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삼국지의 여인들

8 小喬와 孫仁

浮萍草 2015. 10. 25. 00:00
    ▲   저는 첫날밤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모르니 나리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ㆍ적벽대전의 여인 小喬
    조(曹操)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은 오(吳)의 대도독(大都督) 주유(周瑜)와 촉(蜀)의 공명(孔明)은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다음 전투에서는 화살을 이용한 화공법(火攻法)을 쓰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손권(孫權)의 모사(謀士) 감택(闞澤)이 조조에게 가, 손권에게 불만이 있는 황개(黃蓋)가 조조에게 귀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조조는 처음에는 의심했으나 나름대로 조사한 데다 황개가 주유의 명에 반항해 태형을 받았다는 소위 고육지계(苦肉之計)의 계책에 넘어가 위장 투항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조조가 장간(張幹)을 오나라에 보내 실상을 조사하였으나 그만 역계략에 넘어가 황개를 받아들인 것이다. 황개의 충고로 조조는 화공법을 쓰기로 했다. 조조의 수군 도독 모개(毛玠)와 우금(于禁)은 조조의 지시를 받고 크고 작은 선박을 잘 배치하여 고리로 연결했다. 조조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를 실은 배는 북소리를 울리며 진지를 떠나 남으로 향하였다. 첩자 방통(龐統)의 계획을 얻은 것을 하늘에 감사하며 배를 철고리로 연결하여 강물 위를 평지화한 것이 조조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조조가 순유(筍攸)에게 말했다. “화공법은 바람 부는 계절이라야 진가를 발휘하지. 지금은 계절적으로 서풍과 북풍이 부는 계절이야. 우리는 서북쪽에 진을 치고 적은 남쪽에 진을 치고 있으니 화공법을 써도 불길이 적들에게만 미칠 것 아닌가. 하니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느냐.” 장군들은 조조의 탁견에 감탄하였다. ㆍ小喬의 조언으로 동남풍을 일으키는 孔明
    주유도 조조를 격파하기 위해 역시 화공법을 쓰고자 했지만 바람이 일지 않았다. 그저 조조의 요새와 군세를 바라보며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쓰러지며 피를 토했다. 공명을 만난 주유는“내 근심이 병을 불러온 것 같으니 무슨 좋은 비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공명이 길게 설명을 하였다. “저는 천서(天書)를 통달한 바 있어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도독께서 동남풍이 불기를 원하신다면 남병산(南屛山)에 칠성단(七星壇)을 쌓으십시오. 9척 되는 높이를 3단으로 쌓고 120명이 기를 들고 올라서면 제가 단 위에 올라 법문을 외워 사흘 동안 동남풍이 불게 하겠으니 걱정을 마십시오.” “사흘이 아니라 단 하루만 큰 바람이 일어도 승리를 거둘 수 있겠소.” 이전에 주유의 아내 소교(小喬)는 남편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이 지역의 기상변화에 정통하다는 노인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노인은 기상변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사실 이곳의 기후에 대한 것은 주유도 공명도 잘 알지 못했고 더욱이 조조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소교는 전투가 있는 11월 20일경에는 잠시 바람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노인의 말을 남편에게 전해주기 위해 소교는 먼저 공명에게 전갈을 보냈다. 곧장 남편에게 전한다면 아녀자의 이야기 따위는 무시해 버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명도 그 노인을 찾아가 기상변화에 대해 자세히 듣고 주유에게는 마치 자신이 뛰어난 도사나 된 것 같은 연극을 꾸민 것이다. “제가 11월 20일 갑자일(甲子日)부터22일까지 바람이 일도록 하겠습니다.” 