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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의 대가는 정신질환?

浮萍草 2015. 6. 22. 10:13
    창조성과 정신질환, 유전적 관련성 밝혀져
    
    어느 정도 광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위대한 천재는 없다.
     - 세네카
    지난 5월 23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존 내쉬는
    22세 때 훗날 노벨상을 받게 되는 게임이론을 만든
    천재 수학자였지만 31세에 정신분열증이 발병해 오랫
    동안 고생했다.내쉬의 삶을 그린 영화‘뷰티풀 마인드’
    의 한 장면. - 드림웍스픽처스 제공
    재 수학자 존 내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인명은 재천’이라는 옛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1950년 22살 때 발표한 게임이론으로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내쉬는 수학분야의 노벨상이라는 아벨 상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내 알리샤와 함께 노르웨이를 방문해 상을 받고 귀국해 택시를 타고 자택으로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두 사람 다 목숨을 잃었다. 87세 고령으로 직접 운전하는 게 부담스러워 프로운전자의 서비스를 이용한 것일 텐데 결과는 끔찍했다. 뉴욕타임스의 기자 실비아 네이사가 쓴 내쉬의 전기 ‘뷰티풀 마인드’가 2002년 영화화되면서 내쉬는 대중 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구체적인 설정은 다르지만 영화에서처럼 내쉬는 정신분열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다 간신히 회복했다. 내쉬는 1959년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강연을 하다가 횡설수설해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고 그해 입원했다.
    ㆍ예술가의 게놈은 뭔가 다르다
    내쉬처럼 정신질환을 동반한 천재는 사실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질환은 천재가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천재와 광기’를 다룬 책들도 여러 권 나와 있다. 이 가운데 1995년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아놀드 루드비히가 쓴 ‘천재인가 광인인가’는 이 문제를 통계적으로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1800~1949년 태어난 저명인사 1004명을 선정한 뒤 이들의 삶을 추적해 정신건강과 창의성이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를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저명인사 가운데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 같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꽤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흥미롭게도 선정된 저명한 자연과학자(39명)는 자살률이 다소 높은 걸 빼고는 정신적 문제는 특별히 두드러 지지 않았다. 저자는 성공한 음악가와 미술가 작가들에서 일생동안 정신질환을 겪은 비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여러 설명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창의성과 정신질환이 겹치는 면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으면 삼류밖에 되지 않는 예술 분야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창의성이 성공의 주요 요인이다. 창의성은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의미하고 이는 곧 정신분열증 같은 질환의 초기 증세와 같은 맥락 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창의성과 정신질환의 관계를 겸상적혈구빈혈에 빗대어 설명한다.
    부모 양쪽으로부터 겸상적혈구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심각한 빈혈로 고생하지만 한쪽만 받으면 가벼운 빈혈을 겪는 대신 말라리아에 대한 저항성을 보인다. 창의성과 조울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저자는“가벼운 형태의 조증에서 거침없는 아이디어,빠른 사고, 정신적 유쾌함, 고조된 기분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며“조증이 가벼운 형태일 때는 창의성과 일의 성과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이익을 준다”고 설명했다. 한편 예술가들의 친인척을 조사한 결과 이들에게서도 정신질환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정신질환은 유전적 요인이 상당히 작용할 거라는 말이다. 결국 개인의 창의성도 게놈에 어느 정도 판이 깔려야 발휘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 6월 8일자 온라인판에는 정신분열증과 조울증에 대한 유전적 위험성 수치가 창의성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아이슬란드의 바이오벤처 디코드미 제네틱스를 비롯한 14개 기관의 공동연구자들은 아이슬란드인 8만6292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이런 결과를 얻었다. 이 가운데 정신분열증이거나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사람은 583명, 조울증은 500명이었다. 한편 배우나 댄서, 음악가, 시각예술가, 작가 등 예술단체에 가입한 사람은 1024명이었다. 즉 평균과 비교했을 때 정신질환인 사람과 예술가 사이에 공유하는 어떤 유전적 변이가 있는가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연구를 위한 기본 자료는 지난해 ‘네이처’에 발표된 정신분열증 유전적 위치(genetic loci) 연구결과와 2011년 ‘네이처 유전학’에 발표된 조울증 연구결과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인 사람들의 게놈을 대조군인 사람들의 게놈과 비교한 결과 유의미하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이들 질환의 유전적 요인이라고 알려진 게놈 정보만 분석해도 그 사람의 발병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학술지‘네이처’2014년 4월 3일자는 정신분열증의 최신 연구결과를 특집으로 소개했다.특집 표지를 그린 수 모간은 20년째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데 현재 많이
    나았다고 한다. 화가는 이 그림에서 뇌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한다. - 네이처 제공

