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땅의 歷史

돌의 땅 철원과 맷돌 장인 백성기

浮萍草 2015. 10. 15. 15:30
    겸재도 감탄한 '돌의 땅' 철원… 사내는 그 땅에서 돌을 깎는다
    용암이 식어서 생긴 너른 철원 평야, 삼부연 폭포 바윗돌엔 원색 가을빛 푹 꺼진 한탄강변엔 검은 절벽이 아침 안갯속 기러기떼 평화롭게 날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흔적도… 대 이어 맷돌 만드는 토박이 사내들 원(鐵原)은 평야다. 2억 평이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동송,갈말,김화읍과 서면,근북면 그리고 북한 땅 평강군 남면에 걸쳐 있다. 산투성이인 강원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다. 평야 흙을 걷어내면 그 아래는 현무암이고 그 아래는 화강암 암반이다. 중생대에 흘러나온 마그마가 천천히 식으면서 화강암 암반을 만들었고,신생대 후반인 27만 년 전 화산이 터져 현무암이 그 위를 덮었다. 철원,근본이 돌이다. 1711년 관광객 겸재 정선이 본 철원도 돌이었고 304년이 지난 2015년 대한민국 관광객이 보는 철원도 기실은 돌이다. 1947년 철원에서 나고 자라고 늙은 사내 백성기의 삶도 돌이다. 백성기는 철원평야 한가운데에서 철원 돌로 맷돌을 만든다. ㆍ돌밖에 없던 백성기의 삶
    백성기가 세 살이 된 1950년 전쟁이 터졌다. 피란을 갔다가 전쟁이 끝나니 38선 이북이던 고향이 수복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철원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다. 굳이 고향 밖으로 나가 공부할 여유가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그림에 재주가 있던 백성기는 극장 화공으로 취직해 '오야지'를 따라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김신조 부대가 내려온 1968년 입대 영장이 나왔고, 제대를 하고선 간판을 그렸다. 널린 게 군부대요 관공서라, 업무 보고용 차트 제작도 하며 번 돈 10만원 주고 담벼락 허물어진 집을 샀다. 현무암으로 된 담벼락 수리를 강덕희라는 사람에게 맡겼는데 알고 보니 귀신보다 돌 잘 만지는 게 아닌가. 오가는 사람들한테 돌로 기념품 만들어 팔아야겠다며 이 노인과 함께 일했다. 1975년 3월 24일 제2땅굴이 발견됐고, 이어 안보 관광지로 개방됐다. 옳거니, 맷돌 만들어 팔아야지. 현무암 산지인 철원은 조선시대부터 맷돌을 만들던 고장이었다. 백성기는 맷돌을 보며 자랐다. 그래서 석장 강덕희와 제자들도 맷돌을 만들었는데, 만들기도 오래 걸렸고 무거워서 팔리지도 않았다. 헛고생에 헛장사였다. 1978년 간판업을 때려치웠다. 대신 있는 돈 다 퍼부어 석공예 공장을 짓고 진짜 맷돌을 만들었다. 왜?
    철원에서 태어나 철원 돌로 맷돌을 만드는 백성기

    백성기가 말했다. "맷돌로 갈아서 먹을 거 만드는 시절이었다. 임원경제지를 보니 현마다 석공은 2명인데 맷돌 만드는 마조장은 24명이더라. 수요가 많았다는 거지. 70년대에도 집집마다 한두 개씩 다 있었다. 돌은 지천이요 귀신 잡는 석장도 있겠다, 틀림없이 돈 된다 싶었지." '매질은 병든 년이 잘하고 도리깨질은 미친놈이 잘한다'는 말이 있다. 힘없는 듯, 힘 안 쓰는 듯 천천히 맷돌을 돌려야 좋은 식재료를 만든다는 뜻이다. 장맛은 손맛이다. 분당 회전 수가 1800이 넘는 믹서는 쇠 칼날로 음식 재료를 '박살(撲殺)'낸다. 때려죽인다는 말이다. 맷돌은 돌로 재료를 짓이기고 조각내고 가루로 만든다. 안쪽을 보면 윗돌은 가운데가 오목하고 바깥쪽으로 빗금이 새겨져 있다. 오목한 부분으로 으깨진 곡식이 빗금으로 들어가 바깥으로 빠져나가며 가루로 갈려나온다. 낟알에서 가루까지 변신 과정은 억겁 세월을 거쳐 마그마가 철원평야로 변신하는 지질학적 연대기와 유사하다. 맷돌은 과학이다. 서서히 크기를 줄이며 가루로 변한 재료는 순식간에 박살 난 재료와 영양학적으로나 미감으로나 다르다. 대한민국이 급성장하면서 맷돌 수요는 급감했지만 백성기는 무식하게 맷돌을 만들었다. 왜? "정신 차리고 보니 돌밖에 먹고살 게 없더라"고 했다. ㆍ돌이 만든 절경, 철원
    그 사이에 철원은 관광지로 변했다. 용암이 흘러가며 파놓은 용암길은 양안이 현무암 절벽인 한탄강이 되었다. 화강암 바윗덩이 고석정(孤石亭) 아래 강변에는 사시사철 관광객이 몰려온다. 현무암 암반이 수직으로 꺼지며 생긴 직탕폭포는 높이가 3m에 불과하지만 너비가 80m로,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과장된 별명을 가지고 있다. 2017년에는 폭포 위쪽 콘크리트 다리가 철거될 예정이니 그때는 별명다운 면모를 구경할 수 있겠다.
    대가뭄 속에서도 삼부연폭포 물줄기는 멈춤 없이 가을 속으로 떨어진다.300여 년 전 화가 겸재 정선도,21세기 관광객도 20m 높이 폭포수를 에워싼 기암괴석에
    눈을 떼지 못한다.렌즈=캐논 EF 24-70mm 1:2.8 L USM 셔터 스피드=1.3초 조리개=f20 감도=ISO100 /박종인 기자