공명의 말을 듣고 주유는 그 자리에서 병이 사라져버렸다. 그날이 되자 공명의 지시대로 주유는 제단을 쌓았다. 1층에는 28개의 기를 달았는데 동쪽에는 푸른색 기 7개를 청룡(靑龍) 모양으로 꽂고 북쪽에는 검은 기를 세워 현무(玄武) 모양을 만들고 서쪽에도 회색 깃발로 백호(白虎)를 이루고 남쪽에는 주작(朱雀) 모양의 기를 달았다. 2층에는 64개의 노란 깃발을 동서남북,동남동북,서남서북의 8방으로 나누어 각기 8개씩 둘러 꽂았다. 맨 위층에는 4명에게 각각 관을 쓰게 하고 색이 다른 도포를 입혀 세워놓았다. 단 왼쪽에 선 사람은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있도록 닭털이 달린 장대를 들고 있고 오른쪽에 선 사람은 바람의 속도를 측량하기 위한 장대를 들고 있었다. 뒤쪽 한 사람은 보검을 받들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향료를 들고 있었다. 단 아래에는 24명의 군사가 둘러싸고 있었다. 공명은 엄숙한 걸음으로 단 위로 올라갔다. 방위(方位)를 살피고 나서 향을 피우고 그릇에 물을 붓고 하늘을 우러러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 나서 단에서 내려와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ㆍ불타는 적벽
    주유는 참모들을 불러들였다. “동남풍이 불면 바로 전투 준비를 갖추도록 하시오. 그리고 손권에게 원군을 청합시다.” 공명이 그날 세 번이나 단을 오르고 내렸으나 동남풍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수 황개는 화선(火船) 20척을 준비했다. 뱃머리에는 큰 못을 박고 배 안에는 마른 갈대와 짚을 준비하여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황,염초(焰硝) 등 인화물질을 올려놓고 기름을 먹인 푸른 천으로 그것을 덮었다. 뱃머리에서 청룡기가 휘날리고 선미에는 작은 배를 매달아놓는 등 모든 준비를 하고 오직 주유의 출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 바람은 전혀 불지 않았다. 주유는 이처럼 꽁꽁 얼어붙는 동짓달에 과연 동남풍이 불까, 공명을 의심하였다. 그러면서 초조하게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3경에 이르자 난데없이 바람소리가 나더니 깃발이 펄럭이며 흔들렸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갑자기 동남풍으로 돌변하였다. 주유는 기쁨에 넘쳐 외쳤다. “과연 공명은 천지조화의 법에 능통하도다. 그런데 이자가 이처럼 영묘하니 앞으로 동오의 앞날에 화근이 될 것이다. 미리 없애버리는 게 나을 터.” 주유는 장막에서 나와 장수 정봉(丁奉)과 서성(徐盛)을 불러 명했다. “각기 군사 100을 거느리고 배와 육로로 남병산의 칠성단으로 가라. 거기에 가서 공명의 목을 쳐라.” 정봉은 말에서 내려 칠성단에 이르렀으나 공명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배를 타고 그 자리를 빠져나간 것이다. 조조는 황개가 투항해 오기만을 기다리며 동남풍이 부는 것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였다. 조조는 황개의 모습 대신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주유의 감시가 심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군량미가 파양호(鄱陽湖)에 대거 도착하면서 주유가 저에게 순찰을 명하였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강동 명장의 목을 베어 조 승상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오늘 밤 3경쯤 청룡기를 꽂고 나타나는 배가 저의 군량 운반선입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장수들과 함께 배에 올라 황개의 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조조는 상쾌한 바람을 쐬면서 자신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지는 흐뭇한 꿈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멀리 남쪽에서 돛단배가 바람을 타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배에는 청룡기가 꽂혀 있고 기에는 ‘선봉장 황개’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배가 가까이 오자 정욱(程昱)이 조조에게 말했다. “오고 있는 배가 수상합니다. 