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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멸종說

浮萍草 2014. 5. 16. 21:39
    국내 판매 1위, 세계 생산량 4위… '에덴의 善惡果'란 말 있는 과일
    인간이 최초로 재배한 작물인데 대량생산 위해 유전자群 단순화
    전염병에 취약해 멸종 위기 맞아… 다음 세대는 어떤 바나나 맛볼까
    ▲ 김성윤 문화부 기자
    "여보 바나나가 멸종(滅種)돼서 지구 상에서 사라질 거래! 우리 아가는 앞으로 바나나 맛도 못 보게 되는 거잖아. 어떡해?" 얼마 전 아내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무슨 소린가 싶어 인터넷 검색창에'바나나'를 쳐봤다. '바나나 멸종'이 자동 단어 조합으로 떴다. 지난달 21일 미국 CNBC 방송이"바나나 전염병인 파나마병의 일종인 TR4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고 있으며 백신도 없어서 이대로라면 바나나가 지구 상에서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한 내용이 국내에도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것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에게 바나나는 여전히 '비싸고 맛있는 수입 과일'이란 이미지가 남아 있다. 바나나 멸종 위기설이 그리 와 닿지 않았다. '바나나 없으면 사과 먹으면 되지'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나나는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즐겨 먹는 과일이다. 지난 1월 롯데마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바나나는'가장 많이 팔리는 과일' 순위에서 1위를 그것도 3년 연속으로 차지했다.
    바나나가 판매량 1위가 된 건 2011년부터였다. 태풍과 이상기온으로 과일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가 한시적으로 수입 바나나에 대해 관세를 면제해줬다. 이를 계기로 1위에 오른 뒤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나나 멸종은 단지 비싼 수입 과일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일상 식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건'이었다. 바나나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바나나는 만만찮은 과일이었다. 바나나는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과일로 꼽힌다. 고고학자들은 파푸아뉴기니 고산지에서 아주 오래전에 바나나를 경작한 흔적을 찾았다. 오늘날 바나나는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기르는 과일로, 전체 작물 중에서 밀·쌀·옥수수에 이어 넷째로 생산량이 많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원인이 된 선악과(善惡果)가 흔히 알려진 대로 사과가 아니라 바나나라는 설(說)도 있다. 서기 400년경 성서학자이자 가톨릭 성인(聖人)인 히에로니무스가 '선악과'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악의적인(malicious)'과 비슷한 어감을 주려고 '말룸(malum)'을 골랐는데, 말룸은 사과로도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바나나-세계를 바꾼 과일의 운명'이란 책을 쓴 댄 쾨펠에 따르면,라틴어 성경을 사용하지 않은 지역에선 선악과를 바나나로 이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성경 어디에도 선악과가 사과라고 나오진 않는다. 이슬람 경전 코란에도 에덴동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데 금지된 열매의 나무를 '탈(talh)'이라고 불렀고 학자들은 이 단어를 '바나나 나무'로 번역한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비로소 둘이 서로 다르며 벌거벗었음을 알게 됐다'고 나온다. '분류학의 아버지'인 스웨덴 과학자 칼 폰 린네는 바나나에 '무사 사펜티움(musa sapentium)'이란 학명을 붙였다. '지혜의 바나나'라는 뜻이다. 7세기 이슬람 상인과 군인들이 바나나를 아프리카에 소개했다. 아랍어로 '손가락'이란 단어의 변형인 '바난(banan)'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바나나'란 이름의 어원이 됐다. 19세기 말 바나나 열풍이 미국에 불었다. 야심 찬 사업가들이 중남미 여러 지역에 농장을 운영하면서 바나나를 재배했고 상하기 쉬운 바나나를 운송하기 위해 최초로 냉장운송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전 세계에 바나나 품종이 1000여 가지나 되지만 전체 생산량의 95%가 캐번디시(Cavendish)라는 품종이다. 동식물은 여러 유전자가 섞이고 그 안에서 변이가 일어나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한다. 질병이나 가뭄 따위 환경 변화에 취약한 유전자군은 죽고 이겨낸 유전자 변이 개체는 살아남는다. 하지만 인간은 동일한 품질의 동식물을 대량생산하길 원한다. 그러다 보니 유전자군이 점점 단순화됐다. 다양한 품종을 재배했다면 피해가 캐번디시와 이 품종을 재배하는 특정 지역에 국한됐을 텐데 전 세계 거의 모든 바나나가 캐번디시다 보니 멸종 위기에 처한 것 이다. 정말 앞으로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바나나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식물학자들이 캐번디시를 대체할 품종을 필사적으로 개발 중이다. 과거에도 이러한 개발 노력이 있었고,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옛날에 바나나 시장을 지배하던 품종은 '그로미셸(Gros Michel)'이었다. 1960년대 그로미셸 바나나가 파나마병에 쓰러지자 바나나 업체가 대안으로 개발한 품종이 캐번디시였다. 그런데 50년이 채 안 돼 파나마병의 변종인 TR4에 캐번디시가 죽어가고 있다. 새로운 바나나 품종 개발은 무척 어렵다. 전염병 등에 내성이 강해야 할 뿐 아니라 껍질이 단단하고 번식력이 강하고 숙성도 조절이 가능해야 한다. 가장 큰 어려움은 캐번디시 바나나에 길든 소비자의 입맛이다. 캐번디시의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씹는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골드핑거'라는 장점 많은 새로운 바나나 품종이 개발됐지만 캐번디시보다 덜 부드럽고 살짝 시큼한 맛이 나서 바나나 업체들이 캐번디시 대체 품종으로 선택 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내 아이가 먹게 될 바나나는 내가 아는 바나나와 전혀 다른 맛을 가진 과일일지도 모르겠다.
    Premium Chosun ☜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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