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고구려공정 실체 해부

2 高句麗史에 對한 中國의 立場은 "同床異夢"

浮萍草 2014. 12. 8. 10:59
    2.고구려 공정
    국은 2000년 10월 고구려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한 후 이 공식 입장을 관철할 일환으로 1년 반이 지난 2002년 2월 동북공정 프로그램을 정식 가동하였다. 동북공정의 공식명칭은 ‘동북변방 역사와 현황에 대한 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研究工程)’이다. 구체 내용에는 동북 지방사,동북 민족사,고조선·고구려·발해사, 중조(中朝) 관계사,동북과 러시아 원동간의 관계, 동북 지역 사회안정전략 등 6가지에 대한 연구이다. 5년을 기한으로 하고 1500만 원(약 한화27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고구려 문제는 동북공정의 한 개 분야에 속한다. 중공중앙정치국위원·중국사회과학원장 이철영李鐡映과 재정부장 항회성項懷誠을 고문으로 하고 사회과학원 부원장 왕낙림王洛林을 총책임자로 하였다. 그리고 중국변방사지(史地)연구중심 연구원 마대정馬大正을 주임으로 하는 18인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다음은 중국사회과학원과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사회과학원의 연구원 및 대학교수 등으로 방대한 연구팀을 편성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출범시킨 이유를 다음과 같이 규정지었다. ‘ 한국은 경제성장을 이룬 1970년대부터 민족정서가 고양되었다. 일부 소장파 학자들은 한국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고구려를 민족 자존심을 과시하는 버팀목으로 사용하려 한다.’ 1990년대 말 중국학자들은 한국 학술계의 이런 동태를 간파한 후 역사에 대한 과오를 시정할 절박성을 느껴 동북 공정을 출범시켜 고구려문제에 착안하게 되었다. 동북공정에 6가지 내용이 있으며 고구려는 그 중의 한 가지에 불과하다고 중국학자들은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마치 동북공정=고구려문제로 왜곡하며 과민한 반응을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고구려문제가 동북공정의 주요내용이면서도 핵심 내용이므로 본문에서 이하‘고구려공정’으로 부르기로 한다. 한국학자들도 앞으로 ‘고구려공정’으로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3년6월24일 <광명일보光明日报>에 <고구려역사 연구의 몇 가지 문제를 논함(試論高句麗歷史研究的幾個問題)> 이란 제목의 글이 발표되었다. 필명이 변중邊衆으로 되어 있는 이 글은‘고구려정권의 성격을 마땅히 중원 왕조의 제약을 받으며 지방정권이 관할한 중국 고대 변방민족 정권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단정하였다. 이 글은 한국 학계와 매체에 큰 파문과 강렬한 정치적 반발을 유발하였다.
    한국은 고구려공정에 대한 총 공세에 나섰다. 이른바 ‘고구려역사 보위전’이다. 한양대학 교수 신용하慎镛厦는 동북공정을‘역사제국주의 작업’이라고 공격했고,한국 외교부 차관 이수혁李秀赫은“한국정부는 강경한 태도로 중국의 고구려역사 왜곡에 대응할 것이며 모든 대가를 아끼지 않으며 심지어 중국과 대만 카드의 사용도 거부하겠다’고 하였다.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평화 원정대원들이 2014년 10월 31일(현지시각) 중국 지안(集安, 옛 고구려 수도) 환도산성 앞 고분군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고 있다.

    2003년 12월 9일 한국고대사학회,한국고고학회,한국근대사학회 등 17개 학회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회의를 소집하고 연합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중국은 고구려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역사왜곡 행위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2004년 9월 17일 중국 측 제의로 서울에서 고구려역사의 귀속에 관한 학술포럼이 개최되었다. 고구려공정의 창시자인 중국의 손진기는‘고구려의 주체가 중국에서 발생했고,원 고구려 영토의 2/3가 중국에 있으며,인구 3/4이 중국에 귀순했다’라는 세 가지 이유를 내놓으며 고구려가 중국지방정권임을 역설하였다. 또 당나라가 고구려를 합병했고 신라가 백제를 합병했다. 고구려는 통일 신라에 포함되지 않으니 당연히 한국사에 넣을 수 없다’라며 한국 사학자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한국 사학자들은 굴복하지 않고 고구려가 한국사에 속하여야 한다는 많은 증거를 제시했다. 결국 그 회의는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한국은 또한 대중 선전수단을 총동원하여 중국의 동북공정에 반격을 가하였다. 이를테면 역사극 <주몽>,<태왕사신기>,<연개소문> 및 <대조영>을 제작하여 방영하였다. 그중 <주몽>은 2006년 5월에 개봉한 후 연속 25주간 시청률 최고이며 2006년 시청률이 가장 높은 역사극이었다. 그 해에 상영한 인기극 <궁>과 2년 전에 상영한 <대장금>의 시청률을 능가하였다. 이 문제에서 북한도 한국과 입장을 같이 하였다. 북한 학술잡지 <역사과학>은 2008년 첫 기에‘고구려는 조선민족의 국가였다. 우리나라 인민은 시종일관하게 고구려를 조선역사 체계 중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라는 글을 실었다. 그러나 ‘어떤 대국이 역사를 왜곡한다’고 표현했을 뿐 ‘중국’이라는 국명은 거론하지 않았다. 고구려공정에 대한 중국학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 국가에서 언론을 통제하므로 이런 부류 학자들의 글이 신문이나 학술지 등 출판물에 게재할 수 없었지만 사석에서 그들은 많은 반대의견을 토로하였다. 그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넣을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고구려를 응당 조선(한국)역사로 보아야 바람직하다 ▲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켜서 얻는 것이 별로 없다. 이 문제로 국제 무대에서 조선, 한국과 등지면 중국이 보는 손해가 엄청나게 클 것이다 ▲ 그러지 않아도 중국의 급부상에 주변국가들이 두려워하는데 이렇게 처사하면 그들은 앞으로 단합하여 중국을 경계하거나 심지어 중국을 반대하는 세력으로 뭉칠 것 이다. 항간에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 “고구려공정에 관한 보고서에 호금도(후진타오) 주석이 사인하였으므로 별 수 없다. 호금도의 임기가 만료된 후인 2012 년경에 가서야 고구려 문제의 해결을 볼 듯하다.” 그러나 국외·국내의 반발이 심하므로 2012년까지 끌지 못하였다. 동북공정 이후 출판된 고구려에 관한 모 책자에 발행 금지령이 내려졌다. 2006년 이후에 편집한 소학·중학의 교과서에 고구려에 관한 내용이 삭제되었다. 중국 외교부가 주체가 되어 고구려문제에 관한 진화에 나섰다. 2007년 당시 외교부장인 이조성李肇星은 고구려 공정의 해결을 위하여 장춘에서 동북3성의 관련학자들을 집결시켜 좌담회를 열었다. 그러나 서로 대립되는 견해가 팽팽히 맞서 해결을 보지 못했다. 잠시 각자 자기의 견해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고구려에 관한 중한 양국 학자의 토론회를 소집할 수는 있으나 상대방에게 질의하거나 상대방의 견해를 반박하는 내용을 삼가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하달했다. 금년 7월 한중 양국 학자들이 중국 집안(集安)에 모여 고구려문제의 포럼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상기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서로 싸우지 않고 원만히 진행하였다고 한다. 현재 고구려문제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은 한국과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 입장에 한국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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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갑 베이징 고려문화경제연구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 한국 한중미래재단 이사장 zhengr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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