요새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무슨 뜻인가.” “아무래도 양곡을 실은 배 같지는 않습니다. 양곡을 실은 배라면 무거워 천천히 올 텐데 배의 움직임이 너무 가볍고 게다가 동남풍도 심하게 불고 있어 속임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빙(文聘)이 10여 척의 순시선(巡視船)을 이끌고 뱃머리에서 소리쳤다. “승상의 분부이시다. 요새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그곳에 멈추어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개의 배에서 불붙은 화살이 날아왔다. 문빙이 왼팔에 화상을 입고 배 밑으로 떨어지니 부하들은 놀라 모두 도망쳤다. 이때는 이미 남에서 온 배와 조조 요새 간의 거리가 지척이었다. 황개가 칼을 뽑아 휘두르자 앞뒤의 배가 일제히 화염을 뿜으며 요새로 달려들었다. 바람을 만난 불길은 거세게 타올랐다. 거센 물결이 불기둥을 뿜으며 조군의 요새로 해일(海溢)이 이는 듯 밀려왔다. 조조가 고개를 드니 사방이 불바다였다. 황개와 그의 군사가 배를 타고 불을 지르며 조조에게 다가섰다. 황개는 조조가 배에서 급히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를 쫓아가며“조조를 놓치지 마라!”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장료(張遼)가 황개를 향하여 활을 쏘았다. 화살이 황개의 어깨를 관통하자 황개는 그대로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장료가 조조를 호위하며 말을 타고 도주하자 대장을 잃은 조조의 군사는 엉망이 되었다. 그날 조조의 방대한 수상요새는 전부 불바다가 되었고 대부분의 군사는 싸우지도 못하고 불에 타 죽었다. 살아남은 약간의 군사마저, 몰려오는 강동 군사들의 천지가 떠나갈 듯한 함성에 기가 죽어 물에서 빠져 나오지도 못한 채 죽어갔다. 좌측에서 한당(韓當)과 장흠(蔣欽)이 적벽을 돌아 서쪽으로 쳐들어오고 우측에는 주태(周泰)와 진무(陳武)가 군사를 거느리고 적벽을 돌아 동쪽으로 쳐들어갔으며 중앙에서는 주유가 많은 배를 거느리고 쳐들어갔다. 이것이 조조 대 유비·손권 연합군의 수전인 적벽(赤壁)의 전쟁이다. 조조군의 대부분은 불에 타 죽고,물에 빠져 죽고,나머지는 화살에 맞아 죽고 극소수의 병사는 덤벼들지조차 못한 채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 죽으니 살아남은 자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ㆍ曹操를 살려줘 상업의 神이 된 關雲長
    ▲   “길을 터주도록 하여라.”“고맙소…관운장…”
    조조는 장료와 함께 군사 겨우 100여 기를 거느리고 불바다 속을 헤쳐 도망치려고 했으나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 이제 죽을 도리밖에 없었다. 이때 기적처럼 모개가 군사 10여 명과 함께 나타났다. 장료가 손을 들어 그를 불러 조조를 호위해 겨우 오림(烏林)으로 도망갔다. 조조는 도주 중 두 군데의 어려움은 용케 피했으나 세 번째 도주로에서 포로가 되었다. 조조의 세 번째 도주로는 산비탈길과 큰길로 갈라져 있었다. 비탈길 쪽은 연기가 오르고 있고 큰길 쪽에는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조는 연기가 나는 쪽으로 가자고 하였다. 부하들이 여기에 반대하자 그가 말했다. “허(虛)로 보이는 것이 실은 내실이 있고 내실이 있어 보이는 것이 속이 없다. 나는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능통하다. 공명은 꾀가 많은 놈이라 일부러 산 위에 연기를 피워 그곳으로 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큰길에 복병을 두어 우리를 잡으려는 게지. 내가 결정을 내렸으니 내 명을 따르라.” 모두 조조의 말에 찬동하여 그를 따랐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청룡도를 들고 적토마(赤兎馬)를 탄 관운장(關雲長)이 칼을 든 5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조조는 기가 막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상태에서 망연히 관운장을 바라보았다. “승상, 우리가 여기서 만나는구려.” “관운장, 어찌 그대가 여기 있는 거요.” “나는 승상이 큰길 쪽으로 가길 바랐소. 