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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만 원유 유출 5년, 생태계 살아났나?

浮萍草 2015. 7. 6. 21:53
    사고 낸 석유회사는 21조 원 배상하기로
    2010년 4월 20일 딥워터호라이즌호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해저의 원유가 유출되기 시작했다. 두 달이 넘은 6월 26일의 상황으로 여전히 원유와 함께 유출되고
    있는 가스를 태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2007월 12월 11일,당시 ‘과학동아’ 기자였던 필자는 동료 기자와 함께 차를 몰고 충남 태안으로 취재를 떠났다. 태안반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창문을 내리자 마치 주유소에 온 것 처럼 기름냄새가 풍겼다. 유조선이 좌초돼 기름이 흘러나온 지 4일이 지난 시점임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만리포 해변의 바닷물에는 황갈색 기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고 모래사장 여기저기에 시커먼 기름덩어리가 엉켜 있었다. 취재할 생각도 잊고 멍하니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던 필자의 머릿속에 뜬금없이 엔트로피가 떠올랐다. 유리잔에 담긴 맹물에 검은색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마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잉크가 서서히 퍼져나가다 결국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물론 물은 더 이상 무색투명하지 않다. 여기서 아무리 기다려도 분산된 잉크가 다시 모여 잉크방울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지금 바다와 모래사장을 뒤덮은 이 기름을 나흘 전 유조선 탱크 안에 모여 있는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 2007년 12월 7일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가 대형 해양 크레인선과 충돌하면서 유출된 원유의 양은 1050만 리터에 이르렀다.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태안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제는 그런 사고가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완전히 회복됐다고 한다. 8년 전 광경이 눈에 선한 필자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이게 바로 세월의 힘인가.
    ㆍ87일 동안 유출돼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있고 2년 4개월 뒤인 2010년 4월 20일 미국 남동부 멕시코만 해안에서 석유시추시설인‘딥워터호라이즌’호가 폭발하면서 근로자 11명이 사망 하고 파이프가 절단되면서 시추 중인 원유가 유출되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유출은 1500미터 해저에서 일어난 일이라 사람이 접근하지 못해 기름 유출을 막는 데만 87일이 걸렸다. 정확한 유출량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5억1800만 리터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안 유출량의 50배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다. 이 사고로 충청북도 면적에 가까운 6500㎢가 기름에 오염됐고 이 일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물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커다란 펠리컨이 기름을 뒤집어쓴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워낙 피해지역이 광범위해 플로리다 주를 비롯해 루이지애나 주, 미시시피 주, 텍사스 주, 앨라배마 주 등 멕시코만 인근 5개 주가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지난 7월 2일 딥워터호라이즌 석유시추 사업의 주체인 영국 최대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이하 BP)가 5년 전 원유유출과 관련해 미 연방정부와 5개 주정부에 무려 187억 달러(약 21조 원)의 배상금을 주기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사고관련 배상금으로는 최대 규모다. 웬만한 대기업의 1년 매출액보다도 많은 배상금을 감당하겠다는(물론 일시불은 아니다) BP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회사인가라는 생각도 든다(알아보니 2014년 매출이 우리나라 한 해 예산과 맞먹는 3587억 달러다!)
