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수학 이야기

1 수학의 기원과 진화

浮萍草 2015. 6. 15. 09:14
    文字도 언어도 없던 기원전 2만2000년… 태초에 ‘셈’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천재가 아니다. 다만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고 말했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듯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 중 하나가‘지적 호기심’이다. 자연계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기본 원리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이 과학을 탄생 시키고 발전시켜 왔다. 인문학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열정을 배우는 학문으로 일컬어진다. 문화일보는 매주 ‘지식카페’를 연재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지식카페’에서 풀어놓을 수학·물리학·건축·역사 등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가 독자 여러분을 흥미진진한 지식의 향연으로 초대할 것이다.
    ▲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집트의 피라미드 등 인류가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룩해놓은 모든 위대한 문명의 유산 배후에는 ‘수학(數學)’이 보이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픽 = 하안송 기자 song@munhwa.com

    ▲  기원전 2만2000년 추정 ‘이샹고의 뼈’. 당시 인류가 기본적 연산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자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던 때,그래서 기록된 역사가 남아 있지 않은 시대를 선사시대라고 한다. 기원전 5000년에 문자가 발명되었으니 그 이전 선사시대 인류의 모습은 다양한 고고학적 출토품을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에서 예술의 개념은 언제쯤 출현했을까? 기원전 2만5000년 정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고고학적 출토품에 그 단초가 보인다. 이 출토품은 길이가 11㎝ 정도의 작은 여인상으로 얼굴은 분명하지 않고 가슴과 엉덩이는 크다. 부족의 생존을 위해 다산(多産)이 중요하던 시기라서 그 소망을 표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출토품을 보면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의 인류도 개인이나 집단의 뜻과 기대를 상징을 통해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존의 절박한 필요에서 예술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출현했다는 것이다. 조각이나 벽화 등의 시각적 예술과 함께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려는 청각적 예술,즉 음악의 존재도 4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동물뼈로 플루트를 만들어 연주했음을 입증하는 출토품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소리를 통해 뜻을 표현하는 음악의 장구한 역사를 보여준다. 그럼 인류는 언제쯤 수학을 발견했을까? 기원전 2만200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샹고(Ishango) 뼈에는 세로줄이 많이 표시되어 있어서,당시 인류가 사냥감의 수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기본적 연산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인류가 먹고살기 위해 사냥을 하면서 사냥한 동물의 수를 파악하고 종족의 겨울나기에 충분한지 판단해야 하는 과정에서 셈의 개념이 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자보다도 먼저, 어쩌면 언어보다도 먼저,예술과 셈과 수는 이렇게 인류 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시작된 수학은 고대 문명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관찰되는 건축의 수학은 건물의 안전성과 미학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최적의 비율을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의 이라크 근처인 바빌로니아는 유럽과 아프리카 및 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교역의 요충지여서 자연스럽게 상거래의 수학이 발전했다. 많은 물품의 물물교환을 다툼 없이 처리하려면 상당한 수학이 필요했던 때문이다.
    ▲  음악에서 단순음을 합쳐서 합성음을 만드는 것은
    수학에서 함수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
    이러한 수학을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다 놓은 것은,추상화와 공리화를 통한 사유체계를 만들어낸 고대 그리스 문명이었다. 이 사유체계는 르네상스를 통해 중세로 이어지며 서양 지성사의 핵이 되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인쇄되고 읽혔다는 책이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이다. 이 책에서 관찰되는 논리의 전개 방식은 서양 문학과 철학의 도처에서 관찰되는데 스피노자의 윤리학이나 미국의 독립선언서도 이 범주에 속한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초입에“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 들이는“공리”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추론의 과정을 밟은 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이 글은 유클리드적 명징성의 예로 손색이 없는 명문이다. 실용적 측면이 강했던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수학 이후에 사변적인 그리스 수학이 출현한 것은 실용성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변증법적 대립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실용의 세계에만 머물러서는 그로부터 일반적 원칙을 깨달아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지적 작업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하이데거는 기술을 일컬어 ‘존재를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자원으로 만드는 의지’라고 했다. 