하나 하늘의 뜻이 달랐나 보오.” “관운장, 이 조조는 군사를 다 잃고 기세까지 꺾여 이 꼴이 되었소. 장군께서 옛정을 생각해 주시기 바랄 뿐이오.” “이 관우는 전에 승상의 은혜를 입었으나 그 은혜는 원소(袁紹)의 두 장군 안량(顔良)과 문추(文醜)를 죽여 이미 갚았다고 생각하오. 안타깝게도 오늘은 내가 공무(公務)를 수행하는 날이오.” “생각해 보시오. 지난날 유비(劉備)에게 되돌아가는 장군을 붙잡아 죽일 수도 있었소.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소. 부디 그 점을 기억해 주기 바라오. 관운장은 의리를 중요시한다고 나는 알고 있소.” 관운장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지난날 조조가 그에게 베푼 은혜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길을 터주도록 하라.” “고맙소. 관운장.” 관운장의 군사들이 놀라서 망설이는 사이 조조와 조조의 군사는 쏜살같이 도망쳤다. 조조는 후일 오나라가 관운장의 목을 베어 자신에게 바쳤을 때 슬피 울고 그의 비(碑)를 나라 도처에 세웠다. 하여 오늘날 관운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촉나라로서는 조조를 놓아준 관운장은 최대의 역적이었다. 공명은 관운장을 당장 처형하기를 바랐으나 유비가 이를 허락지 않았다. 이에 공명은 촉나라의 운이 다할 것임을 예감하고 통곡하였다. 삼국지 전체 가운데 필자가 가장 충격을 받은 사건이 바로 관우가 조조를 놓아준 장면이다. 이때 만일 관운장이 조조를 처형하였다면 조조의 수많은 군대는 그 출신성분이 모두 다른 군인들이라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되어 각자 자기 고장으로 도주해 조조의 나라는 바로 망해버렸을 것이다. 군사적으로 볼 때 관운장의 태도는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후에 오나라가 관운장의 목을 베어 조조에게 보냈을 때 조조는 관운장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조조는 관운장의 의(義)를 높이 평가하여 중국 천하에 관운장의 위대함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그래서 관운장은 상업의 신이 되었다. 관운장이 조조를 없앴다면 비록 의리 없는 자 소리를 듣더라도 촉의 최고 애국자가 되었겠지만 그는 조조를 그냥 보내줌으로써 중국의 상업신(商業神)이 된 것이다. 상업에서 그 정도의 의리를 지킨다면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다. 대부분의 상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관운장의 행위는 그 후 촉나라와 오나라가 망하게 되는 원인을 만들었고 그 일만 없었더라면 제갈공명이 후에 오나라를 쳐 촉나라가 3국을 통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관운장은 군사적으로 볼 때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간이지만 상업적으로 볼 때는 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한 위대한 인간인 것이다. 관운장의 행위는 이 세상의 참된 정의(正義)와 선(善)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전쟁은 음모와 계략으로 상대를 이겨야 하고 이기면 정의가 되지만 상업은 의리를 지킬 수 있다면 아무리 망해도 바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에 능한 중국인이 어디를 가나 관운장을 매우 존경하는 이유도 그가 상업에 있어서 성공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운장을 따르네 人傑惟追古解良 인걸들은 옛 해량(관우의 고향)을 추종하니 士民爭拜漢雲長 선비도 백성도 모두 한나라 관운장을 숭배하네 桃園一日兄和弟 도원에서 형과 아우를 맺고는 俎豆千秋帝與王 황제와 왕으로 천년토록 제사를 받게 될 줄이야 氣挾風雷無匹敵 기개는 바람과 우레 같아 당할 자 없고 志垂日月有光芒 지조는 해와 달처럼 환히 빛나나니 至今廟貌盈天下 오늘날 사당과 화상은 천하 곳곳에 있거늘 古木寒鴉幾夕陽 고목의 까마귀 석양 속에서 몇 번이나 우짖는가
    ㆍ小喬는 孔明 처의 재주를 우려하다