    이 기준을 예술가 1024명의 게놈 데이터에 적용한 결과 정신분열증과 조울증 모두에서 역시 대조군과 차이를 보였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에 걸릴 위험성의 관점에서 창의적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이들 질환을 앓은 사람들의 중간에 있다”고 설명했다. 즉 창조적인 사람들이 유해한 생물적, 환경적 요인을 만나면 이런 정신질환이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건 창의성의 전제 조건”이라며“정신분열증과 조울증은 사고와 정서의 장애로 역시 인지처리와 감정처리에서 일탈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적 원인으로 뇌회로가 뭔가 다른 사람들이 잘 풀리면 성공한 예술가가 되고 안 풀리면 정신질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유전적 변이가 뇌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ㆍ논문보고 7000억 원 기부하기도
    이번 연구의 기본 데이터를 제공한 논문 두 편 가운데 지난해 ‘네이처’에 발표된 정신분열증 관련 게놈연구를 보자. 정신불열증이 유전적 소양이 크다는 건 일란성쌍둥이 연구 등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정신병 유전자’를 찾는 연구는 오래 동안 금기시돼 있었다. 1970년대에는 정신질환의 생물학적 원인을 거부하는 반정신질환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즉 환경이 나빠 정신에 병이 왔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구의 1%가 겪는 질병임에도 지난 60년 동안 새로운 치료제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의학에 진척이 없자 마침내 과학자들은 ‘정신질환게놈컨소시엄’을 구성해 정신분열증을 비롯한 여러 정신질환에 대해 이에 관여하는 유전자 사냥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연구 방법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일반인과 환자의 게놈을 비교분석해 환자 집단에서 유의적으로 나타나는 단일염기다형성(SNP) 자리를 찾는 작업이다. 지난해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유전적 위치 108곳에서 128개의 SNP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108곳 가운데 75%는 유전자 자리에, 8%는 유전자와 2만 염기쌍 이내의 위치에 존재했다. 그리고 유전자의 상당수는 예상대로 뇌의 활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정신분열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도파민 시스템의 이상이 꼽히는데 실제로 도파민 수용체인 DRD2를 비롯해 뉴런의 신호전달과 시냅스 가소성에 관여하는 유전자(GRM3, CRIN2A, SRR, GRIA1)에서 변이가 관찰됐다. 또 칼슘채널과 관련된 유전자들(CACNAC1C, CACNB2, CACNA1I)도 명단에 올랐다. 흥미롭게도 면역계와 관련한 유전자 두 개가 강한 관련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자가면역증 같은 면역계 이상이 정신분열증과 관련이 있다는 임상사례를 뒷받침하는 결과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미국의 사업가인 테드 스탠리는 연구를 격려하며 연구를 이끈 미국 브로드연구소에 무려 6억5000만 달러(약 7000억 원)를 기부하기로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액수는 개인이 기부하는 연구비로는 최대 규모다. 스탠리는 1988년 대학을 중퇴한 아들이 조울증으로 뉴욕에서 난동을 부리다 체포돼 3년간 치료를 하는 경험을 한 뒤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비를 지원해왔다. 그런데 예술가만큼이나 과학자도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인데 왜 과학자들의 정신은 멀쩡한 걸까(물론 통계적인 관점에서). 이에 대해 아놀드 루드비히는 책에서 그럴듯한 설명을 한다. 즉 예술은 개인의 개성이 중요하고“자신들의 감정적 혼란으로부터 영감을 얻기 위해 내면으로 돌아서서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지만 과학의 영역에서는 이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한다. 발단은 기발한 아이디어일지라도 논리적 정교함과 객관적 증거가 따라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귀를 자르는 자해를 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그린 고흐의 그림(붓터치만 봐도 광기가 느껴진다)은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꼽히는 반면 정신 분열증을 앓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내쉬는 교단에서 쫓겨나고 노벨상도 병에서 회복한 뒤에야 수여된 이유다. 그러고 보면 위대한 예술가보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Dongascience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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