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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는 NO보다 힘이 세다

浮萍草 2015. 3. 10. 22:59
    무현 정부 임기 말 때다.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연정에 ‘꽂혔던’ 때가 있었다.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청와대 관저로 불러 자신의 연정 구상을 밝혔다. 
    김근태ㆍ문희상 등 당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모두가 반대했다. 한나라당이 받을리도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연정 구상은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의 청와대 단독 회담에서 퇴짜를 맞고 구겨져 버렸다. 
    노 대통령이 받은 타격은 컸다.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주장하는 바람에 지지층으로부터도 외면 당했고 임기말 빈곤했던 지지율은 더 갸날퍼졌다.
    시간이 흐른 뒤 퇴임을 몇 달 앞두고 노 대통령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정 구상을 후회했다. 
    “한나라당에 연정을 제안하면 당황할 줄 알았는데, 
    우리 진영에서 수류탄이 터져 버렸다”고 토로한 것이다.
    그렇게 연정 문제로 청와대가 벌집을 쑤셔놓은 상황이 됐을 때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재인(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서도, 청와대 밖 당으로부터도,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받는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어느날 문재인 실장은 비서관들을 모아놓고“대통령이 저렇게 하시고 싶어 하는데 우리만이라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에게 노(NO)라고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며 이 얘기를 전해줬다.
    사설(私說)이 길었다!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원회 회의실에서 국가정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관련 상임위에 참석한 이병기 국정원장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박근혜 정부 세번째 비서실장 인선이 끝났다. 신문사 정치부 밥을 먹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비서실장 한 명을 뽑는데 하마평에 오른 인사만 20명에 달한 건 처음 겪는다. 말 그대로 대장고 끝의 한 수가 이병기 카드다. 낙점받은 이 실장으로선 그만큼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기춘이라는 전임자는 가수로 따지면 이미자.조용필 급이었다. 그 다음에 노래를 불러야 하는 사람의 부담이야 오죽 하겠는가. 다행히 세간의 평은 국정원장 출신에서 비서실장으로 직행한 모양새만 빼고는 괜찮다는 쪽이다. 기실 실장 인선이 잘됐는지 못됐는지를 뒤늦게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비서실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도 아니고,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비서실장이 좋은 평가를 받을까 하는 부분을 잠깐 따져볼 필요는 있다. 무심한 평론가들은 비서실장의 덕목 중 첫째를 ‘NO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과연 그럴까. 비서실장이 “NO”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면 상황이 많이 악화됐을 때다. 이럴 때 비서로부터 “NO”라는 말을 들으면 리더의 마음은 어떨까. 충언(忠言)의 가치를 폄하하려거나 쓸모없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현실의 답을 얘기하고 싶은 거다. 리더를 진심으로 아끼고, 보좌하려는 참모라면 적어도“NO”라고 말하는 건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그 대신 대안을 열심히 찾아 그걸 선택하도록 리더를 이끌어야 한다. 그게 현실의 답이다. 비서실장이 “NO”라고 말해야 할 상황이면 이미 더 많은 사람들이“아니요”라는 의견을 냈을 게다. 여기에 숟가락을 보태는 건 진정한 참모가 아니라는 얘길 하고싶은 거다. 필자가 들은 비서실장 Q(실존인물이지만 아직 공개되기를 원치않는다)의 얘기다. 어느 날 대통령이 지시를 내렸다. 한번에 듣기에도 잘된 지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대로 실행했다간 예산 낭비에다 여론의 비난을 살 게 뻔했다. 임기 중반이 지난 대통령은 누구나 그랬지만 고집이 세져 있었다. Q는 잠깐 고민했다고 한다. “안됩니다” 소리가 목구멍을 기어 올라왔지만 참았다고 한다. 대신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온 Q는 직원들에게 비상을 걸었다. 대통령 지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보다 나은 대안을 조목조목 분석한 자료를 밤새 만들었다. 이튿날 아침 대통령에게 쫓아간 Q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각하가 어제 지시하신 내용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좋은 안이었습니다. 다만 그 안을 그대로 실행하려다보니 아주 작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보완하는 안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보시고 괜찮으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대안’을 제시받은 대통령은 군말없이 재가를 했다. 대통령의 최초 지시는 폐기됐고, 비서실에서 준비한 더 나은 안이 채택됐다. “NO” 보다 나은 “YES”의 힘이었다. 미국 정치에서 이 이론을 가장 잘 적용한 사람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참모 딕 모리스(Dick Morris)다. 모리스는“'Yes' is a far more potent word than 'no' in American politics(미국 정치에선'예스'가 '노'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참모론은 "참모는 민심의 풍향을 읽고, 지도자를 움직여 돛을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로 요약된다. 회사의 과장이든 부장이든, 정부의 장관이든 차관이든 상사는 본질적으로“NO”라는 말보다“YES”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리더의 관점에서 볼 때 ‘세련된’YES는‘무모한’ NO보다 위력이 세다. 참모라면 모름지기 ‘세련된’ YES를 많이 고안해야 한다. 김기춘 전 실장이 여론의 비판을 받은 건 대통령의 눈과 귀와 입을 청와대 담장 너머에 있는 장삼이사들로부터 멀어지게 해서다. 그래서 박 대통령에게 김 실장은 대체 불가능한 비서실장이었지만 청와대 밖의 민심은 대통령 앞에 쳐진 비서실장이란 장막에 숨 막혀 했던 거다. 김 전 실장이 "NO"라는 말을 안해서 욕을 먹은 게 아니라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갈라놓아서 욕을 먹은 거다. 그래서 후임자에게 처방해야 하는 약은 달라야 한다. 리더를 모시는 사람들이 새겨야할 건 "NO"라고 하는 것보다 '세련된 YES'를 말하는 게 좋은 참모라는 점이다.
    Joins        박승희 중앙일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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