. 1901년은 기록이 남은 한반도 최악의 가뭄이 절정이던 해였다. 측우기 기록이 남아있는 1770년 이후 230여년 동안의 강수량 그래프를 보면, 1882~1911년 동안 깊게 패인 모습을 볼 수 있다.

    29년 동안 계속된 가뭄이 끝날 무렵 대한제국은 망했다. 1901년 서울의 강수량은 지난 30년 평균값의 4분의 1인 374㎜였다. 아프가니스탄 수준이다. 가을비가 요즘 잦다. 그러나 가뭄 걱정을 덜어줄 정도는 아니다. 김용진 기상청 통보관의 말을 들어보면,제주와 남부 일부,강원의 영동을 빼고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가뭄이 심하다. 이번 비는 "약간 도움이 되는" 수준이다. 해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엘니뇨 영향으로 올 겨울 강수량이 는다 해도 내년 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가을비가 내린 13일 우산 쓴 시민들이 단풍이 물든 서울 종로구 견지동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비는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강수량은 지난해는 평년의 60%, 올해는 50% 수준이었다. 섬진강댐의 저수율은 지난 2월 60%에서 곤두박질쳐 16일 현재 8.8%로 10%대도 무너졌다. 저수용량 4억 6600만t인 대형 댐이 거의 비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 가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사료에 등장하는 가뭄과 기우제를 언급한 빈도를 토대로 124년마다 큰 가뭄이 발생하며,이번 가뭄은 2012~2015년 시작해 2041년까지 지속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그 원인은 모르고 따라서 이번에 그런 장기 가뭄이 닥친다는 보장도 없다. 분명한 건, 공급되는 물은 크게 늘지 않는데 물 사용량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표와 지하에서 물을 너무 많이 퍼 쓰기 때문에 물 부족으로 인한 취약성과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후변화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늘어난다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일 뿐 국지적인 가뭄은 더 자주 심하게 일어날 수 있다. 홍수 대비를 위해 다목적댐을 비워놓았다 비가 오지 않으면 식수부족 사태가 날 수도 있다.
    변희룡 교원대 교수가 누리집(http://atmos.pknu.ac.kr/~intra3/)에 매일 올려놓고 있는 가뭄강도 분포도. 가을비가 내린 15일 중부 지역의 가뭄이 매우 심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충남에서 정부의 가뭄대책을 보고 환경운동연합이 “부족한 것은 물이 아니고 정책”이라고 꼬집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줄줄 새나가는 수돗물을 방치하고 멀쩡한 지방상수원을 폐쇄하고 먼 다목적댐에서 물을 끌어오며,지하수를 난개발해 장작 가뭄이 들 때마다 관정을 판다고 요란을 떤다. 과잉 생산이 걱정인 논에 물을 대기 위해 톤당 수십만원이 드는 도수로 공사를 하느니 일부 지역의 농사를 포기하고 재해보험 등을 통해 농민에게 보상하는 식 으로 물을 합리적으로 쓸 수 없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국토부, 농식품부,환경부 등 5개 부처가 수량과 수질,큰 강과 중소하천 등 업무를 나눠 맡은 채 통합적인 물관리를 방기해 온 탓이 크다. 김승 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장은 “지류와 본류, 지표와 지하,생활·농업·생태 등 다양한 용도를 함께 관리할 권역별 물관리위원회를 두고 통합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10년째 주장해 온 물관리기본법안은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에 상정돼 있다. 그의 경고다. “근본적인 구조개편을 하지 않으면 1901년 가뭄이 다시 옵니다.”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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