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1 편지 배달하다 350명 개에게 물리자 집배원들 '개조심패 달기 캠페인'

浮萍草 2015. 9. 1. 09:01
      지난 세월 명멸(明滅)한 옛 물건들에 관한 뉴스와 일화를 통해 우리 삶의 자취와 변화를 돌아보는   '광복 70년… 물건의 추억’을 연재합니다.
    ▲  1960~70년대 개 있는 집 대문마다 붙어 있던 ‘개조심 패’. 사진은 최근 어느 한식당이 추억의 소품으로 재현한 것이다.
    1973년 새해 벽두,광주(光州)의 집배원 2800명이 모여 특별한 '결의'를 했다. '집집마다 개조심패(牌) 달기'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편지를 배달하려고 가정집에 들어섰다가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너무 잦자 세운 자구책이었다. 개에게 물린 집배원이 광주에서만 한 해 350여명이나 됐다. 이 중 10여명은 입원을 해야 했다(조선일보 1973년 1월 23일자). 개들이 주인 품에서 어리광만 부리는 게 아니라 집도 열심히 지키던 30~40년 전 방문객을 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계량기 검침원, 신문 배달원, 화장품 외판원들도 피해자가 됐다. 1966년 경북에서는 미친개가 어린이 15명을 물어 3명이 숨졌다(조선일보 1966년 11월 20일자). 1977년 1월 도사견(土佐犬)이 어린이를 물어 죽이자 한 신문은 "개를 가정의 일원으로서 훈련시켜 충견(忠犬)으로 키우자"고 긴급 제안하기도 했다. 그 시절, 많은 집이 대문 옆에 '개조심패'를 내걸었다. 나무판자나 철판 등 재료는 갖가지였지만 대부분'개조심'세 글자를 세로로 내려썼다. '猛犬注意(맹견주의)'라고 쓴 집도 있었다. ' 개조심'만으로는 허전했는지'사나운 개 있음''물려도 책임 안 짐'혹은'꼬리 치며 뭅니다'처럼 익살맞은 글귀를 보태기도 했다. 대문 옆에 걸었고 세 글자를 적었기에 외국인들이 문패와 혼동하는 일도 있었다. 미국인 평화봉사단원들이 한국 가정집 문을 두드리며 '개조심씨 계십니까'라고 정중히 외치는 촌극이 빚어졌다. 개조심패란 주의를 당부하는'친절한' 안내문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나운 개 있으니 나쁜 짓 할 생각 버리고 꺼지라는 경고문이기도 했다. 집배원들은 달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어떤 이들은 도시의 살풍경(殺風景)을 빚어내는 흉물이라고 비판했다. '맹견주의'라는 푯말에 대해 한 신문 칼럼은 '인간 무시도 분수가 있다… 개가 우위(優位)에서 살고 있다는 말과도 같이 비위가 거슬리는 글발'이라 비판했다(동아일보 1962년 10월 13일자). 아동문학가 윤석중(尹石重)도 '담을 높이 쌓고… 그러고도 마음이 안 놓여'개조심'이라는 문패를 달고 지내니…'라며 칸을 막고 사는 도시의 삶에 혀를 찼다. 그래도 경고 효과를 노려,강아지 한 마리 없으면서'맹견주의'라고 거짓으로 써붙이는 집도 꽤 있었다. 오늘날 방범을 위해 가짜 카메라 달아놓고 'CCTV 촬영 중'이라 써붙이는 것도 가짜 개조심패와 다를 바 없다.
    Premium Chosun ☜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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