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51>『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과 로버트 피어시그

浮萍草 2014. 1. 13. 10:03
    미래의 목적만을 위해 사는 삶이란 …

    로버트 피어시그(Robert Pirsig, 1928~)
    열다섯 살에 대학에 입학해 생화학을 공부하던 중
    우울증에 빠져 학업을 중단했고 시카고대학에서
    철학 공부하다 정신이상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
    군 복무 당시 한국에서 근무하기도 했는데 이때 본
    한국 성벽에서 선의 개념을 발견했다.1967년부터
    쓰기 시작한『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121개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뒤 1974년 출간됐다.
    래는 우리 등 뒤쪽에서 다가오고 과거는 우리 눈앞에서 멀어져 간다고 한 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는 이 말을 새 다이어리의 첫 장에다 써놓으며 새삼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 누구도 미래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나간 세월을 반추해볼 수는 있다. 잊혀질 듯 희미해져버린 과거를 향해 시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것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Zen &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은 바로 이런 시간 여행기인데 700쪽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에‘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부제까지 달고 있는 거창한 제목만큼이나 특이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 이다. 작품의 기둥 줄거리는 주인공이 모터사이클 뒷좌석에 아들을 태우고 친구 부부와 함께 미국 중서부에서 태평양 해안 까지 17일간 여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행자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어디에 도착하기보다는 여행 자체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계획도 짜놓지 않고 고속도로를 피해 시골길을 달린다. 꾸불꾸불한 샛길이 좋은 것은 거기서는 생각의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는 많은 사람들이 경직된 가치관에 묶여 인생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잠시 생각의 속도를 늦추기만 하면 되는데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진리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꺼져, 나는 지금 진리를 찾고 있어’라고 말하자 진리가 가버리는 꼴이다.” 작가가 말하려는 것은 여행 도중 만난 사람이나 멋진 경치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주인공이 거쳐온 지적 갈등의 여정 이다. 그는 여행 중에 끊임없이‘야외 강연’이라는 것을 하는데 이를 통해‘파이드로스’라고 이름 붙인 과거의 자신과 “질(質)이 무엇인가”를 탐색해 나간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과학적 방법이라는 변증법의 권위에 도전하다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그는 전기충격 치료를 받아 현재는 정상인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예전 기억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아들 크리스는 열한 살 나이에 정신이상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주인공이 과거를 향한 시간 여행에 몰입할수록 부자간의 관계는 더 서먹해진다. 어느 날 야영을 위해 산비탈을 오르다 그는 아들의 발걸음이 너무 빠른 걸 발견한다. “너무 빨리 가다 보면 숨이 차게 되고 숨이 차게 되면 현기증이 날 거야 그렇게 되면 사기도 떨어지고 산을 더 오를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러니 잠시 걸음의 속도를 늦추도록 해라.” 갈 길은 멀고 서두를 것은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더 이상 미리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 때 발걸음 하나하나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를 멈추고 그 자체로서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무언가 미래의 목적만을 위해 사는 삶이란 피상적인 삶일 수밖에 없다. 삶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산비탈이지 산꼭대기가 아니다. 바로 여기가 만물이 성장하는 곳이다.” 그는 문득 깨닫는다. 우리가 과학적 방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지배할 힘을 얻은 순간 무언가를 잃은 것이다.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부에 대한 꿈을 실현한 순간 인간은 자연의 적이 아니라 그 일부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해력을 상실한 것이다. 주인공은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의 가치를 되찾는다. 그가 그토록 찾으려 애썼던 질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들과도 화해한다. 크리스의 눈길에서 파이드로스의 모습을 발견하고, 아들이 바로 자신의 분신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련은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불행과 불운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에는 여기에 없었고 또 겉으로는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숙이 침투해 있는 어떤 느낌이 이제 느껴진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긴 것이다. 이제 사정이 더 나아질 것이다.” 작품은 여기서 끝난다. 그런데 후기가 있다. 책이 출간되고 5년이 지난 1979년 어느 일요일 그러니까 여행을 다녀오고 11년 후 샌프란시스코의 선(禪) 수련원에 있던 크리스가 노상강도를 만나 살해당한 것이다. 당시 피어시그는 영국에서 만난 새 아내와 요트에서 생활하던 중이었는데 장례식을 치르고 나자 아들의 편지가 뒤늦게 도착한다. “저는 제가 스물세 번째 생일까지 이 세상에 살아있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크리스는 2주만 지나면 스물세 번째 생일이었는데 죽던 날 아침 영국행 비행기표를 사두었다. 피어시그는 묻는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몇 달 후 새 아내가 아이를 갖는다. 이미 나이 쉰을 넘긴 그는 낳지 않기로 결정했었지만 이 결정을 번복해야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넬이 태어나고 그는 어린 딸을 바라보면서 깨닫는다. 이름이 바뀌고 몸이 바뀌더라도 뭔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거대한 패턴은 계속 유지된다는 사실을.
    Sunday Joins Vol 357   박정태 굿모닝북스 대표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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