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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의 엘렌 올렌스카 백작부인

浮萍草 2014. 7. 16. 00:00
    미국으로 돌아온 미국 여자의 전말
    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미국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디스 워튼 자신에게도 매우 궁금했을 문제로 보인다. 
    그녀 자신이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살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 남자’와 결혼하고 이혼했으며‘유럽 남자’와 연애에 빠지기도 했으니까.
    이디스 워튼은 1862년에 태어났고,‘순수의 시대’는 그녀가 50대 후반인 1920년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은 1870년대 초의 뉴욕이다.
    (‘미국 여자’를 열망하는 유럽 남자들이 나오는 소설 ‘도깨비불’의 배경은 1920년대 파리. 두 소설의 시간적 배경에는 50년의 격차가 있다.)
    이디스 워튼은 1862년 미국 상류 가문에서 태어났다. 신대륙의 구습을 갑갑해하던 '미국 여자' 중의 하나였다.

    그러니까 작가 자신이 청춘을 보냈던 시대를 노년에 재현했다는 말이다. 이 소설에는“미국 여자처럼 건전하고 강인한 여자”(도깨비불)는 없다. 대신“가엾은 엘렌 올렌스카”가 있다. 50년 전이라 그럴 수도 있고 유럽이 아닌 미국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고국에 돌아온 ‘미국 여자’는 더 이상 ‘미국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미국에서 그녀는 ‘유럽에서 온 여자’가 된다. 엘렌은 어느 날 문득 뉴욕에 나타난다. 올렌스카 백작과 결혼해 백작부인이 된 그녀가 소문과 억측을 몰고 돌아온 것. 아처는 엘렌의 존재가 불쾌하다. 그녀는 그가 곧 결혼할 예정인 메이의 사촌언니. 결혼에 실패하고‘사연 있는 여자’가 된 엘렌의 존재가 메이의 가문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기 때문에 그렇다. 아처와 메이에게는 명성만큼이나 명예가 중요하다. 그들은 뉴욕의 가장 명망 있는 가문들의 자손이므로. 뉴욕 사람들은 엘렌에게 실망한다. “그런 개인사가 있는 여자에게는 훨씬 더 극적인 것을 기대”했으나 그녀에게는 과장된 표정도 없고 대단한 신식 옷차림도 없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엘렌은 뉴요커들이 생각하는 ‘세련됨’에 반(反)하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처는 엘렌의 세련됨을 발견하면서(동시에 뉴요커들의 촌스러움을 발견하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에게 세련된 여자란, 외양보다도 의식이 세련된 여자이기 때문이다.
    ㆍ뉴요커에게 ‘세련’의 의미는 보석과 모피코트로 외모를 갖추는 일
    그렇다면 세련이란 무엇인가. 뉴요커들에게는 이런 것이다. 캐럿이 큰 보석들과 모피코트와 신식 옷차림에 둘러싸이는 일 요란하고 반짝이는 ‘외모’를 갖추는 일이다. 그러나 아처에게 그것은 문학적 묘미나 정신적인 것을 나눌 수 있는 ‘내면’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아처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순수의 시대'는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사진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1993년작이다. 아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엘렌은 미셸 파이퍼, 메이는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했다.

    그렇다면 엘렌에게 세련이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세련될 수 없는 건가요?” 역시, 아처보다도 한수 위로 보인다. 이 문장을 읽으며 깨달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련의 ‘정도’에 걸맞은 연인들을 맞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그러므로 ‘내게 과분한 여자’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꼭 외양보다 내면을 중시하는 게 나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는 각자가 필요로 하는 연인을 만나면 된다고.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안다고 해도 그런 연인을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그러니 계속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실패는 필연적인 일이라고.
    ㆍ내게 과분한 여자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아처와 엘렌의 실패도 필연적이었다. 둘은 서로를 발견했으나 그들의 사랑은 ‘순수의 시대’에 패배했다. 엘렌은 시대와 사회의 심판에 순응하며 유럽으로 돌아간다. 그나마 그녀는 덜 비참한 경우다. 불쌍하고 처절한 ‘테스’ 같은 여자도 있다. 엘렌과 거의 동시대 인물이지만 계급이 낮은 그녀는 계급 사회로부터 가혹하게 심판 받는다. 상상력이 억압된 시대를 살았던 죄다. 그녀들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을 자처할 까닭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인간은 그 자신으로 살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지 않는가. 엘렌에 대한 이디스 워튼의 이런 묘사가 있다. “하지만 한때 그녀를 매혹시켰던 것은 여전히 그녀를 매혹시킬 것이다. 설령 그런 일이 그녀의 뜻에 반하는 것이라고 해도.” 50대가 된 작가가, 현재의 자신과 20대였던 자신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쓸 수 있었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Premium Chosun ☜       한은형 소설가 Candider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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