    한탄강 지류 용화천에는 삼부연폭포가 있다. 철원 여행의 백미다. 삼부연(三釜淵)은 물줄기가 세 번 꺾여 가마솥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궁예가 이 너른 땅에 태봉국 도읍을 정했을 때, 폭포에 살던 이무기 세 마리가 승천해 용이 됐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용화동이요 개울 이름도 용화천이다. 그때 승천 못 한 이무기 한 마리가 심술을 부리면 가뭄이 들고, 제사상을 받고서야 비를 뿌렸다고 했다. 한탄강도, 직탕폭포도, 삼부연폭포도 모두'돌'이다. 돌이 안정된 기초를 만들지 않으면 강도 폭포도 없다. 대가뭄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이 가을날, 삼부연폭포는 바로 돌이 압권이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질감과 무늬가 절벽에 가득하고, 절벽에는 노랗고 붉은 단풍이 장식품처럼 붙어 있다. 304년 전 금강산 스케치 여행을 떠난 겸재 정선은 삼부연폭포도 화폭에 옮겼다. 제목은 '삼부연'이지만 물줄기를 에워싼 기암괴석이 폭포를 압도한다. 이 천재 화가 눈에도 바위와 돌이 먼저 들어왔음이 틀림없다.
    안개 자욱한 가을 아침 기러기 떼가 빈 들판을 날아올랐다. 렌즈=캐논 EF 70-200mm 1:2.8 L IS II USM 셔터 스피드=1/250초 조리개=f10 감도=ISO100

    철원 북동쪽 해발 395m짜리 화강암 봉우리 백마고지에서는 1952년 10월 열흘 동안 12차례 전투가 벌어졌다. 10월 15일 전투가 끝나고 보니 중공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포로가 됐고 국군도 34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높이는 1m가 줄었다. 백마고지 맞은편 삽슬봉 또한 포격으로 바위들이 녹아내리듯 했다고 해서 아이스크림고지로 명명됐다. 철원의 돌, 철원의 산하에는 억겁 세월과 역사가 각인돼 있다. 그 모든 역사와 세월이 볼거리고 즐길 거리다. ㆍ고향이 고마운 백성기
    그 땅에서 백성기는 맷돌을 만든다. 2007년 중국에서 중고 가마솥 제작 기계를 들여왔다. 그즈음 철원군에서 공사하고 남은 돌 6만㎥를 운반비만 주고 공짜로 받았다. 젊은 날 화공 손재주로 디자인을 하고 노(老) 석공이 물려준 솜씨로 기계를 돌려 맷돌을 만든다. 두고 보는 기념품이 아니라 진짜 작동하는 생활용품을 만든다. 각종 공예대회에서 받은 상이 아홉 개고 지난해 강원도 기능경기대회에서는 백성기와 아들 재현이 경쟁을 해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손으로 돌리는 맷돌, 저속 모터로 돌리는 자동 맷돌, 1000만원짜리 초대형 맷돌…. 건강 바람이 불면서 맷돌을 찾는 사람들이 늘더니,지금은 커피 바람이 불어와 원두를 가는 커피 맷돌도 팔려나간다. 믹서와 맷돌로 갈아 만든 원두커피 블라인드 테스트는 번번이 맷돌 커피가 승리했다. 메밀전 만드는 전주한옥마을에서는 백성기표 맷돌을 대량으로 사서"못 믿겠으면 메밀 직접 갈아서 드시라"며 손님들이 직접 갈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백성기는 고맙다. 돌 많은 고장에 태어나 태(胎)를 묻은 게 고맙다. 무명 석장을 만나 돌을 배운 게 고맙다. 고향 철원이 거센 역사 속에 무사히 살아남아 장차 이 아름다운 땅에 행복하게 뼈를 묻게 될 터이니 무엇보다 고맙다. 돌이 만든 땅 철원과, 돌 만지는 사내 백성기 이야기였다. ㆍ철원 여행수첩
    볼거리 1.삼부연폭포 신철원에서 용화동으로 가는 길목. 2.고석정 입장료와 주차료 별도. 3.직탕폭포 고석정에서 노동당사 방면 오른쪽 길 끝. 4.도피안사 1959년 당시 15사단장 이명재 장군이 옛 절터를 뒤져 찾아낸 철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5.노동당사 북한 노동당 강원도당사로 쓰이던 건물. 폭격으로 건물 뼈대만 남아 있다. 고석정에서 백마고지 방면. 6.백마고지 노동당사에서 북진해 이정표 따라 좌회전. *월정리역과 제2땅굴 고석정 관광지에서 방문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백성기의 부흥석예원 다양한 용도의 맷돌을 구경하고 살 수 있다. ☞ 백성기의 부흥석예원☜ (033)455-1888, 맛집 : 문평쌈가 신철원 초입 한적한 길가. 밑반찬이 싱싱하다. 제육쌈밥 1만원, 불고기쌈밥 1만2000원. 철원군 갈말로 369, (033)452-6868 ☞ 철원군 문화관광 ☜ (033) 450-5151. 대중교통 정보도 검색 가능.
    Chosun ☜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문화 전문기자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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