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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統一과 統合 도운 요리책 한 권

浮萍草 2014. 1. 31. 16:01
    19세기 피렌체 사업가가 쓴 요리책 '이탈리아 요리' 개념 탄생시켰고
    정체성과 이탈리아어 확산 도우며 신생국 통합에 기여했다고 평가
    다가오는 한반도 통일과 통합에 우리 음식은 어떤 역할 맡을까
    김성윤 문화부 기자
    레그리노 아르투지(Artusi·1820~ 1911)는 이탈리아 통일과 통합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꼽힌다. 사업가이자 투자은행가였던 아르투지가 이런 평가를 받는 건 그가 이탈리아가 통일된 지 30년이 되던 1891년'최초의 이탈리아 요리책'이라고 평가 받는'주방의 과학과 잘 먹는 법(La scienza in cucina e l'arte di mangiar bene)'을 썼기 때문이다. 피렌체에 살았던 아르투지는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 사업을 도와 밀라노 로마 나폴리 트리에스테 등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음식에 관심이 많던 아르투지는 가는 곳마다 만나는 거래처 사람 투숙한 호텔 식사한 레스토랑 요리사 등 현지 사람에게 요리법을 구했다.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였던 아르투지는 40대에 이미 평생 풍요롭게 먹고 살 만한 돈을 모았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미식(美食)을 탐닉한다. 아르투지는 음식을 사랑했지만 직접 요리하지는 않았다. 그는 오로지 미식가요 감식가·평가자였다. 그는 개인 요리사 두 명을 고용 이탈리아 전역에서 수집한 레시피에 따라 음식을 만들게 했다. 요리사들이 만든 음식을 맛보고 레시피를 수정했다. 그는 이렇게 수집해 검증까지 마쳐 완성한 수백 개의 레시피를 묶어 책으로 내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요리책 출간에 부정적이었다. 출판사들도 시큰둥했다.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를 찾지 못한 아르투지는 결국 자비 출판하기로 했다. 1891년 피렌체의 한 인쇄업자에게 의뢰해 요리책을 찍었다. 아르투지의 요리책은 친구들이나 출판업자들의 예상과 달리 불티나게 팔렸다. 아르투지가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910년까지 무려 14쇄, 5만2000권이 팔리는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웬만한 이탈리아 가정에는 그의 요리책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도 유명해서 길고 복잡한 원래 책 이름 대신 그저 '아르투지'로 통용될 정도였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아르투지가 쓴 요리책이 높이 평가받는 건 이탈리아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요리책이 나오기 전에도 이탈리아 땅에서 발간된 요리책은 많았다. 하지만 이 요리책들은 이탈리아 권역 내에서 쓰였을 뿐 '이탈리아 요리'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저 유럽 귀족층이 즐기는 고급 요리를 모았을 뿐이었다. 이는 어쩌면 당연했다. 1861년 사보이 왕가와 가리발디 장군의 주도로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할 때까지 이탈리아 반도에는 수십 개의 작은 왕국·공국·도시국가·교황령이 있었다. '이탈리아'라는 국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르투지의 요리책은 이탈리아가 하나의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쓰인 최초의 요리책이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역사학자들은 이 요리책을"이탈리아가 단일 국가로서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아르투지의 요리책은 인간이 혀로 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 즉 언어 분야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받는다. 통일 당시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어(語)'가 없었다. 피렌체는 피렌체말을 베네치아는 베네치아말을 나폴리는 나폴리말을 썼다. 요즘 기준으론 사투리 혹은 방언이지만 서로 의미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달랐다. 각각 독립된 언어라고 해야 정확할 정도였다. 통일 이탈리아 정부는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 지역의 말을 표준으로 정했다.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의 말로 글을 쓰는 최초의 시도가 토스카나 지역에서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단테가 쓴 '신곡(神曲)'이 높이 평가받는 건 문학적 가치도 높지만 당시 토스카나 말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학교에서 이 새로운 표준 국어를 학생에게 가르치게 했다. 시칠리아인, 베네치아인 로마인 볼로냐인으로 태어난 소년 소녀를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이탈리아 국민'으로 길러내겠다는 의도였다. 토스카나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사람에게 이'표준 이탈리아어'는 외국어에 가까웠다. 당연히 어렵고 어색하고 거부감을 가졌다. 이 무렵 아르투지가 쓴 요리책이 등장했다. 피렌체에 살았고 통일 이탈리아를 지지한 아르투지는 표준 이탈리아어로 요리책을 썼다. "국어 시간 교과서나 딱딱한 문학작품을 통해 가르친 것보다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읽힌 아르투지의 요리책이 이탈리아어의 확산과 사회적 화합에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라고 많은 이탈리아 역사학자들이 평가한다. 아르투지 요리책을 읽으며 한국을 생각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통일은 오고 있다. 그날이 왔을 때, 음식은 어떻게 우리 사회의 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음식만큼 훌륭한 통합의 매개체도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는 건 냉면처럼 과거부터 즐겨 먹은 음식뿐, 요즘 북한에서 무엇을 먹는지 잘 모른다. 남북을 아우르는 '한국요리책'을 새로 쓸 수도 있겠다.
    Premium Chosun     김성윤 문화부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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