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수학 이야기

4 수학 용어에 숨은 뜻

浮萍草 2015. 8. 31. 07:00
    암호같은 무리수·함수·소수… 수학 아닌 역사·철학의 산물
      초등학생이 수학 시간에 ‘세는 수’라는 것을 배우면 어떨까?   하나,둘 세는 것이니 자연수일 텐데 아마도 쉽게 이해할 것이다.   ‘합리적인 수’라는 것을 배우면 어떨까?   도대체 숫자들이 어때야 합리적이라는 건지 모르니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영어로는 rational number인데 ‘이치가 있는 수’,그래서 흔히 ‘유리수’라고 번역한다.
    ▲  그래픽=전승훈 기자 jeon@munhwa.com
    기서부터는 암호 수준이다. 영어권 학생도 이게 무슨 뜻인지 알 도리가 없다. 유리수의 수학적 의미는 2/3이나 7/4처럼 ‘자연수의 비율로 표현되는 수’에다 음수까지 포함한 것이다. ‘세는 개념에서 출발해서 다다를 수 있으니 합리적’이라는 철학적 뜻이 숨어 있다. 무리수는 ‘이치가 없는 수’라서 irrational number인데 세는 것과 관련 없다는 뜻이다. 영어가 모국어라도 그 뜻이 감이 올 리가 없다. 결국 수학 용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언어의 문제라기보다, 그 용어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수의 개념이 나온 ‘수의 역사’를 배워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모국어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역사학이나 철학을 공부해 보려 하면 일상에서 쓰지 않는 용어들을 만난다. 언젠가 호기심으로 뒤적이다가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일단 머리가 띵하다는 것이었고, 쉬운 말도 많은데 이렇게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현학적인 자들이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은밀한 비밀을 유지하려는 폐쇄적 집단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여러 얘기를 종합해 보니,시대의 주류 테마가 있으면 이에 대립하는 반대 테마가 필연적으로 출현하게 되는데,주류 테마를 극복하고 보완하면서 진일보한 통합된 테마를 만들어 낸다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그 대립과 극복의 결과로 역사가 진보한다는 견해인데 변증법이라 하지 않고 ‘삼단계 대립 발전법’ 정도로 이름 붙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헤겔의 역사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이 단어의 뜻을 알아가는 것과 거의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어를 조합해서 헤겔의 생각을 비슷하게 담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조합 자체가 헤겔에 대한 특정 해석을 담고 있을 테니까. 전문용어는 그 자체로 상당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전에 없던 새 개념을 기존의 용어로 표현하면,기존 용어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신이 알던 것과 혼동한다. 그래서 용어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수학에서 새로운 용어는 꼭 ‘정의’부터 하고 시작한다. 그 용어가 일상어라 하더라도 수학에서의 의미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다. 아이들은 최소한의 어휘로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교육의 과정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과 이를 표현하는 새로운 어휘를 습득해서 자신만의 사전을 두껍게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학문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분야의 용어를 습득하는 것과 유사하다. 용어를 아는 것은 그 개념을 이해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학에서도 전문용어를 분석해 보면 역사적 배경과 뜻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정수의 비율로 표시되는 수를 왜 합리적인 수 즉 유리수라고 부르게 됐을까? 영어에서 비율을 뜻하는 ratio와 합리적인 것을 뜻하는 rational은 모두 그리스어 logos에서 유래했다. 자연수를 합리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서 얻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logos로 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리수 집합을 비율(quotients)을 의미하는 Q로 표시하곤 한다. 제곱해서 2가 되는 수는 유리수가 아니라는 걸 중학교에서 배운다. 자연수의 비율로는 안 되고 ‘x의 제곱은 2’ 같은 대수방정식을 풀어야 얻어지는 게 무리수인 건데,이런 과정을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았으니 irrational number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피타고라스는 양 변의 길이가 1인 직각삼각형으로부터 빗변의 길이가 무리수가 나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아주 힘들어했다. 정수의 완전함에 매료되어 협화음의 원리조차도 정수비율로 이해했던 피타고라스에게 존재하면 안 되는 숫자가 출현한 것이니,지적 성찰의 대혼란이었을 것이다. ‘기하(幾何)’는 ‘몇 기’와 ‘어찌 하’의 결합이라서 양주동 선생의 수필 ‘몇 어찌’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양주동 선생은 한학을 공부하다 늦은 나이에 서양 학문을 공부하게 됐는데 그 초입에서부터 기하,즉 ‘몇 어찌’라는 엉뚱한 과목을 배우게 됐으니 날벼락이었다. 