    전쟁에 크게 이긴 주유가 돌아오자 손권과 선군(先君) 손책(孫策)의 처 대교(大喬)가 맞이하러 나갔다. “장군이 우리 오나라를 구했소. 정말로 고맙소.” 손권과 대교는 땅바닥에 머리를 숙여 그에게 큰절을 하였다. “죽은 제 남편도 하늘에서 기뻐하실 거예요. 빨리 소교에게 가서 그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그녀를 맘껏 안아주세요.” 소교는 오나라를 구한 남편 주유가 돌아오자 그 천하처럼 넓은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두 번 다시 이런 날이 올까 싶었던 꿈속 같은 잠자리에서 주유가 말했다. “이번 전쟁은 이겼으나 앞으로도 전쟁은 계속 있을 거요. 그런데 이번에 동남풍을 일으킨 그 공명이라는 자 말이오.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어 내심 불안하오. 그가 오나라의 사람이 아닌 것이 한탄스럽소. 아무튼 그자가 있는 한 유비는 결코 우리 오나라에 속박되지 않을 거요. 그 점이 염려스럽소.” 소교는 자신이 동남풍에 관한 정보를 공명에게 준 것을 주유가 아직 모르고 있음을 알았다. “여보. 너무 걱정 마세요. 공명이 재능이 뛰어나다 하나 당신이 그 정도로 염려할 인물은 아닐 거예요. 사람을 잘 볼 줄 알고 사리판단이 빠르다는 정도겠죠. 듣기에는 공명도 공명이지만 그의 부인이 무척 똑똑하다던데….” 주유는 공명만 해도 감당이 안 되는데 공명의 부인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매우 못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다. 뛰어난 미모의 소교가 그러한 추녀를 언급하는 것은 단순히 공명의 부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녀의 지략이 출중함을 경계하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주유는 오늘 밤은 더 이상 다른 생각 않고 소교를 밤새도록 사랑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소교 또한 중국 역사를 바꿔놓은 대전투의 승리자를 자신이 품는다는 생각에 몸이 더욱 달아올랐다. 절세가인(絶世佳人)을 차지하려는 조조의 야심과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주유의 열정, 전세(戰勢)를 꿰뚫는 공명의 지혜로운 전략은 적벽대전의 신화를 낳았다. 그리고 장강(長江)은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ㆍ남자보다 강한, 劉備의 처 孫仁 ㆍ남자로 자라난, 孫權의 여동생
    항상 남자 복장을 하고 긴 칼을 차고 수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다니는 손인(孫仁)은, 자신을 남자라고 자처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눈에 띄는 그녀의 늠름한 모습은 장수들뿐 아니라 손권도 압도할 정도였다. 그녀는 이 나라에는 결혼할 만한 남자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네가 그러고 다니는데 어느 누가 너와 혼인하려고 하겠느냐.” “오빠는 내가 오빠보다 더 잘난 남자 만날까 봐 두려운가 보죠?” 손권은 누이동생 손인과 오늘도 결혼 문제로 입씨름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주유가 왔다. 죽은 선군 손책의 막역한 친구이자 대도독인 주유는 손권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터놓고 의견을 구할 수 있는 이였다. “주군, 형주(荊州)는 유표(劉表)가 죽은 후 지금 유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형주를 차지할 좋은 기회입니다.” “형주를 친다? 하긴 적벽대전의 전리품치곤 유비가 차지하고 있는 땅이 너무 크지. 한데 조조가 어떻게 나올지… 게다가 유비 곁엔 공명 같은 뛰어난 참모가 있고 무사만 해도 관우(關羽),장비(張飛), 조운(趙雲)이 있으니… 함부로 건드릴 수 있겠소?” 손권의 신중한 대답에 주유는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이렇게 말했다. “형주를 치는 게 여의치 않다면 다른 방법도 없는 건 아닙니다.” “무슨 말입니까?” “유비를 인질로 잡아두는 겁니다.” “유비를 인질로? 무슨 수로 그리한단 말이오.” “유비는 감 부인과 미 부인을 잃고 지금은 홀아비 신세입니다. 이참에 손인 아씨와 혼담을 추진해 보시죠. 유비가 응해서 오면 인질로 잡고 형주와 맞교환하면 어떨까요.” “손인을 유비에게 준다고? 