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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어눌하기로 유명한 정몽구 회장이 대본없이 15분간 즉흥 연설한 이유

浮萍草 2015. 1. 13. 10:41
    신년사하는 정몽구 회장./현대자동차 제공
    ‘국민 여러분의 질책을 달게 받아 그 간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닫고…’ ‘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 업의 본질을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도 타이머의 초침이 째각 째각 움직인다’ ‘세계속의 회사로 발돋음 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의리, 사회에 대한 의리다’ 을미년 첫 출근 날 쏟아진 재계 총수들과 최고경영자(CEO)들의 일성은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특히 몇몇 총수들의 신년사는 비장함을 넘어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 만큼 대내외적인 기업 환경이 안좋다는 반증이다. 특히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의 신년사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시무식 풍경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실시된 시무식에서 준비된 원고대로 신년사를 낭독하지 않고 15분 간 대본 없이 즉흥 연설을 했다. 예년과 달리 양복 안에 니트를 따로 입지 않고 흰색 셔츠에 하늘색 넥타이만 착용한 채 등장했다. 정 회장이 원고 없이 연설을 했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룹 측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2014년 12월 12일 서울 대한항공 본사에서 조양호
    회장이 딸이 빚은 회항 논란에 대해 사과하는 기자
    회견을 가졌다./이태경 기자
    각본 없이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정 회장은 우선 브랜드 이미지 혁신을 강조했다. 보도자료로 배포한 신년사에는 없던 ‘이미지’라는 말을 다섯 차례나 사용할 정도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단순히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것 뿐 아니라 ‘현대’ 브랜드를 글로벌 탑 메이커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에 짓기로 한 100층 짜리‘통합 신사옥’도 현대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10조원을 들여 새로운 건물을 짓고자 하는 건 경제성을 산출한 결과를 보고서 진행한 일”이라 면서“현대차의 기업 이미지가 높아지면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판매량도 순조롭게 올라갈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지난해 장녀인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으로 그룹 이미지가 실추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신년사를 읽다가 울먹이기까지 했다. 조 회장은 서울 공항동의 한진그룹 본사에서 열린 시무식에서“국민여러분의 질책을 달게 받아 그간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닫고 사려깊은 행동으로 옮기겠다”고 천명했다. 조 회장은 또 “사내외 인사로 구성된 ‘소통위원회’를 신설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 회장은 지난해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드린 점을 사과한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감정이 복받친 듯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지창훈 총괄사장이 신년사를 대독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조양호 회장의 신년사가 자기 성찰이었다면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외부의 탓으로 돌리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 회장은 신년사에서 "반세기 동안 땀흘려 일한 성과들이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산업은행에 적극 협조했으며 구조조정의 성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며"하지만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구조조정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김 회장은 서울 대치동 동부금융센터에서 열린 시무식에서“사업구조 선진화를 위한 투자의 결실을 채 얻기도 전에 닥친 불황과 금융시장 경색으로 자체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요청을 받아들여 3조원대의 대규모 사전적 구조조정을 결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패키지딜의 실패와 자산의 헐값매각, 억울하고도 가혹한 자율협약, 비금융 계열사들의 연이은 신용등급 추락,무차별적인 채권회수 등 온갖 불합리한 상황들을 겪으며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비판했다. 산은과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동부건설 제공
    구속 이후 건강 악화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은“반드시 건강을 회복할 테니 그룹 매출 100조를 위해 정진해달라”고 밝혔다. 이 회장이 그룹 경영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지난해 8월 항소심 공판 최후변론 이후 처음이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CJ제일제당·CJ푸드빌 등 전 계열사를 상대로 한 신년사에서 당초 원고에는 없던 이 회장의 말을 임직원들에게 전달하는 형식을 빌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 회장은 “여러분이 너무 보고 싶다”며“여러분이 보내주는 응원과 기원 마음을 에너지 삼아 반드시 건강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반드시 건강을 회복할 테니 여러분은 내 걱정은 말고 우리의 공동목표인‘그레이트 씨제이 (Great CJ)’ 2020년 매출 100조·영업이익 10조를 위해 중단없이 정진해달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2013년 7월 구속됐으나 지병인 만성신부전증이 악화돼 3개월 구속집행 정지를 받아 서울대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뒤 투병 중이다. 그는 지난해 항소심 6차 공판에서 “재판장님, 살고 싶다. 살아서 제가 시작한 문화사업과 CJ의 여러 미완성 사업들을 반드시 세계적인 글로벌 생활 문화 기업으로 완성시켜야 한다”고 최후변론했다. 이밖에 구본무 LG그룹 회장은“시장 선도가 살 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환율과 유가의 불안정한 움직임은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에게 상당한 도전”이라며“몇 년 안에 큰 어려움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포스코의 권오준 회장은 “창업 이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며“어려울 때 이기는 게 진짜 실력” 이라고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기도 한 허창수 GS 회장은 ‘한 가지 이로운 일을 더 하는 게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못하다’는 옛말을 인용했다. “불필요한 일은 과감히 줄이자”고 변화를 주문한 것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LG그룹 제공

    이건희 회장이 투병 중인 삼성은 그룹 차원의 신년사가 없었다. 대신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은 이날 시무식 연단에 올라 ‘뉴 챌린지’를 외쳤다. 이어진 임직원들의 구호는 ‘리스타트’였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조차 ‘도전과 새 출발’을 최우선 숙제로 삼은 것이다. SK그룹 역시 수감 중인 최태원 회장을 대신해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나섰다. 주력사업인 에너지와 화학은 생존을 걱정할 시기라고 운을 뗀 김 의장은 아예 “업의 본질을 바꾸자”는 고강도 주문을 냈다. 3년만에 신년사를 한 한화 김승연 회장은 한화가 세계속의 큰 회사로 발돋음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사회에 대한 의리라고 강조했고 박삼구 금호 아시아나 그룹 회장은 강한 기업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면 끝장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또한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은 타이머 초침이 계속 움직이고 있어 긴박한 상황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재계 총수들은 위기 극복을 촉구하는 신년사로 임직원들에게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특히 업황이 나쁜 기업일수록 위기의식의 강도가 무겁고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총수들은 그만큼 세계 경기가 불투명하다고 진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학자들은 총수들이나 그 주변이 솔선하지 않고 임직원들에게만 고통을 강요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총수를 위시한 ‘로열패밀리’들이 먼저 고통을 안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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