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롭지 않게 올린 '조각 정보', 기업은 조합·분석해 상세 파악
개인은 자기기록 지우고 싶어도 한번 남기면 삭제 쉽지 않아
직장인 A씨는 백화점 의류 매장에 아내에게 선물할 속옷을 구입하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 고객님요?
잠깐 기다려보세요."
직원은 금세 아내가 선호하는 속옷 색깔과 신체 사이즈를 알려줬다.
A씨는"나보다 백화점이 아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의류 매장에서 과거 A씨의 아내가 구매한 내역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보험회사나 유통업체 등 각종 기업이 벌이는 영업 활동에 개인의 이름·나이·가족관계·신체치수·생일 등의 정보가 마구잡이로 활용되고 있다.
소위 '타깃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기업 활동 앞에 개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발가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ㆍ기업 앞에 발가벗는 개인들
꽃 배달 업체나 카드회사에선 기념일에 축하문자를 보내주는 마케팅이 유행이다.
하지만 메시지를 받고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인 장모(38)씨는"생일을 조합해 은행 비밀번호를 만들었는데 누군가 이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 찜찜해서 바꿔버렸다"고 말했다.
▲ 그래픽=김성규 기자
일부 기업은 개인 정보란에 직장·보유 차종·신체치수 등을 적는 난까지 만들어 기입을 유도하고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차종과 직장란은 고객의 소득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 놓는 경우"라고 말했다.
2012년 미국에선 유통업체'타겟'이 여고생에게'유아용품 판매 카탈로그'를 보낸 것이 논란이 됐다.
학생 부모가 항의했지만 실제로는 학생이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임산부용 용품을 구매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구매 패턴 분석을 통해 부모보다 자녀의 사생활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정보만 유통되는 것이 아니다.
2010년 충남 천안시에선 공무원 2명이 천안 시립공원묘지에 묻힌 사망자들과 연고자 6449명의 인적 사항을 빼내 장묘업자 4명에게 팔아넘긴 것이 적발됐다.
이들은 천안 시립공원묘지 연고자들의 이름·전화번호·주소·가족 관계 등이 적힌 '묘적부'를 장묘업자에게 팔아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장묘업자들은 유족들에게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 이장(移葬)을 권유하는 영업 활동을 벌였다.
ㆍ단순 정보 가공해 개인 낱낱이 파악하는 기업들
소비자들은 기업이 요구하는 개인 정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제공한다.
생일·주소·전화번호·결혼 기념일 등의 정보가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비수가 돼 돌아오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기업의 정보 수집·조합·분석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제공한 개인 정보뿐 아니라 그 소비자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했는지 관련 정보를 낱낱이 수집 관리한다.
파편화된 정보를 취합해 특정 개인의 구매 취향과 교우관계 자주 가는 곳까지 파악하고 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백화점이 월 일정액 이상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고 특정 제품을 구매한 사람을 집중 공략하기도 한다.
휴대폰 약정기한이 끝나거나 자동차 보험 만기일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걸려오는'전화 공세'도 이 때문에 발생한다.
개인 정보를 가공하는 방법도 나날이 발달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발신 전파를 이용해 시간대별 유동 인구와 연령대를 파악하고 이를 다시 카드사 지역·가맹점·업종별 매출 자료와 결합해 상권 분석 정보로까지 활용하고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기지국 정보를 이용해 어떤 연령대가 어느 지역 어느 시간대에 많이 모이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서"가공 과정에서 개인 식별이 가능한 정보는 반드시
제거한다"고 말했다.
만약, 여기서 개인을 유출해 낼 경우 심각한 개인 정보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정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민감한 개인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지난해 11월 보험개발원은 보험 통계를 만들면서 수집한 개인 보험가입자들의 질병 정보 423만건을 보험설계사들에게 무단으로 열람토록 허용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번 카드사의 개인 정보 유출도 금융회사들이 대량으로 보유한 고객 정보를 외부업체를 통해 가공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일단 기업 손에 들어간 정보는 쉽게 없애지도 못한다.
기업에 의해 한번'가공된' 개인 정보에 대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최근 이혼한 박모(36)씨는"결혼 기간에 백화점·외식업체·통신·금융사에 남긴 정보를 일일이 없애지도 못해 아예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고 말했다.
☞ Premium Chosun ☜  ■ 신동흔 기자 / 강동철 기자 / 이슬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