그 아이가 허락할지….” 손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식으로 결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웬만한 무사 못지않은 손인이니 오나라를 위해서라면 협조하지 않을까요.” “한번 추진해 볼 만한 일이긴 하오.” 손권과 주유는 비밀리에 이 일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혼담 제의를 받은 유비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결혼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전되었다. 이 이야기는 오나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ㆍ吳나라로 간 劉備
    건안(建安) 14년(서기 209년),유비가 오나라로 떠나려 할 때 공명이 사람을 보내 조자룡에게 계책을 전했다. “비단 주머니 세 개를 보냅니다. 장군께서 주공을 모시고 동오에 들어간 후 위기에 처하게 되면 열어보십시오. 그 안에는 모두 세 가지 계책이 들어 있으니 차례대로 행하여 주십시오.” 유비는 조자룡과 더불어 쾌속선 10척에 500여 수행원을 이끌고 형주를 떠나 남서로 향하였다. 형주의 일은 모두 공명에게 맡겨졌다. 유비의 마음은 물결에 흔들리는 배처럼 불안하였다. 배가 남서 부두에 이르자 조자룡이 유비에게 말했다. “공명이 세 가지 계책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우선 하나를 끌러 보겠습니다.” 첫째 주머니에 든 것은 수행한 500 병사들을 흩어지게 해 유비와 손인의 혼례 얘기를 기정사실처럼 퍼뜨리고 유비는 따로 강동이교(江東二喬)의 부친인 교국로 (喬國老)를 만나보라는 거였다. 유현덕은 선물로 양과 술을 가지고 그를 찾아가 손권의 누이동생과 결혼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하였다. 교국로는 유비의 인물 됨됨이를 유심히 살폈다. 한편 손권은 여범(呂範)에게 명하기를 유비를 후하게 대접한 후 역관에서 편히 쉬게 하라고 하였다. 유비가 온 사실을 알게 된 오국태(吳國太)는 깜짝 놀랐다. 얼마 후 손권이 주유와 함께 후당으로 모친을 찾아뵙자 태 부인이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어머님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하고 손권이 물었다. “너는 늙은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짓을 하느냐. 네 형님 손책이 임종(臨終) 시에 모든 것을 내 분부에 따라 처리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머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자가 나이가 차면 출가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문제는 나에게 먼저 상의했어야지. 너에겐 누이동생이지만 나에겐 딸이 아니냐. 나를 속여 일을 성사시키려는 게냐.” 이때 유비를 미리 만나본 교국로가 나서 말했다. “저는 이 일을 축하하러 왔습니다. 국태께서는 노하지 마십시오.” 손권이 말을 이었다. “이것은 주유의 계획으로 오나라가 형주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유현덕이 혼인하러 이곳에 오면 그를 옥에 가두고 형주와 바꿀 작정입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목을 벨 것입니다.” 태 부인은 더욱 화를 내며 손권을 꾸짖었다. 그리고 주유에게 말했다. “아니 주유 그대는 6군 81주를 거느린 대도독으로 형주 하나를 빼앗을 방법이 없어 내 딸을 미인계(美人計)로 이용하겠다는 거요? 벌써 나이 50인 유비가 죽으면 내 딸은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될 터인데 새파란 나이에 어디로 개가를 하란 말인가. 이야말로 내 딸의 신세를 망치려고 하는 짓 아닌가.” 그때 교국로가 태 부인을 위로하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만 노여움을 푸시지요. 유비는 어디 내놔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인물입니다. 사위로 받아들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는 아직 유비를 보지 못하였소. 정 그러면 내일 감로사(甘露寺)에 가 선을 보도록 하겠소. 내 마음에 든다면 그때 손인을 시집보내겠소.” 곁에 있던 여범이 손권에게 몰래 말했다. “일단 도부수(刀斧手) 300명을 감로사 부근에 숨겨두고, 국태께서 유현덕을 신통치 않게 여기면 일제히 뛰어나가 사로잡는 것이 어떻습니까.” 손권은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ㆍ“그만한 인물이 결혼을 안 했을 리가”
