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쥑'이는 여의사의 행복처방

1 치료비 면제 받기 위해 이혼한 40대 주부

浮萍草 2014. 5. 28. 11:06
    신한 환자였다. 
    46세 아줌마인데 말기 간암이다. 
    말기 암 환자는 깡 마른모습이 대부분이지만 그녀는 몸무게가 족히 100킬로그램은 되어 보였다. 
    간암환자에게 흔한 복수와 부종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 말에 의하면 원래가 살집이 있었단다. 
    살면서 한 번도 선생님처럼 날씬한 적이 없었다면서 털털 웃었다.
    3년 동안 투병생활을 했다. 
    어려운 고비를 수십 번 넘겨서 그런지 죽을 각오는 단단히 하고 왔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그래도 내심으로는 초등학교 5학년인 쌍둥이 아들 녀석들이 걱정된다고 했지만 아이들 고모가 구김없이 잘 키워주고 있어서 안심한다고도 했다. 
    씩씩한 것이 아이들은 그녀를 꼭 닮았을 것 같다. 
    오른쪽 폐로 전이 된 암 때문에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늘 “난 괜찮아요”였다.
    ㆍ고물상 남편은 치료비 부담에 허덕여
    그런데 그녀는 이혼녀였다. 고물상 하는 남편이 치료비로 허덕이는 걸 보고 선뜻 이혼을 결심했다. 재산을 포기하면서 이혼을 하면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그때부터 의료보호 환자가 되어 병원비가 거의 무료다. 친정 쪽으로는 B형 간염이 아무도 없는데 살아보겠다고 힘든 직장을 생활하는 바람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도 호강을 하고 살아온 것도 아닌데 나 같으면 그런 이유로 남편과 헤어 질 용기가 있었을까? 더군다나 완치되는 병도 아니고 곧 죽을병인데 나는 그녀의 그런 넉넉함이 좋았다. 하지만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이 곤란해지자 편안해보였던 그녀도“숨이 차니까 약간 무섭기는 하네요.” 하면서 울먹였다. “나…. 그동안 거짓말했어요. 다 받아들인다고 했으면서 서러웠어요.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불안해서인지 힘들어보였다. 그녀의 언니는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서서 눈물만 흘렸다. 나는 안정제를 쓰는 대신“당신 그동안 인생 참 잘 살았어요. 누구보다 아이들 정말 예쁘게 키웠고 남편을 사랑해서 자기가 가진 것 다 내어주었잖아요. 나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걸 알아요.”라며 침대 위로 두 팔을 활짝 벌려서 안았다. 솜이불마냥 푹신했다. 사람이 아프면 열등해지기가 쉽다. 그동안 허술하게 살아서 병에 걸린 것도 같고 건강을 돌보지 않았던 지난 온 날들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평소 대수롭게 넘어가던 사소한 일도 몸이 불편해지면 예민해진다.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 입원 할 정도 이면 병원에 와서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보면 어찌나 건강해 보이는지. 참 부럽다. 나도 마흔 살까지는 의사가 아니었으니까 충분히 이해된다. “집사람이 그러네요. 살면서 누구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과장님은 부럽대요.” 말기 위암으로 입원해 있는 경순씨 남편이 말했다. 난감했다. 이래서 내 또래의 중년여성을 진료하기가 부담스럽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하는 환자들의 침대사이로 또각또각 구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회진 다니는 자체가 나는 미안하고 조심스럽다. 빨간 립스틱도 부담스럽다. 다른 병이야 치료해서 다시 건강해지면 그만이지만 내가 돌보는 호스피스 환자는 옛날처럼 다시 건강해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많이 가진 것으로 비쳐질까 두렵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환자들 가슴에 대못 박는 건강인들 그래도 나는 병마(病魔)를 이기지 못하고 남들보다 일찍 죽음이 찾아온 환자나 가족들을 한번도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가 되는 것이 잘못 산 인생의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보다 일찍 찾아 온 죽음을 달리 해석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3살짜리의 아기 엄마가 말기 위암이었다. 이 젊은 여인의 친정어머니는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딸이 막상 임종하게 되자 “사위하고 시댁식구가 저 아이 신경을 너무 많이 쓰게 해서 이렇게 된 거야.” 라고 소리치고야 말았다. 몇 개월을 휴직하고 밤낮으로 아내를 돌보던 사위의 얼굴이 몹시 무거워 보였다. 건강한 사람들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환자의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는다. 평소 바가지 잘 긁는 부인이 병이라도 나면 철없는 남편은“당신은 다 좋은데 그 성질 때문에 암에 걸렸어.”라고 하기도 했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의학상식을 들먹이며 “당신은 술을 했어. 담배를 했어. 고기를 먹었어”라며 암 환자를 몰아댄다. 