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Her Story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

浮萍草 2015. 5. 27. 18:45
    한비야 “오지여행 하지만 지독한 ‘길치’”
    “잘못 간 곳 주민과 情 나누기도”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은 삶의 모토는“즐겁고, 자유롭게,기왕이면 남 도와주면서”라며 두 손이 있는 것은 한 손은 자신을 위해 다른 손은 다른 사람을 위해
    쓰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른셋,승진을 앞두고 어릴 때부터 계획했던‘육로 세계 일주’를 떠나 6년간 60여 개국 오지를 걸었고,마흔둘,국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에 들어가 긴급구호 팀장으로 전 세계 재난 현장에서 일했다. 마흔아홉,보다 많은 사람이‘나의 꿈’을 넘어‘우리의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라며 세계시민학교를 열었다. 쉰둘,국제구호 현장과 정책을 잇기 위해 유학을 떠나 미국 터프츠대 플레처스쿨에서 인도적 지원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일하며 1년의 반은 한국에서 반은 해외 현장에서 국제구호 전문가로 일하다 올해 쉰일곱,이화여대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대학생이 존경하는 인물 1위. 바람의 딸 한비야 국제구호 전문가 겸 세계시민학교 교장이다. 지난 22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남들은 한 개 갖기도 어려운 이력과 직함을 여러 개 지닌 성공한 사람,유명한 사람으로서 또 하나의 인터뷰를 보태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인생 패키지론’을 내놨다. 유명해지면 유명세가 패키지로 따라오듯 모든 인생은 ‘패키지’이고 그 안에는 화려한 것과 후진 것들이 뒤섞여 있다고 했다. 남들 눈엔 화려한 것만 보이겠지만 자기 삶 또한 그런 패키지라는 그는 요즘 들어 자신의 소명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긍정 에너지를 나눠주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도 그런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 어떻게 지내는지.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 국제구호 전문가, 세계시민학교 교장, 또 작가로 일하고 있다. 풀타임 박사 과정으로 3과목을 배우고, 학부에서 ‘국제구호와 개발협력’이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강의나 특강을 하며 사람들의 검증을 거쳐 다시 글로 정리한다. 글과 말, 배움과 가르침은 그렇게 돌아간다. 그래도 놀 시간은 있다. 미리 빼놓는다. 시간은 만드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산에 가고, 2주일에 한 번은 야영을 간다. 사람들이 밥 안 먹으면 못 살듯 나는 산에 안 가면 안 된다. 또 학교에 오면 무조건 40, 50분 산책하고, 본관 기도실에 가서 기도한다.” 그는 모두가 소중한 일이지만 세계시민학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지도 밖 사람들까지 내 이웃으로 생각하는 세계 시민의식을 가르치는 이 학교엔 현재 강사 600여 명이 네트워크를 이뤄 1년에 50만 명을 가르치고 있다. ― 박사과정은 주변에서 모두 말렸다면서요. “사서 고생한다고 다들 말렸지만 현장에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좋은 구호가 되려면 현장 활동만으론 안 된다. 현장, 학계, 정책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난민들 겨울나기만 해도 겨울마다 현장에서 텐트와 담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나기에 대한 학계 이론이 만들어져 모든 난민촌에 정책적으로 실행돼야 한다. 사막에 눈병이 돌 때 현장에서는 안과 의사를 보내 달라고 하지만 학계는 원인을 추적해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면 우물을 파거나, 위생교육을 하는 지원 정책이 이뤄진다. 내 박사과정 연구 주제는 ‘구호와 개발의 연계점’이다. 우리가 도와주는 나라의 60% 이상은 재난에 취약한데,그곳에서도 재난이 벌어지면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지역 개발협력을 통해 병원을 만들고, 학교에 오도록 해 지역에서 근본적으로 재난에 대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 최근 네팔 지진 현장에는 다녀왔는지. “가지 못했다. 자연재해 직후 구호활동에 나까지 나서지 않아도 된다. 만약 이라크에 일이 벌어져 미군과 영국군에 대한 현지 감정이 좋지 않을 경우 이들이 구호팀을 이끌기 어렵다. 그럴 때 동양인 여성이 필요하다. 가장 최근 다녀온 곳은 ‘하이옌’ 태풍 마무리 작업 중인 필리핀이다. 원래 터키의 시리아 난민촌에 갈 예정이었는데, 출발 직전에 유엔과 월드비전 사무실이 철수돼 필리핀으로 갔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구조활동은. “첫 해외 근무였던 2002년 아프가니스탄이 가장 어려웠다. 하지만 이 순간 가장 마음 아픈 곳은 이라크다. 2004년 전쟁 직후 모술에서 초등학생 7만여 명에 대한 식수 공급 작업을 했다. 그때 같이했던 아이들이 이제 청년이 됐을 텐데 모술이 이슬람국가(IS)에 장악됐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그 아이들이 IS 대원이 됐거나, IS로부터 도망 다니거나, 혹은 무더기로 잡혀 참수를 당한 건 아닌가 생각한다. 긴급구호 전문가로 국제사회가 잘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 고등학교 졸업 후 6년간의 사회생활, 오지 여행, 구호활동과 뒤늦은 공부까지.