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王의 병을 보면 건강이 보인다

단종-기혈부족

浮萍草 2014. 8. 26. 20:05
    기운 보양엔 우유가 藥보다 효과
    울 동대문에서 혜화동에 걸쳐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그 이름이 타락산(駝駱山)이라고 불렸다. 산의 모양이 낙타와 같아서 낙타산이라고도 불렸지만, 조선시대 궁궐에 우유(牛乳)를 조달하던 관아인 타락색(駝酪色)이 그 산기슭에 있어 타락산이라고 불렸다 고 한다. 지금은 가게에서 손쉽게 사 먹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는 아예 급식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궁궐에만 제공되던 귀한 음식이 바로 우유였다. 실제 임금도 아무 때나 마실 수 없었고 특별한 날이나 몸이 아플 때 먹는 보양식이었으며 조정 대신들도 동짓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국왕이 보내 준 우유를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단종 즉위년 6월 1일의‘왕조실록’기록을 보면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기를“무릇 사람이 비록 장성한 나이로 있더라도 거상을 하면 반드시 마음이 허하고 기운이 약 하게 되는데 지금 주상께서 나이가 어리시고 혈기가 정하지 못하시니 청컨대 타락(駝酪)을 드소서”라고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즉 나이 어린 임금이 기혈부족으로 몸을 상하게 될까 걱정하여 우유를 먹게 하려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약보다도 더 효과가 좋은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는데 인종 1년 2월 10일의 기록에는 어의들이 아뢰기를“상의 옥체가 몹시 쇠약하고 몹시 손상 되시어 약으로는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전에 아뢴 타락을 이제는 반드시 드셔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서 약으로 고치지 못할 정도의 증상이라 우유를 복용해야 한다고 처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선조 8년 1월 20일의 기록에‘비록 상중이지만 기력회복을 위해 낙죽(駱粥)을 먹어야 한다’고 신하들이 아뢰는 장면이 나오며 영조 46년 2월 7일의 기록에는 ‘무분별한 소의 도살을 막기 위해 낙죽을 중지하라’고 내의원에 어명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낙죽을 제조하고 바치는 부서가 내의원이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인데 우유가 왕의 건강을 관리하는 ‘약(藥)’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종 3년 9월 20일의 기록을 보면“올해 낙죽 공상(供上)을 동짓달 초하룻날부터 거행하라고 약원(藥院)에 분부하라”고 적혀 있어,낙죽 제조를 연례행사로 하는 것까지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또한 인종 1년 2월 7일의 기록을 보면 신하들이 아뢰기를,“의원들이 상세히 진찰하니 위에서는 얼굴빛이 초췌할 뿐 아니라 병의 증세까지 이미 생겨서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심기가 답답하고 열이 나서 때때로 놀라고 두근거리신다 합니다.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갈증이 나서 물을 많이 마시겠고 인음(引飮)하면 부증(浮證)이 따라서 발생하게 될 것이니 신은 놀랍고 염려스러움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손상이 이미 극도에 달하여 의약은 효험이 없으니 타락은 조금 차서 심열(心熱)을 제거할 수 있고 또 이 약물은 고깃국과 같은 것이 아니니 오늘부터 드소서”라고 얘기하고 2월 10일에 내의원 제조 등이 우유를 드실 것을 거듭 권하자, 급기야 왕이 이에 따른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우유의 효능을 짐작할 수 있는데 영양상태가 좋지 못해 얼굴색이 좋지 못하면서 불면증과 가슴 두근거리는 증상에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증상의 원인이 스트레스로 인한 심열증임을 알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갈증이 생기고 물을 많이 먹어 몸이 붓는 증상에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Munhwa ☜       장동민 하늘땅한의원장 www.oksky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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