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명멸(明滅)한 옛 물건들에 관한 뉴스와 일화를 통해 우리 삶의 자취와 변화를 돌아보는
'광복 70년… 물건의 추억’을 연재합니다.
| ▲ 1960~70년대 개 있는 집 대문마다 붙어 있던 ‘개조심 패’. 사진은 최근 어느 한식당이 추억의 소품으로 재현한 것이다. |
1973년 새해 벽두,광주(光州)의 집배원 2800명이 모여 특별한 '결의'를 했다.
'집집마다 개조심패(牌) 달기'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편지를 배달하려고 가정집에 들어섰다가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너무 잦자 세운 자구책이었다.
개에게 물린 집배원이 광주에서만 한 해 350여명이나 됐다.
이 중 10여명은 입원을 해야 했다(조선일보 1973년 1월 23일자).
개들이 주인 품에서 어리광만 부리는 게 아니라 집도 열심히 지키던 30~40년 전 방문객을 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계량기 검침원, 신문 배달원, 화장품 외판원들도 피해자가 됐다.
1966년 경북에서는 미친개가 어린이 15명을 물어 3명이 숨졌다(조선일보 1966년 11월 20일자).
1977년 1월 도사견(土佐犬)이 어린이를 물어 죽이자 한 신문은 "개를 가정의 일원으로서 훈련시켜 충견(忠犬)으로 키우자"고 긴급 제안하기도 했다.
그 시절, 많은 집이 대문 옆에 '개조심패'를 내걸었다.
나무판자나 철판 등 재료는 갖가지였지만 대부분'개조심'세 글자를 세로로 내려썼다.
'猛犬注意(맹견주의)'라고 쓴 집도 있었다. '
개조심'만으로는 허전했는지'사나운 개 있음''물려도 책임 안 짐'혹은'꼬리 치며 뭅니다'처럼 익살맞은 글귀를 보태기도 했다.
대문 옆에 걸었고 세 글자를 적었기에 외국인들이 문패와 혼동하는 일도 있었다.
미국인 평화봉사단원들이 한국 가정집 문을 두드리며 '개조심씨 계십니까'라고 정중히 외치는 촌극이 빚어졌다.
개조심패란 주의를 당부하는'친절한' 안내문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나운 개 있으니 나쁜 짓 할 생각 버리고 꺼지라는 경고문이기도 했다.
집배원들은 달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어떤 이들은 도시의 살풍경(殺風景)을 빚어내는 흉물이라고 비판했다.
'맹견주의'라는 푯말에 대해 한 신문 칼럼은 '인간 무시도 분수가 있다…
개가 우위(優位)에서 살고 있다는 말과도 같이 비위가 거슬리는 글발'이라 비판했다(동아일보 1962년 10월 13일자).
아동문학가 윤석중(尹石重)도 '담을 높이 쌓고…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여'개조심'이라는 문패를 달고 지내니…'라며 칸을 막고 사는 도시의 삶에 혀를 찼다.
그래도 경고 효과를 노려,강아지 한 마리 없으면서'맹견주의'라고 거짓으로 써붙이는 집도 꽤 있었다.
오늘날 방범을 위해 가짜 카메라 달아놓고 'CCTV 촬영 중'이라 써붙이는 것도 가짜 개조심패와 다를 바 없다.
☞ Premium Chosun ☜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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