    ㆍ여기저기 회복기미 보여
    기름을 뒤집어쓴 부비새를 씻기는 장면. 멕시코만
    기름유출로 새들도 수난을 당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학술지‘사이언스’4월 3일자에는 딥워터호라이즌 원유유출 5년을 맞아 여덟 쪽에 걸친 특집기사가 실렸다. 사고 당시 유출돼 바다 위에 떠오른 원유를 태워 없애는 항공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어 여전히 타격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생태계 복원력이 놀랍다는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원유유출 이후(After the Oil)’이라는 제목 아래 부제에 있는‘미묘한 상흔을 남겼다(has left subtle scars)’ 는 문구부터가 그렇다. 기사는 린다 후퍼-부이라는 곤충학자가 당시 오염이 심각했고 여전히 기름의 흔적이 남아있는 루이지애니 주 바라타리아만의 연안 습지대를 돌아다니며 생태조사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풀을 뽑아 자세히 들여다보자 기름유출 직후 사라졌던 개미들이 다시 나타났다. “개미가 돌아와 정착하는 모습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멋진데요.”후퍼-부이가 흥분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후퍼-부이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이 바라타리아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 많은 사실이 밝혀졌는데 기사에서는 이를 12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토양미생물의 경우 오염 직후에는 급감했지만 이제는 구성이 바뀐 상태다. 즉 기름을 먹는 박테리아가 늘어났다. 다만 이런 변화는 습지의 파괴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급감했던 개미가 다시 돌아오는 조짐을 보이는 것이고 달팽이도 마찬가지로 급감했다가 회복 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기름으로 식물 뿌리가 손상되면서 습지가 파괴됐지만 이제는 회복되고 있다. 한편 기름유출로 모든 생물종이 타격을 입은 것 같지는 않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즉 블루크랩이라는 게는 사고이후에도 개체수가 감소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새우류는 사고 이후 오히려 개체수가 늘었다고 하는데 명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한다. 한편 해양플랑크톤 역시 대부분 원상을 회복했다고 한다. 기름유출 직후 펠리컨 수천마리가 죽었지만 현재는 개체수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한다. 연안에 사는 킬리피쉬라는 작은 물고기의 경우 독성화합물에 노출됐음에도 개체수에는 눈에 띠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기름 유출사고 이후 해안의 화합물 변화를 추적해오고 있는 루이지애나주립대의 화학자인 에드 오버톤은 기름 속의 독성화학물질이 수년 동안 잔존할 수 있지만“큰 틀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의 능력이 놀랍다”며“영구적인 손상을 발견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ㆍ폐와 신장에 치명적 손상
    오버톤은 지나친 낙관주의자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사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5년 전 사고 당시에는 예상하기 어려웠을 회복세에 대한 놀라움이 느껴진다. 여기에는 지리적 요인이 역할을 했을 것이다. 즉 1989년 미국 알래스카 해변을 오염시킨 액손발데스 유조선 침몰사고의 경우 원유유출량은 10분의 1도 안 되는 4200만 리터였지만 추운 지역이라 기름이 분해가 잘 안 돼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면 우리나라 태안이나 멕시코만은 따가운 햇빛이 기름을 분해하고 미생물이 활발히 먹이로 삼으면서 빠른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기름유출로 큰 피해를 본 생물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큰돌고래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기름유출로 상황이 악화된 것만은 분명하다. 가끔 해외뉴스에 나오듯이 고래들이 뭍으로 올라와 죽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 지역에서도 최근 수년 사이 1250마리가 넘는 돌고래들이 이렇게 죽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유출사고 수개월 전인 2010년 초다. BP가 돌고래 죽음과 기름유출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즉 적조가 내보내는 브레브독소 흡입과 개홍역바이러스 감염 등이 원인이라는 것.
    연구결과 멕시코만 기름유출로 특히 돌고래가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름 띠 옆에서 헤엄치고 있는 줄무늬돌고래 무리.
    -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제공

    그러나 유출사고 이후 이런 식으로 죽는 돌고래의 숫자가 4배가량 늘었고 사고 이듬해 죽은 채 떠밀려온 돌고래 새끼 숫자가 평년의 10배에 이르는 등 정황은 그렇지 않다. 학술지 ‘플로스원’ 5월 20일자에는 이와 관련해 돌고래의 죽음이 기름유출과 관련돼 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2010년 6월에서 2012년 12월 사이 오염 지역에의 해변에서 죽은 채 발견된 큰돌고래 46마리와 대조군인 비오염 지역에서 죽은 돌고래 106마리를 비교한 결과 건강 상태가 확연이 달랐던 것.즉 오염지역의 돌고래 가운데 22%가 세균성 폐렴을 앓고 있었던 반면 대조군은 2%에 불과했다. 또 부신피질이 위축돼 있는 경우는 33%에 달해 대조군의 7%보다 훨씬 더 높았다. 결국 해양포유류인 돌고래가 기름에 노출되면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고 볼 수 있다. 돌고래뿐 아니라 많은 생물들이 큰 타격을 입었겠지만 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할 뿐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여전히 3200평방킬로미터가 넘는 해저에 기름이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 원유유출사고 이후 BP는 지금까지 54억 달러를 내놓았다. 이 가운데 44억 달러는 환경복원에 쓰였고 1억 달러는 과학자들의 연구비를 대는데 들어갔다. 이번에 187억 달러로 배상금이 확정됐으니 앞으로 133억 달러가 더 들어올 것이다. 사고는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돈으로 환경복원과 생태조사를 제대로 해내 인류의 교훈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Dongascience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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