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지난해 여름부터 꽃눈 준비… '봄 길잡이' 목련의 준비성

浮萍草 2015. 2. 28. 10:13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 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 '목련화(木蓮花)' 노래를 부를 날도 멀지 않았다. 봄 길라잡이 목련꽃이 피기까지 겨울이 얼마나 시렸는가. 그 냉기를 머금고 견뎠기에 목련은 더욱 아리땁다. 내 글방 앞 목련나무를 살펴봤다. 수천 개의 겨울 꽃눈이 가지마다 다닥다닥 매달려 있다. 작년 초여름부터 꽃눈을 만들어 놓아 저리 매달아 놓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겨울눈은 한눈에 봐도 꽃눈과 잎눈이 뚜렷이 구분된다. 봄꽃을 품은 꽃눈은 새끼손가락 끝마디만큼이나 큰 것이 몽실몽실 통통하지만 움싹이 틔울 잎눈은 코딱지만 하다. 또 꽃눈은 보드라운 솜털이 빽빽이 감쌌으나 잎눈은 솜털과 함께 밋밋한 몇 겹의 비늘 조각이 뒤덮고 있어서 고된 겨울나기를 도왔다.
    지금 얼른 목련의 꽃눈<위 사진> 하나를 따서 면도날로 반을 잘라보자. 솜털 묻은 비늘잎을 벗기고 나니 얄팍하고 보드랍고 노릇한 꽃잎이 켜켜이 포개져 돌돌 말려 있고 향기 그윽한 꽃술들도 이미 한가득 들었다. 그렇다. 지난해부터 이 해를 대비한 만반의 준비성에 탄복을 금치 못한다. . 고(故) 최인호씨의 '나의 딸의 딸'이란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목련꽃은 아름답긴 하지만 왠지 귀기(鬼氣)가 어려 있다. 한밤중에 목련꽃을 보면 섬뜩해진다. 무슨 상복 입은 여인 같기도 하고,종이로 만든 조화 같기도 하고,승무를 추는 영인(伶人)의 머리에 씐 고깔 같기도 하고 잘 빨아 널어 말린 버선짝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남보다 먼저 꽃피우는 봄 앞잡이 꽃은 목련 말고도 더 있다. 매화·산수유·진달래·철쭉·개나리들도 꽃눈을 매단 채 겨울을 넘기고 있다. 자연엔 질서와 순서가 있는지라 여기 꽃나무들도 써놓은 순서대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이들은 꽃을 먼저 피우고 나중에 날이 포근해지면 잎이 난다. 식물들이 나름대로 정해진 시기에 개화하는 까닭은 일조시간(光周期·광주기)과 온도에 반응하여 생기는 개화 호르몬인 '플로리겐(florigen)' 때문이다. 식물에 따라 일조시간이 긴 봄에 개화하는 개나리·진달래가 있고 낮이 짧은 가을에 꽃피우는 코스모스·국화,일조시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민들레·옥수수 따위가 있다. 온도도 개화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진달래 가지 하나를 꽃병에 꽂아 방 안에 들여놔보라. 며칠 후면 화사한 진달래꽃을 피우니 이런 것을 고온처리(高溫處理)라 한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 활짝 핀 꽃봉오리들이 하나같이 북쪽으로 고개 숙인다. 보통 식물은 햇빛을 받는 남쪽으로 굽는데 괴이하게도 목련은 북으로 머리를 둔다. 그러기에 예부터 목련꽃을 북향화(北向花)라 불렀다. 그래서 예로부터 임금에 대한 충절을 나타내는 꽃으로 목련을 꼽았다. 서양에서는 목련을 부활을 상징하는 꽃으로 봤다. 죽음의 계절인 겨울의 끝을 맺고 생명의 계절 봄의 도래를 알리는 전령사로 목련을 본 것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로 많은 학생을 잃은 안산 단원고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잭슨 목련'을 보냈다.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레이철 여사를 기리며 1800년대 중반 백악관에 심었던 그 목련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봄마다 새로 피는 목련은 부활을 나타낸다"며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학생들을 기렸다.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이다.
    Chosun ☜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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