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근동(近東)고고학 산책

5 새로 지은 숭례문은 국보 1호의 가치가 없다

浮萍草 2014. 5. 12. 06:00
    화재는 정신세계의 흐름이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다. 
    문화재를 잘 관리하는 것은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데 필수적이다. 
    필자는 이스라엘,요르단,씨리아,이라크,터키를 포함하는 근동(近東)지역과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지역과 관계된 고고학과 문화재보존에 관하여 삼십 년 
    이상 연구하며 교육하는 동안 축적한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복원을 포함한 우리나라 문화재보존과 관리에 대하여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ㆍ보존해야 할 문화재의 범위
    낙산사 소실과 숭례문 소실 같은 엄청난 재난을 겪으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문화재라면 건축물 같은 규모가 큰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넓은 의미에서는 과거에 한반도에서 생산된 거의 모든 것들을 문화재의 범주에 넣을 수 있고 또한 그것들을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로 나눌 수 있다. 유형문화재(Physical cultural heritage)의 수리,보존,복구(복원)를 포함하는 관리는,문서,책,필름 (영화),녹음자료,디지털자료,사진,옷이나 천 같은 유기물,예술 작품,토기나 그릇,장신구,금속 물건,건축물,해양 유물,역사적 장소,고고학적 유적,특수한 지형,기타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물건이나 자료와 장소들을 망라해야 한다. 무형문화재(Intangible cultural heritage)에는 사회적 전통,관습,신앙,예술적 표현,언어 (사투리),음악,춤,구전(口傳),민담,속담,기타 인간활동으로 유발되는 가치 있는 정신적인 자료들을 포함해야 한다. 특히 과거의 자료만이 아니라 현재 있는 자료들 중에서 미래적 가치가 있는 것을 가려내어 보존하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ㆍ‘문화재 복원’의 참된 뜻
    문화재라는 것은 대개 이 세상에 하나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건축문화재는 그러하다. 건축문화재가 소실되거나 파괴되면 복원(復元, 復原)한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없어진 건물을 똑 같이 만들어 놓으면 복원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복원이라는 말의 뜻대로 하려면 원래의 자재(부품)들이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복원(영어로는 restoration)이라고 한다. 원래의 자재가 별로 없이 원래의 것처럼 만든 것을 복제품 또는 모조품 (영어로는 replica)이라고 한다. replica는 어떤 물건을 축소 또는 실물 크기로 만든 것이다. 원래의 자재에 대한 새로운 자재의 비율이 적을수록 복원에 가까워진다. 부서진 고대 항아리를 예로 들어 보자. 깨졌지만 조각들은 거의 다 있기 때문에 붙여서 전과 같은 모양을 구성했다면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아 있는 조각이 60% 정도 된다면 역시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아리의 주둥이나 손잡이나 특수한 무늬 같이 연대나 문화의 특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부분들’(diagnostic pieces)이 없어진 경우에는 그 항아리의 흙과 같은 흙으로 재구성해 놓아도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다. 항아리의 30% 정도가 되는 부분들이 조각으로 남아있는 경우에는 특수한 사안이 아니라면 붙일 가치가 없다고 본다. 건축문화재의 경우도 비슷하다. 지중해 연안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에서는 로마 도시 스키토폴리스(벧샨)를 복원하고 있고 요르단에서도 로마 도시 제라시를 복원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석조건물들로 이루어진 도시 전체를 재건하는 규모이므로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 이 거대한 사업을 복원(復元; restoration) 또는 재건(再建; reconstruction)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너지고 부서졌지만 남아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복궁 복원사업을 40년에 걸쳐서(1990-2030년) 약 80% 정도 완성한다는 목표로 진행한다고 한다. 일제가 제거한 궁들과 건물들을 새로 만들어 넣는 것이라면 복원이라기보다는‘재조성’(再造成; remake refashion)이라고 해야 하고, 원래의 자재들을 사용한다면 복원이라고 해야 한다.
    ▲ 요르단 북부에 있는 로마시대의 도시 제라시 복원 현장.도시의 중심을 이루는 곧은 거리(카르도 맥씨무스)의 시작점에 있는 타원형 광장.로마가 이곳을 정복
    해서 오랫동안 통치한 결과로 발생한 도시이다.요르단은 이 도시를 복원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

