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54> 『네 사람의 서명』과 아서 코넌 도일

浮萍草 2014. 3. 2. 10:50
    셜록 홈스 역시 고뇌하고 번민하는 인간

    아서 코넌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에든버러
    의대를 졸업 안과 의사로 개업한 뒤 틈틈이
    글을 쓰다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켰다.
    홈스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4편,단편소설
    56편을 남겼으며 1902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가 셜록 홈스를 제대로 읽기 시작한 건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바로 이 무렵이었다. 큰누나의 손에 이끌려 일요일마다 새벽같이 남산도서관에 들어가면 저녁 늦게 나올 때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홈스만 읽었다. 그렇게 꼬박 1년 나는 홈스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전부를 두세 번씩 독파했고 대학노트 한 권에 홈스의 추리 기법을 아주 꼼꼼히 정리했다. 일찌감치 홈스교도, 그러니까 홈지언(Holmesian·영국식)이나 셜로키언(Sherlockian·미국식)이 된 셈인데 그러자 홈스를 곧잘 따라 하곤 했다. 그래 봐야 도시락 반찬 보고 그 집 식모의 성격을 알아맞히는 정도였지만 어쨌든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 BBC 드라마 ‘셜록’ 팬들이 홈스의 관찰과 추리 방식을 흉내 내는 ‘셜록 놀이’를 즐겼던 것이다. 그런데 한참 나이가 들어 다시 꺼내든 셜록 홈스는 그게 아니었다. 구두에 묻은 황토를 보고 친구 왓슨이 우체국에 다녀온 것을 알아낸다든가 의뢰인이 놓고 간 지팡이만 보고도 그가 기르는 개의 종류까지 정확히 맞히는 명탐정 홈스는 더 이상 나를 사로잡지 못했다. 오히려 홈스 역시 그가 쫓는 범인과 마찬가지로 고뇌하고 번민하는 인간이라는 점이 새롭게 와 닿았다. 그리고 역사소설을 쓰고자 했으나 실패한 작가 코넌 도일이 홈스와 왓슨의 입을 빌려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새삼 폐부를 찔러왔다. 홈스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주홍색 연구』의 서두에서 “인류의 진정한 연구 대상은 인간”이라고 선언 한다. “삶의 무채색 실 꾸러미 속에 주홍빛 살인의 혈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네 우리가 할 일은 그 실 꾸러미를 풀어서 살인의 혈맥을 찾아내 그것을 가차없이 드러내는 것이지.” 『주홍색 연구』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일약 유명 작가가 된 도일은 3년 만에 홈스를 주인공으로 한 두 번째 소설 『네 사람의 서명(The Sign of Four)』을 펴내는데 이 작품에서 홈스는 첫 장면부터 코카인이 든 주사기를 팔뚝에 쿡 찌른다. 말리는 왓슨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 말이 옳아. 나 역시 이런 약물이 육체적으로는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정신적인 각성 효과는 말할 수 없이 크거든. 그래서 그 부작용 같은 건 사소하게 여겨지네.” 인간적이다 못해 연민까지 느끼게 하는 그가 약물 중독자가 된 이유는 곧 그가 사설 탐정이 된 이유다. “나한테 문제를 던져주게. 나한테 일을 줘. 가장 난해한 암호, 가장 복잡한 분석 과제를 던져주게. 그러면 내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갈 걸세. 그러면 나는 인공적인 흥분제 없이도 살아갈 수가 있어. 하지만 나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혐오하네 나는 정신적으로 고양된 상태를 갈망하지. 나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라네.” 이렇게 따분해 하던 홈스에게 미모의 여성 의뢰인이 찾아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동인도회사의 폭정에 항거해 일어났던 세포이의 반란까지 거슬러 올라가 당시 아그라의 보물을 훔친 네 사나이의 명예를 건 서명과 그 보물을 가로챈 두 군인의 비극적인 운명이 실타래처럼 얽히는데 홈스는 완벽한 추리와 과감한 추적 끝에 범인을 검거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아그라의 보물은 템스 강 바닥에 버려지고 만다. 그러나 괴테까지 인용해 풀어놓는 홈스의 명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문장들은 사라진 보물보다 더 반짝인다. “재치 있는 사람들만큼 그렇게 까다로운 바보는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경멸하는 버릇이 있다.”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의 증거는 자신의 보잘것없음에 대한 자각에 있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지만 군중 속의 인간은 수학적 확실성이 된다.” 배를 타고 가다 부두에서 일하고 나오는 노동자들을 보며 형사 존스에게 하는 말은 특히 인상적이다. “저들은 더럽기 짝이 없는 몰골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어떤 불멸의 작은 불꽃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나진 않을 겁니다. 뭐 거기에 어떤 선험적 개연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란 참 불가해한 존재지요!” 여성 의뢰인과 사랑에 빠지는 왓슨 역시 홈스를 향해 의미 있는 한마디를 남긴다. “그의 움직임은 냄새를 쫓아가는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너무나 재빠르고 조용하고 은밀하기 때문에 만일 그가 타고난 열정과 지혜를 발휘해 법을 수호하는 대신 법과 맞서는 쪽을 선택했다면 얼마나 가공할 범죄자가 되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순간, 사건 해결의 영예는 존스가 다 차지하고 홈스에게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그는 애당초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남은 게 있다고 말한다. “코카인일세.” 그러고는 희고 긴 손을 쭉 뻗는다. 『네 사람의 서명』은 이렇게 끝난다. 처음에 시작했던 것처럼 사건이 끝나면 명탐정 역시 진부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Sunday Joins Vol 364 ☜   박정태 굿모닝북스 대표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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