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적극적이다. 그 힘은. “내 인생의 3대 키워드는 세계 지도, 산 그리고 일기다. 세계 지도와 산은 내가 15세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주고 가셨다. 기자였던 아버지는 집 안에 세계 지도를 붙여놨고, 전 세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부터 세계로 나가는 꿈을 꿨다. 아버지가 5, 6세 때부터 산에 데리고 다녔는데, 산은 평생 나에게 혼자 걸으며 생각하게 했고, 작은 행복과 체력을 줬다. 일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께 칭찬을 들은 뒤 지금까지 쓰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했을 때 그때 진짜 일기를 많이 썼다. 엄마가 얼마나 속상할까 생각해 말 못하고, 친구들에게는 자존심 상해서 못하는 말들을 일기에 쏟아냈다. 지금 읽어도 짠하고, 열여덟, 열아홉의 한비야가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일기를 꼭 안아준다.” ―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했죠. “대학에 떨어졌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대학 안 가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오기도 있었다. 6년 동안 클래식 다방 DJ, 중·고등학생 과외 선생, 성당 아르바이트, 세무서 관공서 보조를 했다. 사람들이 함부로 반말을 했고,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너 까짓것 부잣집 재취로 가라는 말도 들었다. 한번은 ‘야’라고 부르길래 ‘제 이름은 야가 아니라 한비야입니다’라고 말해 잘릴 뻔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이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10대에 한 번 센 고생을 하고 나니 웬만한 것엔 맷집이 생긴다. 그러다 어느 날 고졸로 이렇게 부당하게 계속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졸업한 지 6년째, 5월도 넘었고, 돈도 없었다. 오로지 결심뿐이었다. 하지만 결심을 하고 시작하면 방법이 생긴다. 일단 하겠다고 결심하면 성공과 실패의 확률은 50대 50이다.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시작하지 않으면 성공 확률은 0%인데,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우는 순간 50%까지 올라간다.” ― 대단한 초긍정 마인드다. “나는 내가 굼벵이라면 타고난 단점인 느린 것은 통 크게 인정하고 대신 타고난 장점이 구르는 재주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거다. 난 지독한 길치인데, 오지 여행 할 때 길을 잃었기에 원래 가려던 이름난 동네 대신 평범한 동네에 들어가 순박한 사람들과 정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말이 빠른 것도 단점인데, 이 유전자에 저항하지 않고 대신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여고생 시절부터 30년 넘게 매일 시 한 편을 큰 소리로 읽고 있다. 덕분에 수백 편의 시를 외웠고, 시가 일상생활과 글에 자연스레 배어나 멋을 더해주고 있다.” ― 젊은이들에게 멘토로 꼽힌다.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찾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러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언제 기쁘고, 무엇을 할 때 최대치가 나오는지, 어떤 유형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우선순위가 생긴다. 만약 자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대신 생각해준다. 조금만 안 되면 포기하고 남탓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기 싫은 일도 할 수 있고, 버티는 힘도, 다른 것을 포기하는 용기도 생긴다. 어쩌면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세계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자. 못 갈 이유는 너무 많다. 직장 때문에, 돈 때문에, 이런 ‘때문에들’ 말고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 올해 초 낸 에세이집 ‘1그램의 용기’도 이런 의미인가. “원래 0.1그램의 용기로 하려 했는데 너무 작다고 해서 1그램으로 바꿨다. 누구나 할 수 있다와 할 수 있을까라는 가능성과 두려움 사이에 헤맨다. 과연 잘될까, 안 되면 어쩌지. 시간과 에너지는 어떻게 보상받나. 실패하면 또 얼마나 창피할까. 그러니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로 이어진다. 이럴 때 1그램만 보태면 하는 쪽으로 확 기운다.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으면 주변에서 1t을 들어부어도 안 된다.” ― 삶에 만족하는가. “만족한다. 유명하고, 책도 많이 팔리고, 그래서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선택한 길들도 비단길이 아니었다. 다행히 시대와 궁합이 잘 맞았다. 내 삶의 모토는 즐겁고, 자유롭게, 기왕이면 남 도와주면서이다. 그런데 남 도와주는 일이 직업이니 행복하다. 혼자 산다고 외롭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당연히 외롭다. 하지만 미혼이라서 더 외로운 것은 아니다. 모두의 삶은 패키지, 희로애락의 패키지다.” ―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다 “그렇다. 