    조자룡은 형주에서 데려온 군사로 주공을 호위하겠다고 나섰다. 다음날 유비 일행은 감로사 앞에서 말을 내려 손권부터 만났다. 손권은 처음 만난 유비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인사를 주고받은 후 둘은 감로사로 가 국태를 찾아뵈었다. 국태는 유비를 보고 ‘오에는 이만한 인물이 없다’하고 처음부터 호감을 나타냈다. 교국로도 유비에게 술을 권하며 인물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유비는 환대에 만족하였으나 곁에 있던 조운이 작은 소리로 소곤댔다. “숨은 군사가 있습니다. 나리를 죽이려는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안색이 변하여 국태와 손권에게 말했다. “나를 죽일 생각이면 이 자리에서 죽이시오. 밖에 도부수를 매복시켜 둔 까닭이 무엇입니까.” 이 말에 국태와 국로가 놀라 손권에게 물었다. 손권이 얼버무리며 부하의 소행으로 돌렸다. 국태는 장군 가화(賈華)를 죽이려 했으나 유비가 간곡하게 말렸다. 국태는 병사들의 무례함에 대해 유비에게 사과하고 유비와 손인의 혼례를 약속하였다. 국태가 손인을 살펴보자 손인의 얼굴은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유비가 물러가자 국태는 손인에게 심술궂게 물었다. “유비는 영웅이라고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구나. 그 점이 걱정되지 않니?” “피부가 생기가 있고 나이 50이라지만 늙어보이지는 않는데요.” “하지만 유비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부인과 그녀의 자식이 있으니 너는 정부인이 될 수 없다. 그래도 괜찮으냐?” 손인은 화가 난 듯 소리쳤다. “그만한 인물이 그 나이에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을 수는 없죠. 무슨 다른 불만이 있으신가요.” 국태는 웃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너에게는 과분한 분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라.” 자기를 떠본 걸 알고 손인이 깔깔 웃자 국태도 같이 웃었다. 유비는 따로 태 부인을 찾아갔다. “조자룡이 저와 떨어져 거처(居處)하고 있어 혼자 있기가 두렵습니다.” 태 부인은 명을 내려 유현덕을 수행해 온 군사들을 부중(府中)에 들게 하고 그들의 안위(安危)를 보장해 주었다. ㆍ劉備로 인해 여자의 기쁨을 알게 된 孫仁
    며칠 후 유비가 손권의 누이동생에게 장가드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평생 처음으로 여자 옷을 화사하게 차려입은 손인의 성숙한 모습에 모두들 감탄했다. 밤이 이슥하여 하객들이 돌아가니 시녀가 등불을 밝혀 유비를 신방(新房)으로 안내했다. 유비가 신방에 들어가 사방을 휘 둘러보니 벽에는 작은 칼과 창들이 걸려 있고 백여 명의 시녀(侍女)들이 허리에 칼을 차고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었다. 유비는 어두운 밤길에서 맹수라도 만난 듯 등줄기에 땀이 번졌다. 시녀들이 여차하면 병사로 돌변하지 않겠는가. 당황한 유비에게 시녀가 아뢰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저희 아가씨께서는 어려서부터 군사놀이를 좋아하여 시녀들에게도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니게 하셨습니다.” 유비가 말했다. “무기란 결코 여자가 다룰 것이 못 되오. 섬뜩한 기분이 드니 치우도록 명해주시오.” 이 말을 들은 손인은 놀리듯 말했다. “평생을 전장에서 보내신 분이 무기를 무서워하시다니요.” 손인은 시녀들에게 차고 있던 칼을 풀라고 명하였다. 유비는 그제야 안심하였다. 손인에게 접근해 안으려고 하자 그녀는 유비를 잠자리로 밀어 쓰러뜨렸다. 유비가 일어나 앉으려 하자 발로 걷어차 또 쓰러뜨렸다. 그 힘이 너무나 세어 유비의 몸 여기저기 붉은 멍이 들었다. 