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2 나는 왜 죽음의 여의사인가?

浮萍草 2014. 5. 29. 06:30
    
    ㆍ검은 원피스
    칠 전부터 마음먹고 준비한 검정색 원피스가 말썽이었다. 
    검정색이 세련되고 단정해 보이지만 호스피스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어둡다는 것이다. 
    방송국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옷을 세 번이나 갈아입었지만 마뜩잖아 처음 검정색 원피스에 파란 스카프를 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 
    담당 PD는 “시청자들이 부담스러우니까 죽음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하지는 마세요.”라고 했다. 
    죽음을 빼면 딱히 할 말도 없는데…. 
    어쩌다가 나는 옷 입는 것부터 말하는 것까지 불편함을 주는 ‘죽음’이라는 것과 뒤섞이게 되었을까?
    “그때 남편을 큰 병원으로 옮겼더라면 좀 더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지금도 그것이 후회스러워요. 
    그래도 통증없이 편안히 떠나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해요.” 
    명호 씨 부인이 남편이 떠난 한 달쯤 뒤에 찾아와서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누구를 원망하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왠지 섭섭했다.
    ㆍ폐암 말기 명호씨
    47세 명호 씨는 호흡곤란이 심한 말기 폐암환자였다. 서울의 모 대학병원에서 전원 되어 올 때부터 양쪽 폐가 다 망가져 물에 푹 잠긴 것처럼 숨이 찼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기침과 호흡곤란이 차츰 좋아져서 가까운 곳에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다닐 정도가 됐다. 명호 씨는 노래교실에서 부인의 손을 꼭 잡고 평소에 부르던 <네 박자>를 흥겹게 불렀다. 가족들은 모두 이곳으로 잘 옮겼다고 하면서 주치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명호 씨가 입맛을 되찾자 생선회를 먹고 싶어 했다. 항암치료 중이거나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 환자는 날것을 먹으면 세균감염이 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나는 명호 씨의 백혈구 수치가 정상이기 때문에 생선회를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명호 씨 큰누나는 한 여름에는 식중독 때문에 위험하니 찬바람이 불면 먹게 하자고 심하게 반대를 했다. 나는 대놓고“명호 씨가 찬바람 불 때까지 살수가 없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못 먹게 해서 떠나보내면 명호 씨 부인이 살면서 두고두고 후회 할 것 같아 여러 가지 의학적인 근거를 들어서‘생선회를 꼭 드시게 하라’는 편지를 남기고 퇴근했다. 그렇게 좋은 나날들이 딱 3주였다. 어느 날 예상대로 명호 씨는 갑작스런 호흡 곤란이 와서 이틀을 못 채우고 황망히 떠났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호스피스 팀이 만들어준 편안했던 짧은 추억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명호 씨 누나들은 주치의를 원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말기 폐암은 의사도 가장 난감해 하는 병이다. 멀쩡하게 밥 잘 먹고 농담까지 하던 환자가 갑자기 숨을 쌕쌕 몰아쉬며 떠나기도 하고 기침을 하다가 각혈이 시작되면 피범벅을 이루며 숨을 거두기도 한다. 사람들은 밥 잘 먹고 대화 할 수 있으면 못 먹고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할 때는 그렇지만 우리의 마지막은 일반상식이 안 통할 때가 많다. 석 달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던 위암환자가 밥 한 그릇 뚝딱 먹는 폐암환자보다 더 오래 버틴다. 그래서 나는 명호 씨 같은 폐암환자가 오면 입원하면 마지막 상황을 적나라하게 이야기 해준다. “이렇게 잘 지내시다가도 내일이라도 갑자기 숨이 차서 떠날 수가 있어요.” 그러나 명호 씨 가족처럼 아무도 선뜻 이 말을 믿지 않는다. 멀쩡한 사람 뒤에서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의사가 잔인하게만 보인다. “당신은 의사라는 사람이 뭐하는 거야. 사람이 죽어 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님이 이곳에 입원하시고 더 빨리 나빠지는 것 같아요.” “어차피 이곳은 아무것도 안하는 곳이니까 개똥 쑥이라도 드시게 해야지요.” “아무래도 뇌종양이니까 신경외과에서 잘 보시니까 주치의를 바꿔주세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은 사람을 겉잡을 수 없이 거칠게도 만들고, 현명한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ㆍ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죽음의 여의사인가? 죽음을 깊숙하게 연구하고 싶어서라든지 내 성격이 원래 우울해서라고 쓰고 싶지는 않다. 나는 호스피스 일을 하면서 죽음을 준비해야하는 사람도 죽음에 이르는 직전까지는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하루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거창한 죽음의 여의사가 아니라 그저 생명의 에너지가 다 할 때까지 불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의사로서의 당연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름이 주는 거부감 때문에 국내 암환자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국내 사용량은 모르핀으로 환산했을 때 환자 1인당 연간 45mg에 불과하다. 미국 693.44mg, 영국 334.52mg은 물론 세계평균 58.00mg 보다도 낮다. 통증을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것이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아프면서 죽어간다. 의사입장에서 보면 죽음이 삶의 종착역인지 따위는 일단 안 아프게 한 다음에 생각할 일인 것이다. 암 환자의 통증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출산의 고통이 10점 만점에 7~8점이라면 암 환자의 통증은 10점 이상도 간다. 암성통증은 암이 진행되는 생명의 마지막에는 더 심해지고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자와 가족을 애타게 한다. 1970년대에 위암으로 떠난 외할머니는 아파서 앉아서 돌아가셨지만 2012년도에 뼈로 전이된 폐암으로 떠난 어머니는 통증 없이 편안히 누워서 떠나셨다. 현대의학의 진수는 사람을 영원히 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아프면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나의 환자들은 모두 명호 씨처럼 사망으로 퇴원을 했다. 마지막에 하는 임종 돌봄이라는 것은 남녀노소나 암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똑같기 때문에 임종 돌봄과 통증치료에서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한다면 호스피스 의사는 참 슬픈 일일 것이다.

    ㆍ혜영씨의 금반지
    혜영 씨는 오십인 나보다 딱 두 살이 어렸다. 담도 암 때문에 온몸이 노랬고 달고 있는 하얀 수액제가 보험이 되냐고 물어 오는 알뜰한 살림꾼 이였다. 젊은 나이에 찾아 온 자신의 죽음보다 다리가 불편했던 둘째 딸이 얼마 전에 수술을 했는데 성공한 사실이 더 기쁜 천상 엄마이기도 했다. 혜영 씨 남편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다. 그래서인지 혜영 씨 부부는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렀다. 남편이 호스피스 전원 이야기를 꺼내자 혜영 씨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오해를 하기도 했다. 나는 주제넘게 혜영 씨 남편한테 “여자는 백송이 장미꽃을 선물 받는 것보다 한 송이씩 백번의 선물 받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충고를 해 버렸다. 어느 날 혜영 씨가 가느다란 금반지를 만지작거리며“우리 그이가 사줬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통증은 감정이다. 모르핀이라는 진통제도 사용해야하겠지만 환자가 살아 온 인생을 죽 듣다보면 모르핀보다 더 강력한 진통제를 발견 할 때도 있다. 시작은 알고 있지만 끝이 어떻게 닫힐지 모르는 인생의 여행길을 걷다가 환자는 나와 우연히 만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수많은 환자와 구구절절했던 추억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고 환자는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머나먼 길로 떠나 버려서 슬프게 아름다운 이 마지막 풍 경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호스피스 돌봄이 떠나는 자의 편안한 안식과 죽음 뒤에 펼쳐질 가족의 삶 속에 숨겨진 위로가 될 것임이 틀림이 없을 것이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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