기하는 영어 geometry를 음차한 용어라서 한자의 뜻으로 이해하려 하면 안 되는 것을 몰랐던 탓이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의 ‘땅’과 ‘측량’한다는 단어의 결합어라서 모양을 다루는 분야를 말한다. 그래도 양주동 선생은 ‘몇 어찌’를 이해하려고 몇 날 며칠을 밤새우다가 그 논리성과 명징성에 반하고는 유클리드의 세계라는 신세계를 발견한 벅찬 마음을 수필로 적어 남겼다. ‘함수(函數)’는 ‘상자 수’라는 뜻의 난해한 용어이다. 그런데 함수의 영어 표현인 function은 더 어렵다. 그 일상적 의미인 ‘기능’은 수학에서의 의미와 다르다. 오히려 상자라는 뜻의 한자 표현은 뜻이 통한다. black box를 예로 들어,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것이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상자로 표현한다고 설명하면 아이들도 이해한다. ‘소수(素數)’는 화학의 원소(元素)처럼 ‘근본적인 수’라는 뜻의 한자어인데,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정수다. 5는 소수이지만, 6은 아니다. 영어로는 prime number인데 이게 왜 ‘주요 수’라고 불릴까? 초등학교에서 모든 자연수가 이 소수들의 곱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걸 배운다. 소수가 자연수 구성의 주요 요소 역할을 하니까 주요 수라고 불리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개념을 ‘소인수 분해’라고 가르친다. 자연수를 ‘소수의 인자로 나눈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prime factorization, 즉 ‘주요 분해’이다. 우리말 ‘소인수 분해’가 영어 표현보다 훨씬 더 의미가 분명하다. 아이들에게 생소한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런 개념이 아이들의 지적 우주에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런 단어를 단어장에 추가하면서 아이들은 인류 문명사의 성취를 조금씩 습득해 나간다. 현재 초·중등 수학 교육에서는 수학 용어의 어원이나 수학의 역사를 다루지 않는다. 여러 수학 개념이 출현한 시대적 배경을 교육 과정에 반영하면 문제만 풀던 아이들은 그 개념들의 상호연계와 출현의 필연성을 이해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역사나 철학 과목과 밀접하게 결합하면 최상일 것이다. 플라톤은 가르치는데 유클리드는 적당히 넘어가는 게 문명사에서의 무게에 비추어 정당한가? 살면서 다시 보지 않을 이상한 공식들을 외우라고 다그치는 대신,기본적인 정의와 개념만으로 문제를 풀도록 하면 좋다. 물론 풀이과정을 평가하는 서술식 평가는 기본 전제다. 터무니없이 꼬인 문제들을 유형별로 반복해서 풀게 하는 것은 수학 교육의 목표인 논리적 사고와 문제해결 능력의 습득에 합치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고등학생 60%가 수포자’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여러 곳에 나더니,이에 화답하듯이 초·중등 수학교육 과정이 크게 바뀐다는 발표가 있었다. 가르치는 내용을 20% 삭감한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는데 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하고 포기까지 하는 이유가 내용이 많아서라는 판단 탓이리라. 현황 파악은 정확하나 결론은 비논리적이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못 가르치고 문제만 들입다 풀게 하는 어른들 탓인 것을 애써 안 보려 한다. 내용을 아무리 줄여도 문제만 반복해서 풀게 하면 여전히 재미없고 싫은 과목이 수학인데. ‘교육’이 무엇인가. 인류 문명사의 쌓인 지식 중에 아이들의 미래에 꼭 필요할 만한 것을 골라서,그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그렇게 고른 것에는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그중에 쉬운 것만 가르치자는 주장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아이들이 인생에서 ‘성취할 수도 있었을’ 거대한 가능성을 송두리째 뺏어버리자는 폭력적 주장이다. 어려운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건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 내용이 문명사에서 필연적으로 출현한 배경,그게 왜 아이들의 미래에 중요할지,그걸 알면 펼쳐질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교육 시스템이다. 수학 숙제, 문제만 잔뜩 풀게 하지 말고 ‘미적분 출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에세이를 제출하라’거나,‘나이팅게일의 야전병원 사망 원인 분석의 타당성을 논하라’ 같은 걸로 바꾸자.‘유클리드 기하학의 한계를 파스칼은 어떻게 극복했는가’ 같은 주제는 어떤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에세이 채점에 어문계 교사들이 참여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 교사들의 행정 부담이나 시수 경감을 통해서 과중한 부담 없이 새로운 평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해야 한다. 수학은 독서와 작문 과목이 될 수 있다. 수학의 역사성을 ‘난해함의 원흉’이 아니라 ‘생각을 채우는 글쓰기의 보물창고’로 바꾸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Munhwa ☜        박형주 포스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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