그들의 말처럼 그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몹쓸 병에 걸렸을 수도 있겠지만 꼭 한 가지만 꼬집어서 이 깊은 병의 원인을 말하기는 곤란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참혹한 현실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면 서로가 불편해진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짧게 남은 환자의 인생을 옷장을 정리할 때 사용 하는 진공 압축 팩에 비교한다. 철이 지난 두터운 겨울옷은 차곡차곡 정리해서 챙겨 넣어도 라면박스 서너 상자를 훌쩍 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요즘은 간단한 비닐 백 한 개로 줄여주는 진공 팩이라는 것이 있다. 다섯 채의 두터운 솜이불도 순식간에 얇고 납작하게 만들어 준다. 편리한 진공 팩 덕분에 옷과 이불을 버리지 않고도 옷장과 이불장은 깔끔하게 정리 정돈이 된다. 옷과 이불의 부피는 5분의 1로 싹 줄어들었지만, 무게는 그대로다.
    ㆍ진공 팩처럼 시간을 압축해 여생을 진하게 살다
    내가 돌보는 환자도 진공 팩처럼 시간을 압축해서 인생을 살고 있다. 오리털 외투가 압축되면 모양이나 볼품은 없어지지만 그래도 외투는 외투이다. 진공 압축 팩으로 압축되어도 두툼한 겨울옷은 옷장에 고스란히 다 들어있는 것처럼 인생을 압축해서 사는 젊은 말기 암 환자도 평균 수명 이상으로 장수하는 사람과 같은 인생의 깊이와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경쟁이 끝을 모르고 치열한 세상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도 남들보다 많아야 성공한 인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압축된 오리털 외투 모양 쭈글쭈글 볼품없이 일찍 죽음이 찾아온 나의 환자들은 참 훌륭했다. 세상이라는 무대 뒤편에서 더 이상은 주목받지 못하고 희미하게 꺼져가는 생명에게서 그 누구보다 당당한 성숙된 인간미를 보았다. 예전에 나는 보기 딱 할 만큼 남을 부러워했다. 뚱뚱할 때는 날씬한 사람을,늦게 시작한 의사생활이 비참하다고 느껴질 때는 처음부터 순탄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동료를 얄밉도록 부러워했다. 혹자는 잘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인생의 꿈도 생기고 삶을 개척할 의지도 생긴다고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 부러움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계기는 되었을 지라도 그 과정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ㆍ각자에게 맞는 인생의 향기는 따로 있다
    이제 내가 진실로 부러운 사람은 돈이 많거나 아이들이 잘되어 있거나 예쁘고 날씬하고 건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삶이 내게 다가오더라도 잘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우리 각자는 인생의 향기가 따로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말자. 인생의 마지막에는 행복했던 자신의 과거조차도 부러워하지 말아야한다. 그 시간에는 그 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행복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이 온 것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쉬운데 여러 가지 잣대로 부러워하면 병들어 있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 부러워하지 말자, 그대여! 인생이 아파도 마지막까지 이 세상을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의과대학에 다니던 중 결혼을 하면서 공부를 중단했던 그녀는 졸업 후 13년 서른아홉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 중 암성통증(암 환자가 겪는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환자를 보며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고위 과정을 수료, 2008년부터 지금까지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학박사나 가정의학과 전문의 등의 의학 지식보다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온 시간이 호스피스 활동에 더 도움이 된다는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환한 웃음을 짓는 호스피스 환자들의 모습을 담아 사진 전시회를 여는가 하면 항암 요리를 만들어 환자의 가족들에게 선사하기도 하는 등 무채색의 호스피스 병동을 ‘컬러풀 호스피스’ 병동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5년 동안 800여 명의 환자에게 임종 선언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순간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살아내기 위해 ‘죽음’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9년 국가암관리사업평가대회 호스피스부문 보건복지부장관상을 2011년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사연공모전 우수상을 받았다.

    Premium Chosun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dodo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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