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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피비린내 나는 재벌가 형제들의 재산 싸움

浮萍草 2014. 10. 1. 11:20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신준호 푸르밀 회장.
    근 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이 바로 위의 형인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을 고소하면서 다시 재벌가 집안 싸움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실 금호그룹은 호남을 대표하는 재벌로 한때 우애 좋기로 소문난 집안이었다. 그런 집안이 지난 2009년부터 형제간 고소 고발전이 빈발하고 있다. 국내 재벌가 중 집안 싸움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싸우지 않은 집안이 이상할 정도로 대부분 재산 분쟁을 벌이고 있다. 재벌 집안들은 왜 싸우며 어떤 경우에 재산 분쟁이 일어나는가. 그 유형을 보면 창업주 세대와 2, 3세대간이 다르며 집안에 따라 싸움 형태도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창업주가 생존해 있을 때 싸움은 대부분 창업 형제간 분쟁이다. 창업 1세대들은 가내 공업 형태로 형제나 친척들이 함께 사업을 일으킨다. 이러다가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창업 형제간 갈등이 시작된다. 특히 창업 형제인 동생을 제외시키고 2세에게 물려주려고 할 때 분쟁이 발생한다. 창업 형제간 분쟁은 롯데그룹에서 심했다. 잘 알려진대로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돈을 벌어 국내에 진출,거대 재벌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본인이 일본과 서울을 오가면서 사업을 할 때 동생들을 참여시켜 국내 사업을 책임지도록 했다. 현 농심의 신춘호 회장이 처음에 국내 사업을 총괄하다가 막내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국내 사업을 사실상 이끌었다. 신춘호 회장이 형과 사업상 별거를 먼저했다. 라면 부분을 들고 나와 오늘의 세계적인 라면회사로 키웠다. 이때‘롯데’라는 상호를 갖고 격돌했다. ’농심’이라는 상호를 쓴 것도 형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신춘호 회장은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라면을 출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당시의 형제간 앙금은 다가시지 않았다고 주변에선 얘기한다. 롯데가의 2세들 모임에 신격호 회장의 직계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일본 롯데 부회장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정인영 한라그룹 회장.

    1990년대 들어서 막내 동생인 신준호 회장과도 갈등을 빚었다. 막내 동생과의 갈등은 법정으로까지 비화, 심한 내홍을 겪었다. 신준호 회장 명의로 돼있던 서울 양평동 대지를 놓고 실제 주인이 누구냐며 싸움을 벌인 것이다. 결국 신준호 회장이 백기를 들고 롯데 그룹에서 나오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당시 필자는 이 소송을 집중 취재했었다. 형인 신격호 회장측은 동생이지만 아들처럼 생각해 유학도 보내고 경영에 참여시키는 등 아꼈는데 형한테 이럴수 있느냐며 하소연했다. 반면 신준호 회장은 한국 롯데를 이만큼 키운게 누군데 형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이 부지 역시 틀림없는 자신의 소유라며 억울해 한 적이 있다. 결국 신준호 회장이 백기를 들고 나오면서 마무리 됐지만 이 소송은 재계에도 많은 뒷말을 남겼다. 지금도 신격호 회장의 직계가 아닌 방계 가족들은 신준호 회장에게 동정을 보내는 분위기다.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와 한라그룹 정인영 회장과의 갈등도 한때 재계에 화제가됐다. 형인 정주영 회장을 도와 오늘의 현대그룹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던 정인영 회장은 ‘현대양행’(현 두산중공업)을 들고 나와 딴 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현대양행은 1980년 창원의 대단위 공장을 짓는 과정에 오일쇼크를 견디지 못해 정부가 인수하게 된다. 그것이 현 두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중공업이다. 단일 공장으로는 당시 국내에서 가장 대규모였던 현대양행을 못지켰지만 정인영 회장은 한라중공업,한라건설,만도기계 등을 창업,재계의‘부도옹’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과 조중건 대한항공 부회장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과 함께 경영에 참여했던 형제간 갈등이 있었다. 형 조중열 회장과는 일찍 결별했고 동생인 조중건 회장과는 마지막까지 신경전을 벌였으나 결국 조중건 회장이 한진 경영에서 손을 완전히 떼는 것으로 정리됐다. 사실 조중건 회장은 한진그룹이 월남전 특수에 뛰어들 때 절대적인 공헌을 한 창업공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형인 조중훈 회장은 아들 4형제에게만 기업을 물려주고 사업 부분은 조금도 앙보하지 않았다. 특히 조중훈 창업주는 생전에 4형제에게 사업부분을 정리,사후 분쟁이 없도록 신경을 썼으나 타계하고 얼마안돼 지리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창업주는 장남에게는 모기업인 대한항공을,차남에게는 중공업,3남에게는 해운업,막내에게는 금융업을 맡기는 것으로 일찌감치 정리했었다. 그러나 2세들은 사소한 문제를 놓고 장남을 상대로 소송전을 제기, 재계의 입방아를 낳았다. 결국 3남인 조수호 회장이 이끌던 한진해운을 그가 타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남이 경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2남인 조남호 회장과 4남인 조정호 회장은 각기 회사를 맡아 경영하고 있으나 형인 조양호 회장과 지금도 껄끄러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창업주 형제들 간의 분쟁은 2세에 들어서도 대부분 일어나고 있다. 창업주가 그러한 분쟁을 막기위해 여러가지 장치(생전에 주식정리와 경영훈련 등)을 시켜 놓지만 별반 소용이 없다. 창업주 형제들 간 분쟁 다음으로 많은 분쟁이 일어나는 곳이 집안 사정이 복잡한 경우다. 즉 서자들이 많거나 후처의 입김이 센 집안은 창업주가 죽으면 거의 재산싸움을 벌이게 된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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