하지만 가슴 뛰는 일이 꼭 직업일 필요는 없다. 나만 해도 구호활동 외에 산이 가슴 뛰게 한다. 내가 아는 백두대간 가이드는 자동차 수리공이다. 평일엔 자동차 수리를 하고, 주말엔 백두대간에 오른다. 그는 자동차 수리공으로 유명해질 생각은 없지만 최고의 백두대간 가이드이다. 우리 성당 할머니는 청소부인데, 성당에선 대장이다. 종교 생활하고. 봉사하는 것이 할머니에겐 가슴 뛰는 일이다. 작은언니는 간호사인데 주말엔 호스피스를 한다. 직업적 성공이 성공적인 삶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삶의 지평이 넓어진다.” ― 120세까지 계획을 세워뒀다고 들었다. “계획 세우기를 좋아한다. 일단 결심하면 자세한 계획을 세운다. 일주일, 한 달, 1년, 10년 단위 계획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막 이야기하고 다닌다. 지금은 환갑 전에 박사 학위를 받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60세에 공부 마치면, 65세까지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 70세까지는 현장, 학계, 정책을 연결해 일하고 싶다. 그다음은 사실 잘 모른다. 숲 해설가, 호스피스를 하고 싶고, 영성이 많이 들어간 전업 작가도 되고 싶다.” 날 비(飛), 들 야(野)의 한비야. 세례명을 한자로 옮겨 주민등록에 올린 이름인데 거친 세상을 누비는 그의 삶을 말하는 듯하다. 그의 첫 책 제목에서 온 ‘바람의 딸’이라는 닉네임은 여행자로 바람처럼 떠돌아다닌다는 뜻이지만 그는 구호활동가가 된 뒤론 무엇이 되기를 희망한다는‘바람의 딸’로 풀이한다. 이름값 하기 쉽지는 않지만 덕분에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고 애쓴 만큼 괜찮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런 그가 최근 되고 싶은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빛의 딸이다. “언제부터인가 바람의 딸보다 빛의 딸 역할에 마음이 끌려요. 주위를 환하고 따뜻하게 비추는 사람,같이 있으면 기분 좋고 힘이 나는 사람.예전엔 강렬한 에너지가 좋았는데 이젠 가까이 가기엔 뜨거운 태양 같은 에너지보다는 아침 햇살 같은 밝고 따뜻하고 만만한 에너지를 주고 싶어요.”
    Munhwa ☜     인터뷰 = 최현미 문화일보 문화부 차장 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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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인생의 ‘행복 5종 세트’… 아침의 밀크커피, 잠들기전 와인 한잔
    보름달·24일·클래식도 ‘평생 보물단지’
    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은 행복하길 원한다면 일생 단 한 번 느끼는 큰 행복이 아니라 매일매일 소소하게 느끼는 작은 기쁨을 누리라고 말했다. 별것 아니지만 소중한 한비야 교장만의 행복 5종 세트의 구성은 이렇다. 먼저 아침에 눈뜨자마자 마시는 밀크커피 한잔.뜨겁게 데운 우유 한 컵에 커피 두 스푼,각설탕 반 개를 넣어 만든 밀크커피는 온몸을 따뜻하게 데우며 그의 몸을 활동 모드로 전환시킨다. 밀크커피로 아침을 시작하는 습관은 20대 때 산을 다니며 생겼으니 30년도 넘었다. 산에서 야영하며 춥게 자고 난 새벽, 뜨거운 밀크커피 한잔은 꽁꽁 언 몸을 녹여주는 구세주였다. 자기 전에 마시는 와인 한잔도 작은 행복이다. 혈전이 잘 생기는 체질이기에 혈액 순환에 좋다는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긴장이 풀리고 머리는 잘 돌아가고 글도 술술 잘 나오니 금상첨화다. 매일 저녁 와인 한잔 마시며 일기를 쓸 때 그때마다 하루를 잘 마감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행복감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다음은 보름달. 초등학생 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달 관찰 일기를 숙제로 쓰면서 각별한 애정이 생겼다고 한다. 푸른 겨울밤 하늘에 노랗게 뜬 보름달, 까만 한여름 밤하늘에 하얗게 뜬 보름달…. 모든 보름달은 예쁘단다. 매달 찾아오는 24일도 행운의 날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24번이었고 타고 다니던 버스도 24번 대학 다닐 때 살던 아파트도 24동 학교 도서관 사물함 번호도 24번 9년 동안 다닌 월드비전도 여의도 24번지 였다. 실제로 24일이 되면 생각지도 않은 좋은 일이 생기거나 꼬였던 일들이 슬슬 풀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은 행복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클래식 음악이다. 그가 클래식 음악에 빠진 것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 어느 날 잡음 심한 AM 주파수를 맞추다 흘러나온 첼로 연주에 반해 버렸다. 그날부터 그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 들었고 음악 해설서를 구해 독학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역 근처 클래식 다방에서 ‘DJ로 일하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2년 반 이상 하루 다섯 시간씩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소소하기 짝이 없는 밀크커피,와인 한잔,보름달,그리고 매달 어김없이 찾아오는 24일. 라디오만 켜면 언제든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이 나를 평생 행복하게 해주는 보물단지라니. 난 정말 ‘삼팔광땡’을 잡았다.”
    Munh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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