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He 스토리

코스맥스 이경수 회장 '잊지 못할 장화와 나침반'

浮萍草 2014. 12. 11. 10:54
    이철배 회장(前 대웅제약 명예회장)의 장화가 말해줬다… "현장에 답 있다"
    다니던 대웅제약서 나와 창업하자"공장용 부지 직접 한번 봐주겠다"며 장화 신고 나침반 들고 논에 들어가 "물웅덩이는 피하고 계단 높이 15㎝로" 하나하나 충고… 현장 중요성 배워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대웅제약에서 상사로
    모셨던 고 이철배 대웅제약 명예회장님이 창업
    초기 행동으로 가르쳐주신 현장 확인의 중요성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회사를 경영하는 데
    지침이 됐다”고 말했다. 코스맥스 제공
    마 전 세계 최고의 화장품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업체인 이탈리아 회사의 회장을 만나고 왔다. 15년 전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나 높은 곳에 있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이제는 그가 먼저 서로의 강점을 나누자는 얘기를 할 정도가 됐다. 창업 21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성과라 뿌듯함도 느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정말 잘하고 있는지 의문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옆에서 답을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나는 분이 있다. 고(故) 이철배(李哲培) 대웅제약 명예회장님은 내가 12년 동안 다닌 대웅제약에서 모신 상사이다. 대웅제약 연수원 현관 중심 벽에 이 회장님의 동판이 있을 정도로 전문 경영인의 표상으로 존경받고 있다. 내가 대웅제약 전무로 있을 당시 이 회장님은 사장이셨다. 차·부장 때부터 나를 눈여겨보아온 터라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나를 후임 사장으로 천거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배울 게 많다"며 두 번이나 거절했다. 나중에 나는 후임 사장과 사이가 틀어졌고'위기가 기회다'고 생각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당시 이 회장님은 무척이나 안쓰러워하셨다. 자신이 사장으로 계속 있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모른다.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한 지 몇 개월 지난 1993년 봄 나는 충남 예산군 응봉면에 공장용 부지를 계약했다. 당장 이 회장님께 소식을 알렸다. 나가서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이 회장님은 "부지를 한번 봐주겠다"고 하셨다. 같이 내려가 본 농공단지는 그 당시에는 아직 산과 논, 밭뿐이었다. 나는 대충 "저 5만평 중에 내가 산 7000평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이 회장님은 차에서 내려 말 없이 장화를 꺼내 신고 손에는 나침반을 들었다. 논두렁을 타고 단지 한가운데로 가서 지적도를 꺼내고는 그 위에 나침반을 놓았다. "자네가 산 땅은 저 앞에 보이는 사과밭부터 우측 물구덩이 위에서 저기까지야. 공장은 저기 보이는 사과밭을 깎고 세우고 물웅덩이 있는 것은 피해야 한다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진흙 범벅이 된 이 회장님의 장화를 보며 창피하면서도 고마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 샀던 부지는 허가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포기했다. 1994년 새로 공장을 세운 곳은 화성시 향남읍이었다. 그때도 이 회장님이 찾아와 공장 설계도를 보고 하나하나 충고해주셨다. "계단 높이는 최소 15cm, 폭은 25cm가 사람이 걷기에 가장 편해. 공장 화장실은 대충 만들지만 적어도 문의 폭이 1m는 돼야 직원들이 오갈 때 서로 엉키지 않는다네. 굴뚝은 보기에 안 좋다고 뒤로 빼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경비가 더 들고 효율이 나빠져." 나는 빨리 공장을 세울 욕심만 있었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과 에너지 효율 문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경험은 내게 현장 확인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새기게 했다. 나는 지금도 화장품 매장들이 즐비한 명동을 1주일에 한 번은 찾는다. 영업사원들은 보통 우리 물건을 많이 사주는 브랜드의 매장에 더 신경을 쓴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우리 제품을 많이 사주는 브랜드보다 다른 브랜드 매장이 더 매출이 높은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잘나가는 브랜드에 우리 제품이 많이 들어가지 못하는지를 알아내 그 브랜드에 맞는 신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제품을 팔 수 있다. 현장을 가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회장님의 장화와 나침반에서 배운 또 다른 지혜는 상대방을 도울 때는 상대방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IMF 경제 위기 당시, 1·2위 거래처가 화장품 사업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 매출은 50~60%가 줄 상황이었다. 환율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수입 화장품 원료 가격이 올랐지만 우리는 공급가를 그대로 유지했다. 덕분에 우리 회사는 고객 입장을 생각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얻었고 이후 시장점유율이 올라갔다.
    이 회장이 창업하기 1년 전 회사 연수회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이경수 회장(당시 전무), 고 이철배 대웅제약
    명예회장,윤영환 대웅제약 회장이다. /코스맥스 제공
    10년 전 중국에 진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넉넉지 않은 회사 형편이었지만 모든 것이 비싼 상하이를 선택해 공장을 지었다. 중국 사람들이 '상하이산(made in shanghai)'을 최고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외국 회사처럼 중국의 싼 인건비로 제품을 만들어 해외로 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만들어 중국에 팔자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회사가 중국에서 화장품 ODM 전문회사로서 선두로 나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우리 회사는 2012년 세계 최대의 화장품 그룹인 로레알의 인도네시아 공장을 인수했다. 공장 준공식 때 로레알의 어느 고위 임원이 현지 관계자들 앞에서 축사를 해주었다. 그 내용은"로레알은 코스맥스와는 친구이며 이는 친구 사이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조건은 첫째 서로 신뢰가 쌓여야 하고 둘째 앞서나가는 생각으로 서로 도움이 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공개하고 같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 이철배 회장이 행동으로 가르쳐주신 교훈 그대로였다. 지금도 장화를 신고 나침반을 들고 앞서 가시던 모습이 선하다.
    이경수 회장  비서 없는 CEO… 年매출 3800억원 
    
    이경수(李慶秀·67) 회장은 창업 21년 만에 코스맥스를 세계 5위의 화장품 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경북 포항고와 서울대 약대를 졸업했다. 
    동아제약과 오리콤을 거쳐 대웅제약에서 전무이사까지 21년간 근무하다가 창업했다.
    코스맥스는 직접 화장품을 개발, 생산해 다른 회사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업체다. 
    국내에서는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더페이스샵·미샤 등 150개사, 해외에서는 슈에무라·메이블린·로레알·랑콤 등 80개 업체가 고객이다. 
    지난해 해외 계열사까지 합해 매출을 3126억원 올렸으며, 올해는 3800억원대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7년 연속 매출 20% 이상 성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회사의 경쟁력은 연구개발(R&D) 능력에서 나온다. 
    연구원은 130여명으로 전체 직원의 30%에 이른다. 
    회사는 기초·메이크업(색조)·한방 등 특화된 5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코스맥스 생산 제품의 95%가 이 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ODM 제품이다.
    이 회장은 비서가 없는 CEO로도 유명하다. 
    평소 “일정이 빽빽하게 적힌 수첩이 비서”라고 말한다.

    Premium Chosun ☜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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