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가정의학과 전문의 힐링푸드

22 대형 냉장고는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될까?

浮萍草 2015. 10. 22. 08:00
    을을 맞아 맘 먹고 정리를 시작했다. 
    마음 한 켠에 늘 < to do list >로 두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었던 것이 정리이다. 
    그러던 중 최근에 읽은 정리에 관한 책에 다시 한 번 자극을 받아 책,옷 등등 주제를 잡아 하나씩 집안을 뒤집어 엎기 시작했다.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버리고 재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우선 순위’를 확인하는 행위라고 한다. 
    활용하진 않으면서 ‘판단 보류’의 상태로 밀쳐져 있던 물건들을 다 꺼내어,버릴 것은 대용량 쓰레기 봉투에,아직 쓸만해서 나눠줄 것들은‘아름다운 가게’에 신청해서 
    기증했다. 
    그동안 쌓아뒀던 물건들을 손으로 만지면서 남겨둘 것,버릴 것,나눠줄 것 등으로 나름의 분류를 하기 위해 머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 
    정리 후에 얻게 되는 깨끗함도 물론 좋지만 이것이 바로 ‘정리’라는 행위의 본질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막연했던 자신의 선호도가 무엇인지가 뚜렷해진다. 
    결국 끝까지 남아있는 것이 바로 ‘나’다운 선택인 것이다.
    집에서 정리가 가장 필요한 곳은 어쩌면 냉장고 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백색 가전 제품들은 더욱더 큰 용량을 자랑한다. 
    냉장고의 고 스펙 요소 중 하나가 용량, 즉 냉장고가 얼마나 큰 지,그래서 얼마나 식품을 그 안에 담아둘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대용량 냉장고를 구입하면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안심이 된다. ‘
    이제 식품들을 안전하게, 신선하게 얼마든지 저장할 수 있게 됐어.’
    하지만 냉장고가 대용량이 되어가는 만큼 우리의 손길과 기억,판단과 멀어진 음식들이 냉장실,냉동고 구석 구석,칸칸이 묵혀져 있다.
    무언지 파악할 수 없게 봉해져 있는 검은 비닐 봉투.유통기한을 훌쩍 넘긴 양념들.먹을 것 같아서 남겨뒀지만 시들시들해진 과일과 채소 쪼가리들. 다 못 먹고 
    버리기 아까워서 밀폐용기에 남겨둔 음식들….
    
    가득 채워진 대형 냉장고, 신선함의 상징일까? /이경미
    냉장고가 대형화되면서 어쩌면 우리는 바로 지금 신선한 식품 먹기를 포기하고 냉장실에서든, 냉동고에서든 저장의 시간을 거친 오래된 식품을 먹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냉장고가 작을수록 신선한 식품을 먹을 가능성은 커진다. 저장하지 않고 그때 그때 소량을 사서 바로 바로 소비하게 되기에…. 영양 측면에서 유기농 열풍 이전에 신선한 제철 식품이 먼저 고려되어야하는 것처럼 영양소에 대한 관심도 좋지만 신선한 식품을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강을 위한 기본인가.정리 열풍, 비우기,다이어트의 열풍 속에서 비우기가,그리고 다이어트가 이루어져야 할 곳은 바로 우리 집의 냉장고인 것이다. 이렇게 정리를 한 후에도 머지 않아 다시 냉장고는 채워질 것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한 그 다음 단계는 바로 ‘부족하게 장을 보는 것이다.’ 약간 모자란 것이 좋다. 창의성은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 제한적인 환경이라는 전제를 수용한 상태 안에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음으로써 의도치 않게 나오는 결과인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레시피대로 재료가 구비되지 않았을 때 집에 이미 있는 재료 안에서 음식을 하면 새로운 레시피가 만들어진다. 재료가 부족하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의외의 식품, 생각지 못한 조합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낸다. 돼지고기, 소고기가 없을 때 닭고기가 있다면 카레를 만들 때 닭고기를 넣어 본다. 감자를 넣는 요리에 감자가 없으면 고구마를 넣어본다. 고추장 대신에 된장을 넣어본다. 샐러드 채소로 양상추를 쓰려다 없으면 냉장고 채소칸에 있는 잎채소 무엇이든 샐러드 재료로 사용해본다. 레시피대로 재료가 없다고 재료를 완전하게 구입해서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냉장고에 이미 있는 재료’라는 제한 하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레시피가 만들어진다. 물론 때론 실패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했을 때 요리는 레시피라는 모범답안을 그대로 받아적는 재미없는 시험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결과가 어떨지 궁금해하며 관찰하는 탐구의 시간이 된다. 전형적인 기술(Technique)에서 비전형적인 예술(Art)이 되는 순간이다. 또한 그러는 과정에서 어찌됐든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고 새로운 식품을 추가로 구입하지 않기에 냉장고가 비워진다. 식재료가 남지 않고 바로 바로 신선한 상태로 소비된다
    . 냉장고가 비워진 만큼 우리는 신선한 식품을 먹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의 몸도 , 그리고 마음도 비워진다. ‘ 냉장고 비우기 ’와 ‘부족하게 장 보기’,올 가을에 한번 실천하고 그 효과를 확인해보자.
          
    이경미 MediSolution 대표 가정의학과 의사 통합의학 전문의 drhealingfo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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