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난 '그 메기'가 '그 메기'인 줄 알았다!

浮萍草 2014. 8. 29. 10:00
    산책은 우울증 해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도심 맘껏 누벼 즐길 수 있어야 선진국인데
    車가 산책로 막은 서울선 우울 또는 분노가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는 스무 살이 넘도록'그 메기'가 '그 메기'인 줄 알았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지금 그 노래를 이야기하는 거다. 어릴 때 난 이 노래가 참 좋았다. 내게'금잔디 동산'은 유년 시절을 보냈던 대전 공군기술교육단 뒷동네에 있던 공동묘지였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난 이름 없는 무덤 위에 누워 얼마나'그 메기'를 흥얼거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가 지도록 하늘만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매번 '아주 가지가지 한다!'며 심란해하셨다. 사실 물고기인 메기랑 금잔디 동산에서 함께 논다는 노래 가사가 많이 이상하긴 했다. 그러나 산에도 메기가 뛰노는 개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메기가 여자 이름인 '매기(Maggie)'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그 메기가 '매기'라면 이 노래는 정말 희한한 노래가 된다. 밤낮으로 '동산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물레방아 소리 들리도록'문제의 그 여자 매기하고 놀았다는 이야기다. 애들이 부를 노래는 아니었던 거다. 그 메기의 실체를 알게 된 후로 난 더 이상 그 음탕한'옛날에 금잔디 동산에'는 안 부른다.
    '금잔디 동산'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교토 아라시야마(嵐山)는 이번 여름 내내 동네 이름처럼'폭풍의 언덕'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다가도 비가 한번 쏟아지면 순식간에 강이 넘치곤 했다. 그러나 여름도 이젠 한풀 꺾여 해 질 무렵에는 사뭇 선선하다. 산기슭이 컴컴해지면서 스산한 느낌이 들면 나도 모르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하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런데 이 노래를 끝까지 제대로 부른 적이 없다. 마지막 부분에서 매번 울컥하게 되는 까닭이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는 부분에 이르면 아주 격하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꺽꺽거리게 된다. 난 요즘도 이렇게 '아주 가지가지 한다!' 문제는 이렇게 한번 쓸쓸하고 우울한 생각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거다. 내 나이에는 확실히 더 그렇다.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 건강 일 인간관계와 관련된 서글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식이라면 우울증에 걸리는 건 한순간이다. 그럴 때는 걸어야 한다. '산책(散策)'은 우울함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걷다 보면 주의(attention)가 분산되면서 우울함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걷기에 동반되는 몸의 리듬은 유쾌한 감정을 일으킨다. 즐거우면 몸을 흔들게 되지만 몸을 흔들면 즐거워지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돌다 돌다 마지막에 파고든 주제가 바로 이 '리듬 분석'이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몸의 리듬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 걷기는 고도의 문화적 행위라는 이야기다. 걷기를 가장 먼저 문화적 행위로 규정한 이는 독일 출신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이었다. 그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이를 가리켜 '산책자(Flaneur)'라고 했다. 물론 동서양의 고전에서 산책은 항상 철학적 사유와 연관지어 설명해 왔다. 문제는 어디를 산책하는가이다. 독일 사람들은 아주 자주 산속을 헤맸다. 이를 '방랑(wandern)'이라고 했다.
    앤디 워홀식 발터 베냐민의 진화(김정운 작).

    유태인이었던 베냐민은 나치 독일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독일식'방랑'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산책(flaner)'이라는 행위를 발견했다. 그냥 걷는 게 아니다.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거다. 근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생활 공간인 도시는 온갖 자극으로 가득 차 있다. 인류가 이제까지 경험했던 시각적 자극과는 전혀 다르다. 베냐민은 이 도시를 몰려다니는 군중의 일원이면서도 반성적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메타적 시선이 가능한 이를 '산책자'로 지칭했다(파리가 나치에 점령당하자 베냐민은 나치를 피해 스페인 국경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밤에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파리의 산책자들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한 아케이드에는 밤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파리의 쇼윈도는 오늘도 여전히 환하다. 그리고 아주 멋있다. 밤이면 찾아오는 치명적인 우울함을 피해 거리로 나선 산책자를 위한 자본주의적 배려다. 파리가 이렇게 '산책자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불바르(boulevard)라는 널찍한 길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의 중심이길 원했던 루이 14세는 자신의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을 원근법적 구도로 꾸몄다. 길 가장자리에 가로수를 심어 원근법적 깊이가 과장되도록 꾸몄다. 가로수 바깥으로는 보행자를 위한 길을 따로 만들었다. 프랑스 절대 왕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꾸며놓은 길은 여전히 남아있다. 길 가장자리에는 노천 카페가 들어섰다. 불바르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이는 죄다 도로 쪽을 향해 앉아 있다. 불바르를 걷는 이들은 앉아있는 이들을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있는 이들은 걷는 이들을 구경한다. 도시 한가운데를 마음껏 산책하며 구경할 수 있어야 선진국이다. 미국이 유럽에 비해 문화적으로 한 급(級) 낮아 보이는 이유는 죄다 죽어라 조깅만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뒷골목이 그토록 깨끗하고 예쁜 이유는 길가 주차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사려면 주차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일본인들은 그 골목길에 깔린 돌바닥에 아침저녁으로 물을 뿌려댄다. 참 정갈하다. 그리고 참 부럽다. 서울의 길은 낮이나 밤이나 주차장이다. 주차된 차를 헤집고 다니느니 차라리 우울해지고 만다. 우울해지기 싫은 이들은 분노와 적개심을 선택한다. 하긴 우리는 언젠가부터 '파크(공원)'에서 자고 '가든(정원)'에서 밥 먹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산책로에 주차하는 것 정도야 아주 우스운 거다.
    Premium Chosun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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