    ㆍ숭례문은 여전히 국보 1호?
    숭례문이 타버리자,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전문가들의 기관인 문화재위원회가 숭례문의 국보 1호 지위를 존속시키기로 했다. 목조건물과 역사적 의미를 복합적으로 평가해서 국보 1호로 지정하였기 때문에 목조건물이 타버렸지만 그 지위는 유지시킨다는 논리였다. 당시에 온 나라가 비통하는 때에 누가 감히 국보 1호의 지위를 상실했다고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논리대로 엄격하게 말하자면,건물이 있었으므로 역사적 의미가 녹아들었기 때문에 건물이 없어졌으니 그 의미의 실체도 사라졌다고 보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었지만, 재고의 가능성은 많은 것이다. 동대문성곽공원 계획에서 보다시피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동대문교회는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고 결정하고 해체를 하려다가 언론과 여론이 이의를 제기하자,재검토 하겠다고 물러 선 것은 문화재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 2008년 2월 11일 서울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불타고 남은 숭례문의 문루 두 층에 새로운 자재가 많이 들어가서 복원이 아니라
    신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조선일보DB

    낙산사가 소실되자 거의 5년이 걸려서 ‘복원했다’고 잔치를 했다. 잿더미가 되었고 옛‘청사진’도 없어서 김홍도의‘낙산사도’그림과 절터 발굴자료를 가지고 공사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복원이 아니라 재조성이다. 숭례문은 석조 성문과 목조문루 두 층으로 되어 있었다. 문루를 ‘복원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고려해 볼 문제이다. 치마와 저고리가 있는데 치마는 조금 타고 저고리는 거의 다 타버려서 다른 천으로 저고리를 만들었으면 그것은 오늘의 재료로 오늘의 장인이 만든 것이다. 문화재적 가치를 논하기 어렵다. 다만 석조대가 옛 것이니 숭례문을 전체적으로 보면 대략 50% 정도의 문화재적 가치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국보 제1호 지위를 유지하는 데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ㆍ건축문화재 복원은 새로운 차원의 문화재 창조로 승화
    수리(修理)가 아니라 소실된 목조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그런가? 어떤 건물이 문화재가 되는 첫 조건은 무엇인가? 오랜 시간과 역사적 침윤이다. 이스라엘은 서기 1,70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은 문화재로 분류한다고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만큼 연륜이 문화재가 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라진 건물을 다시 불러와서 전과 같이 문화재의 가치를 발휘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단 소실된 건축문화재는 복원에 집착하지 말고, 기본적으로 원본과 같게 짓되, 현대 과학과 재료와 기술과 지식과 안목을 총동원해서 새로운 문화재로 거듭 나게 함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문화재는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새 건물은 한국의 21세기 역사와 같이 시작하는 것이므로 현대적 숨결로 ‘재구성’함이 낫다. 그렇게 해서 새 건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고 새로운 문화재의 길을 가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를 많이 해서 목조 건물이었던 문화재를 다시 만들 때에는 또 불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떤 부분들은 석재를 이용하는 방법도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전자,전기,철강 및 금속,목재,석재,공예,건축,기타 모든 기술을 사용해서‘옛 이름과 옛 청사진’을 사용한 자랑스럽고 영구히 견딜 수 있는 ‘새 건물’을 출생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미 죽어 없어진 건물을 살려서 사라진 혼을 집어넣으려는 수고를 하지 말고 옛 이름을 가지고 새로 태어나는 건물을 만들어 당당하게 21세기 한국의 문화재로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건물은 옛 것의 기억과 현재의 기술과 사상이 총화를 이룬 격조 높은 문화재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숭례문의 경우처럼, 조선시대의 것으로 부활시키려는 생각에만 집착하면 ‘문화재 복원’으로 일어나는 논쟁과 혼란과 잡음이 이어질 것이다. 숭례문 ‘복원’ 후에 보았듯이,옛 기술과 옛 재료를 다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일본제 안료를 수입해서 단청을 했다가 낭패를 보았으며 금강송을 사용했는지 석연치 않다고 도편수의 사업장을 경찰이 압수수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 복원에 대한 개념이‘똑 같게 만든다’는 강박관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선진국처럼 현대화된 문화재 수리,복원,재건,재구성 개념과 법령이 필요한 시기이다.
    Premium Chosun ☜       고세진 대한성서고고학회 회장 youaremyhon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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