이의 구현을 위해서 추상적인 일반화와 지적 추구 과정을 동반하는 과학이 발전한다고 했는데,이 과정은 수학의 역사에서 실제로 관찰된다. 아테네 중심의 그리스 문명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 이후인 기원전 30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로 본거지를 옮긴다. 소위 헬레니즘 시대로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시대에는 추상적이던 그리스 수학도 지구의 지름을 재고 달 까지의 거리를 재며 항해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실용적 성과를 낸다. 실용과 추상의 변증법적 합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적 사유체계는 중세 이후에 그 실체적 힘을 입증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식민지 확보가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던 시절에는 항해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는데, 삼각 함수론이 출현해서 바다 한가운데서 배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20세기 후반에 GPS 데이터로부터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일상화된 것도 그래프 이론이 발전하며 딕스트라의 알고리즘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농사와 계절 예측의 필요는 천체의 운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뉴턴은 미적분학을 만들었다. 당대의 혁신이라 부를만한 이러한 사건들은, 인류가 추상적 사유의 단계로 가지 못하고 실용적 수학에만 머물렀다면 아마도 이루지 못했거나 훨씬 더 시간이 걸렸을 일들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과 수학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진화해 왔다. 기하학을 숭상했던 플라톤은 음악이 인간을 고양시키고 고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고 했다. 소리가 합쳐져서 협음이 되거나 불협화음이 되는 불가사이에 매료된 이가 인류 역사에서 어찌 한둘일까?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어느 날 대장간을 지나다가 우연히 청량한 화음을 만드는 쇠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이 비밀을 깨달았다고 한다. 현악기의 길이에 따라 서로 다른 높이의 음이 나옴을 관찰한 그는,현의 길이가 정수배가 될 때 협음이 생기는 비밀을 알게 된 첫 사람이 되었다.
    그가 이 발견에 기초해서 만든 피타고라스 음계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의 음계와 흡사하다. 오늘날 서양 음악의 음계는 18세기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만들어서 300년 가까이 사용해온 것이다. 바흐는 반음이 올라갈 때마다 음 높이가 지수 승으로 올라간다는 수학적 사실의 기초 위에서,어떤 음에서 시작해도 완벽한 한 옥타브를 만들 수 있는 음계를 만들어 냈다. 19세기의 프랑스 수학자 푸리에는 복잡한 소리도 단순한 음들로 쪼갤 수 있다는 수학이론을 전개해서 드디어 음의 모든 비밀을 푼 사람이다. 단순음이란 하나의 음높이를 갖는 소리인데 악기 조율에 사용하는 소리굽쇠 소리를 연상하면 된다. 이 소리의 진동을 기록해보면 주파수가 하나인 사인함수가 된다. 소프라노의 소리는 단순음에 가깝지만 바리톤은 단순음 여러 개가 합쳐져 있다. 두 개의 단순음이 합쳐져서 합성음을 만든다는 것은 수학적으로는 사인함수 두 개를 합쳐서 복잡한 함수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 오늘날 악기를 평가하고 분석하거나 음향기기를 제작할 때 모두 푸리에의 수학 이론을 사용한다. 단순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플루트와 여러 배음이 합쳐지는 오보에 등 서로 다른 악기들의 음질 차이도 푸리에의 음 쪼개기로 설명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를 역으로 재구성해서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내는 전자악기와 훌륭한 디지털 앰프도 만들어 낼 수 있게 됐다. 미술도 수학과의 교류를 멈추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고대 그리스의 판테온 신전뿐 아니라 16세기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도 수학적 비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슬람은 인체를 그리는 것을 금기시해서 이슬람 사원에서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을 많이 사용했고 10세기경에 이슬람 수학자들은 평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타일링을 분류할 정도로 기하학을 발전시켰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을 시험에 빠트리기도 했다. 평행한 두 선분은 만나지 않아야 하는데, 철로는 저 멀리서 만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세 유럽의 미술가들은 원근법을 만들어내어 한계극복에 성공 했고, 이는 역으로 수학에 큰 영감을 주어서 17세기 파스칼이 사영기하학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했다. 물리적 세계의 불완전함 이면에 있는 질서를 찾고 수학적 단순화 과정을 거쳐 대칭과 조화를 표현하는 일에 매료된 수학자들은 역사의 도처에서 관찰된다. 우아함과 완전함에 대한 열망은 추상과 사변의 옷을 입고 나타나지만,베이컨과 데카르트가 외쳤던 자연정복의 열망 또한 실용의 모습으로 곳곳에서 출현하며 대립하곤 한다. 그리스적 수학과 바빌로니아적 수학은 각각 진화된 모습으로 21세기에도 대립하고 융합하며 인류의 진보를 이끌고 있으니,실용과 추상의 변증법은 고대부터 현재 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ㆍ박형주
    △ 1964년 충남 부여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 △ UC버클리 수학과 이학박사 △ 오클랜드대 수학과 교수 △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 포스텍 수학과 교수 △ 2014년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유치위원장 △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 △ 국제수학연맹 집행위원(임기 4년)

    Munhwa ☜        박형주 포스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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