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근동(近東)고고학 산책

2 국익을 위한 결단

浮萍草 2014. 5. 5. 06:00
    협상의 걸림돌을 걷어 낼 수 있는 리더의 담력와 결단
    ▲ 아브라함 타미르 장군.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성사시키고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
    하는데 공헌한 인물
    브라함 타미르 장군은 막사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검푸른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중천을 지난 달빛을 받은 산들은,구리를 품어 붉게 보이던 낮의 모습을 감추고 저 만큼 물러서서 그의 거동을 지켜 보고 있었다. 홍해마저 숨을 죽였는지 파도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막사 앞에서 남쪽을 응시하였다. 이집트 진영은 깊은 잠에 빠져들어 기척이 없고 두어 개의 창문들만 어스름한 불빛을 내 보내고 있었다. 이미 그의 주위에는 병사들이 말없이 대기하고 있었다. 5월이 가까워오는 시나이 반도 북단의 밤 기온은 온기를 품은 신선한 바람을 살랑이게 했다. 다른 때 같으면 기분 좋은 밤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날 밤,타미르 장군과 병사들은 긴장 탓에 한기를 느꼈다. “가자!” 그가 짤막하게 내 뱉은 한 마디에 병사들은 꿀꺽 침을 삼키며 밧줄들을 들고 발소리를 죽이며 움직였다. 절대정숙! 잡담금지! 그날 밤에 하달된 군령이었다.
    ▲ 타바 국경지역의 풍경

    이스라엘 병사들은 홍해 옆 타바 근처에 임시적 국경선으로 표시해 놓은 큰 돌들을 이스라엘 쪽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행동이었다. 이집트의 영토를 이스라엘 쪽으로 확장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칫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이적행위와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는 엄청난 일이었다. 팔짱을 끼고 병사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타미르 장군의 얼굴은 군모 챙 밑 그늘에서 어두웠지만 그의 두 눈은 불타고 있었다. 병사들에게는 절대 함구령이 떨어졌다. 타미르 장군은 직접 군용전화기의 회전 손잡이를 드르륵 드르륵 돌렸다.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군모를 벗고 이마를 쓸었다. 홍해의 동쪽 산들 위로 해가 살며시 떠오르기 전에 모든 일은 끝났다.
    ㆍ역사책에 기록하지 않은 전설
    이 사건은 1982년 4월 21일 이스라엘 내각이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과 외무장관에게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국경선 확정의 전권을 부여한 시간과 나흘 후인 25일 시나이 반도에서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철수가 실행된 어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집트가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 쪽으로 국경선을 좀 더 올려 줌으로써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영구한 국경선이 확정되었고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요구한 사안들도 쉽게 받아들여졌다. 결국 두 나라 사이에 평화가 시작되는 타바 협상이 바로 완성되었다. 그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30년이 넘게 평화를 이어오고 있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희구하였던 영구한 평화가 정착된 것이다.
    ▲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후 이슬람
    에게 피살당한 안와르 사타트 이집트 대통령
    이 사건은 역사책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노장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일이며 타미르 장군을 비롯한 많은 전쟁영웅들이 타계하고 샤론 국방장관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혼수상태에 있으므로 이제는 전통적으로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대국이며 아랍연맹의 맹주였던 이집트와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영구한 평화를 이룩한 위대한 협상의 기념비적 전설로 이스라엘 역사에 남을 비화(秘話)이다.
    ㆍ협상의 걸림돌
    당시에 이집트와 이스라엘 두 나라 사이의 가장 큰 쟁점은 지중해에 있는 가자와 라피아에서 홍해에 있는 타바와 에일랕 쪽으로 국경선을 긋는데 15개의 중요한 지점들을 어떻게 이을 것이냐라는 문제였고 그 중에서도 타바 쪽의 국경선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것 때문에 협상은 계속 난항을 겪고 있었다. 시나이 반도는 이스라엘 본토보다 세 배나 컸고 당시 돈으로 1천억 달러어치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고 이미 15년 동안에 정착촌들과 군사기지 170여개를 설치하였는데 그곳을 버리고 완전히 철수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국민들 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타바 협상은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 미국의 중재와 이스라엘의 결단으로 확정된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의 영구 국경선.

    ▲ 전쟁영웅 아리엘샤론은 이스라엘 총리
    직무 수행 중에 혼수상태에 빠져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ㆍ때를 분별하는 능력이 필요한 협상 당사자
    그러나 이스라엘의 현대전에서 출중한 무공을 연속적으로 세워,‘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의 사자(lion)’라는 별명을 얻은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이 평화를 위해서는 타바 쪽의 국경선에서 땅을 이집트가 원하는 대로 내어주는 결단을 한 것 이었다. 그는 1967년 ‘6일 전쟁’과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을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끌었지만,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깊히 인식하고 있었다.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다”
    그는 구약성경 전도서의 이 가르침을 현장에 적용하는 혜안과 담력을 가진 무인이었다.
    ㆍ협상을 성공시키는 요인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타바 협상을 성공시키는 몇 가지 요인들에 대한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첫째는 샤론 장관이 그러한 결단을 하도록 전권을 부여한 이스라엘 내각은 그의 결정을 지체없이 승인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딴지를 걸지 않고 ‘전권’을 행사한 것을 받아들이는 이스라엘 내각은 협상성사를 위한 훌륭한 토양이었다. 둘째는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대화를 계속하도록 돕고 격려한 현명하고 끈기있는 미국이라는 중매인은 당사자들에게 행운이었다. 카터 대통령은 사다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수상이 평화협정을 맺도록 캠프 데이비드 협상을 하게 도왔고 레이건 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과 베긴 수상이 시나이 철수 협정을 성사시키게 도왔다. 1982년 4월 21일자 뉴욕 타임즈는 레이건 대통령이 이스라엘에게, 시나이에서 완전 철수를 하면 어떤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문서를 전달하였지만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셋째는 이스라엘 언론이 부정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고 이집트 언론은‘이집트의 승리 어쩌고’ 하면서 이스라엘을 자극하는 보도를 하지 않았다.
    ▲ 1973년의 욤 키푸르 전쟁에서 부상당해 이스라엘 국민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더오른 아리엘 샤론 장군과 모세 다얀 장군.

    ㆍ‘나라의 이익’을 말한다면 협상을 성사시켜라
    필자는, 어느 이스라엘 퇴역장성에게 물은 적이 있다. “협상을 성사시키는 진수는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라의 이익’,그것이 협상을 시작하는 이유이며 성사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라의 이익’을 위한다면 정치인들은 협상을 결렬 시킬 수 없고 언론은 놀아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현명한 중재자가 필요하다.”
    ▲ 이스라엘 쪽에서 바라 본 타바 국경

    Premium Chosun ☜       고세진 대한성서고고학회 회장 youaremyhon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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