유비는 호랑이와 싸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손인은 다시 유비를 번쩍 들어 이불 위에 내던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시녀들이 작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럼 시녀들을 물리고 이번에는 더 멋지게 해볼까.” 유비가 질 수 없다는 듯 호기롭게 말했다. 시녀들이 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손인이 진지하게 물었다. “저는 첫날밤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모르니 나리께서 가르쳐주십시오. 무술(武術)밖에 아는 게 없어서요.” 유비는 그 말에 매우 놀랐으나 손인이 지금까지 남자로만 살아왔기 때문임을 알고 부드럽게 대답하였다. “먼저 옷을 벗고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되는 거요.” 그녀는 시키는 대로 옷을 벗고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모든 것을 유비에게 맡겼다. 유비의 손이 그녀의 온몸을 애무해 들어가자 손인도 팔을 돌려 유비의 몸을 꼭 껴안았다. 유비의 몸이 자기 몸에 밀착되었을 때 그녀는 비로소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무예(武藝)로 단련된 그녀의 몸은 가슴과 엉덩이,허벅지 등의 탄력이 대단하여 한 차례 열풍이 지나간 뒤에도 곧바로 원 상태로 복원되었다. 나이 50의 유비가 피곤해서 쉬자고 해도 손인은 ‘나리, 더 애무해 주세요’하고 계속 애원했다. 유비는 힘이 다 빠져 그만 자려고 했지만 손인이 계속 요구하여 한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도록 그녀에게 봉사하였다. 나중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전투에서 수많은 적과 싸워본 유비지만, 싸움에 불리하면 재빨리 도망치기도 한 그이지만 그녀와의 전투는 도망칠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항복조차 허락되지 않으니 가히 즐거운 지옥이었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한이 되어 지금까지 남자처럼 살아왔는데 남자란 겉은 강해 보여도 속은 약한가 봅니다. 기껏 하룻밤에 이 모양이 되셨나이까. 나는 아직도 생기에 넘치는데 나리는 죽은 사람 같으니 이래서야 제대로 쾌감을 느낄 수 있겠어요? 진정 열렬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군요. 천하의 유비 나리도 요 모양이니 말이에요. 그래도 오늘은 첫날이니 요 정도로 그만 용서해 주겠어요. 그동안 여자로 태어난 것을 후회했는데 오늘 경험해 보니 결코 후회할 게 아니군요. 그런데 이런 기쁨은 여자만이 느끼는 건가요? 나리를 보니 한 번 까무러치고는 곧바로 죽은 듯하니 아무래도 남자란 다 이런 모양이죠? 설마 나이가 드셨다고 이런 건 아니겠지요?” 이렇듯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퍼부어대니 유비는 앞으로의 밤이 기대되면서도 심히 두려웠다. 자칫 천하통일이고 뭐고 젊은 여자 손에 죽게 될 성싶었다. 손인은 유비를 열흘이나 신방에 가두어두었다. 오직 침대에서의 끝없는 사랑 행위에만 몰두한 손인은 말할 수 없이 행복했으나 유비는 그야말로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도저히 손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손인과의 생활은 달콤했으나 몸은 송장처럼 되었다. “이러한 남자들이 천하를 다스리겠다며 싸운다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예요. 이것 하나만 봐도 여자들이 모든 면에서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네요. 여자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는 남자들이 천하를 쟁패(爭霸)하겠다고 나서니 정말 우습군요.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니 할 수 없지요.” 이것이 유비를 겪어본 손인의 결론이었다.
    Monthly Chosun ☜        글 : 민희식 前 서울대 교수 / 그림 : 유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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