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옛글에서 읽는 오늘

탕론과 민주주의

浮萍草 2013. 11. 19. 17:54
    양에서는 옛날부터 민(民)을 나라의 근본이라 하여 중요시했다. 
    민본의식은 민주주의와 똑같진 않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주목되는 글이 다산 정약용의 ‘탕론(湯論)’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인가?
    “탕(湯)이 걸(桀)을 쫓아낸 것이 옳은가? 신하가 임금을 쳤는데 옳은가?” 
    이렇게 시작한 글은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말하고 있다. 
    “천자는 어떻게 해서 생겼나? 하늘에서 내려와 천자가 되었나 땅에서 솟아나 천자가 되었나? 
    다섯 가(家)가 인(린)인데, 다섯 가에서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인장(린長)이 되었다. 
    다섯 인이 이(里)인데, 다섯 인에서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이장(里長)이 되었다. 
    다섯 비(鄙)가 현(縣)인데, 다섯 비에서 우두머리로 추대되어 현장(縣長)이 되었다. 
    여러 현장이 함께 추대한 사람이 제후가 되었다. 
    여러 제후가 함께 추대한 사람이 천자가 되었다. 
    천자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추대하여 이뤄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논리를 기초로 우두머리를 교체하고 방벌(放伐)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정당하다고 보았다. 
    다섯 집이 의논하여 인장을 바꿀 수 있고 스물다섯 집이 의논하여 이장을 바꿀 수 있다. 
    제후들이 의논하여 천자를 바꿀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또한 천자를 방벌하는 것이 단지 천자의 지위만 빼앗는 것이기에 어질지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런데 탕론은 ‘아래로부터의 정치’만 말한 것은 아니다. “
    한(漢)나라 이후로는 천자가 제후를 세웠고 제후가 현장을 세웠고 현장이 이장을 세웠고 이장이 인장을 세웠기 때문에 감히 공손하지 않은 일이 있으면 ‘역(逆)’이라고 
    명명했다.” 
    한나라 이후에는‘위로부터의 정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세우는 것이 옛날에는 순(順)이요 지금은 역(逆)이다. 
    그래서 왕망과 조조는 반역자인 반면, 옛날 무왕과 탕왕은 현명한 왕이었다.
    다산의 의도가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강조한 것임엔 분명하지만, 시대에 따라 위로부터의 정치를 인정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런 시대적 차이에 대해 다산은 논리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 
    “여름 한철 사는 쓰르라미가 봄과 가을을 모른다”는 인식의 한계를 표현한 장자의 말로 끝맺었을 뿐이다.
    다산의 민에 대한 인식을 살피노라면 현대 민주주의의 개념과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 11일 시상한 제7회 임종국상 수상 저서가 박찬승 교수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다. 
    우리 헌법이 드물게도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한 연유에 주목한 저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늘날, 민은 나라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Khan         김태희 실학21네트워크 대표

     草浮
    印萍