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크린 속 의학

6 버틀러(대통령의 집사)

浮萍草 2014. 3. 6. 12:00
    버텨라! 버텨라! 버티면 강하고 건강해진다
    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픈 상처는 흑인 역사일 것입니다. 양반 계급이 지배한 조선 시대, 천민들의 가슴 아픈 역사와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그래서 미국 흑인 수난사에 대한 영화가 더욱 공감이 가는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층 간의 갈등이 투영되어 가슴이 먹먹한 것일까요? 불편한 영화를 좋아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의 아픈 상처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영화의 매력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가슴 한편이 미어지고 눈시울이 붉어질 것을 알면서도 스크린 앞으로 몰려가게 되니까요. 다행히 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는 눈물이 펑펑 날 만큼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감동적인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마음보다는 머리로 보는 영화라고 해야겠습니다. 흑인에 의한,흑인을 위한,흑인의 영화.리 다니엘스 감독의 영화 ‘버틀러’를 한 문장으로 그렇게 줄일 수 있겠습니다. 미국의 현대사에서 흑인의 의미를 복습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오바마 대통령까지 왔을 때는 감독의 욕심이 좀 과한 듯 했습니다. 조금의 우려도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현직 대통령의 당선에 찬사를 보내는 영화가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정권 찬양 영화라고 뭇매를 맞기 십상이었을 것이고 야권에서는 아마도 영화 안보기 운동이라도 벌릴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반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문득 영화의 배경이 우리나라이고, 흑인 대신에 여성의 인권과 그 수난사에 대한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을까요? 어쨌든, 이제 미국에서 흑인의 파워는 대단합니다. 특히 민주당에 보내는 흑인들의 지지는 영화에서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영화 속에도 민주당 소속의 대통령과 공화당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노골적일 만큼 편파적입니다. 즉 린드 존슨이나 케네디 등은 호감형의 대통령으로 닉슨이나 레이건은 비호감으로 설정됩니다. 물론 역대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흑인 인권 측면에서 보는 시각은 일정한 것 같습니다.

    영화 '버틀러'는 세실 게인즈(포레스트 휘태커)라는 흑인의 눈으로 보는 미국 현대사에 대한 영화입니다. 하우스 니거(house negro; 집에서 시중드는 흑인을 비하하는 말)가 된 흑인 소년이 열심히 일해서 백악관의 버틀러가 되고 34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을 보필하게 되는 실화를 재현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기복이 없이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스토리의 긴박감보다는 출연진과 그 배역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주인공인 세실 게인즈 역을 맡은 포레스트 휘태커의 표정연기와 그의 부인 역을 맡은 오프라 윈프리의 호연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역할의 로빈 윌리엄스, 존 쿠삭,알란 릭맨,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역의 제인 폰다 등 셀 수 없는 스타,그리고 머라이어 캐리까지,화려한 캐스팅에 눈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세실 게인즈(포레스트 휘태커)가 백인들의 시중을 들면서 사회에 순응한 것과는 달리,적극적으로 흑인 인권운동에 뛰어든 그 아들의 양면적인 시각을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영화는 달려갑니다. 두 가지 삶의 방식 모두 갈등이 있지만,영화는 버락 오바마의 당선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됩니다. 결국 세실 게인즈와 그의 아들 모두 패배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결과가 말해주듯이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인종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오바마는 미국의 블랙 파워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백악관의 주인은 계속 바뀌었지만 버틀러 세실 게인즈의 삶은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결국 세실 게인즈는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어머니가 백인 농장주의 아들에게 능욕당하고 아버지가 살해되는, 충격의 가정사를 딛고 일어섭니다. 그리고 백악관의 대통령 집사로 흑인 대통령의 당선까지 보게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보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평균 수명 100세의 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수명 연장의 원동력이 현대 의학의 발전에 의한 것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체계화된 건강검진, 각종 암 치료의 성과, 규칙적인 운동과 만성병에 대한 관리 등이 그 공신들이지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 혜택의 수혜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넘어야 할 산도 많습니다. 의료와 복지에 쏟아 부어야할 천문학적인 돈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에 대한 지원 등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겠지요. 산업으로서의 의료와 복지로서의 의료에 대한 절묘한 균형 감각이 필요한 때입니다. 문제는 OECD국가 중에 불명예 1등인 자살률입니다. 태어나서 끝없이 겪어야하는 치열한 경쟁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결국은 극단적인 곳으로 내몰게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무조건 버티는 겁니다. 눈 딱 감고 이번 한번만 버티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버티고, 이렇게 버티다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인데 말입니다. 그 한 번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건강도 결국은 버티는 것입니다. 술도 적게 마시려고 버티고 담배도 안 피우려고 버티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지 않으려고 버티고 피곤한 몸에 쉬고 싶은 마음을 버티고 운동하러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건강해지는 것이고 100세까지 버티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버티는 것이 아니고, 버티는 사람이 건강한 것입니다. 100세 시대, 건강한 사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사람이 건강한 것입니다. 영화'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에서 버틀러 세실 게인즈는 끝까지 버텨, 살아 남았습니다. 그는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고 살아남은 흑인들이야말로 강한 사람들입니다. 강한 자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자가 강한 것입니다.
    Premium Chosun ☜    임재현 나누리서울병원 원장 nanoori1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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